아침부터 우리 가족은 분주하게 짐을 챙겼다. 오늘은 그동안 정들었던 퀸스타운을 떠나서 다시 크라이스트처치로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자동차로 이동해야 할 거리는 485km. 6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달려야 했기에 일찍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있기에 일찍 서둘러도 아이와 실랑이를 하느라고 시간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오전 9시 30분이 넘어서야 숙소의 짐을 챙기고 체크 아웃을 할 수 있었다.
가는 길에 번지점프하는 모습을 잠시 보기 위해서 AJ 해켓 카와라우 번지 센터에 잠시 차를 세웠다. 퀸스타운에서 25km 떨어진 번지 센터에는 크리스마스이브임에도 불구하고 번지점프와 집라인을 타려는 사람들의 줄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전망대에서 번지 점프를 감상했다. 보고만 있어서 그 사람들의 심장 소리가 그대로 느껴졌다. 번지 점프대에서 뛰어내리는 시간 2초. 강에서 대기하는 배에 내리는 시간을 포함하면 60초. 그 시간을 보고 있자니 내가 번지 점프를 하는 기분이었다. 10여분 동안 3~4명이 강물로 뛰어내렸고, 일부는 상체가 물속에 빠지기도 했다. 간접 경험만으로도 다리 위에서 뛰어내린 기분이었다. 아직 먼 거리를 가야만 했기에 다시 차에 올랐다.
AJ 해켓 카와라우 번지 센터
퀸스타운 번지점프대
우리가 탄 렌터카는 퀸스타운 인근의 와인 농장들을 지나 굽이굽이 계곡을 가로질러서 크롬웰 마을을 통과했다. 다시 던스턴 호수를 지나서 수십 km 이어지는 린디스 밸리를 달렸다. 12시가 지나서 10여 일 전에 들렸던 오마라마 홀리데이인 파크를 지나서, 12시 20분쯤에 연어로 유명한 하이컨츄리연어(high country salmon) 상점 앞에 차를 세웠다. 오늘의 점심은 연어회와 연어로 만든 초밥. 지난번에는 오후 5시 넘은 시각에 도착하여 상점이 문을 닫아서 연어를 먹지 못했지만, 오늘은 다행히 문을 연 상태였다. 그동안 아껴두었던 한국에서 가져온 초장을 꺼냈다. 그리고 연어회와 초밥 세트 하나를 구매하여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역시 유명한 맛집인 만큼 이곳을 지나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차를 세우고 연어 음식을 맛보고 있었다.
퀸스타운에서 테카포 호수로 가는 길
트위젤 근처의 연어 가게와 초장과 함께한 점심
식사를 하고 다시 달렸다. 트위젤과 푸카키 호수를 지나서 다음 목적지는 테카포 호수의 선한 목자 교회. 여기도 캠핑카 여행을 하면서 들리지 못한 곳이었기에 이번에 크리이스트처치로 올라가면서 잠시 시간을 내어 들렸다. 교회 주위에서 사진 몇 장을 남기고 아이와 함께 10여분 동안 호숫가에서 잠시 산책도 즐겼다. 역시 테카포 호수는 이곳에서의 뷰가 가장 아름다운 듯했다. 호수에 손을 담그고 마지막으로 테카포 호수와 안녕 인사를 나눴다. 언제 다시 볼 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안녕이다.
뉴질랜드의 빙하호수 중에서도 테카포 호수의 색깔이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 푸카키는 너무나 거대해서 아기자기한 맛이 없었고, 와나카는 밀크 블루색이 약했으며, 퀸스타운 앞의 와카티푸 호수도 테카포 호수의 색을 따라가지는 못했다.
테카포의 선한 목자 교회
안녕 테카포 호수
선한 목자교회에서 크라이스트처치까지는 약 200여 km가 조금 넘었다. 다시 열심히 가속 페달을 밟았다. 캠핑카를 타고 첫날 달렸던 그 길을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거꾸로 가는 풍경도 나름 색다른 풍경이었다. 오는 날 보지 못했던 초원과 동물들, 그리고 다리와 마을까지 가는 길에서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열심히 달리고 달려서 크라이스트처치의 숙소에 오후 4시 40분 정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퀸스타운을 떠난 지 7시간 만에 도착한 것이었다. 긴 자동차 운전이었지만,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생각만큼 피곤하지는 않았다. 숙소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트리를 비롯하여 여기저기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장식물들이 가득했다. 모두가 반팔과 반바지, 치마를 입고 다니는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가 조금은 어색하기도 했다.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짐을 풀고 우리 가족은 다시 저녁 식사 장소로 향했다. 차를 타고 약 10여분을 달려서 현지 음식점에 도착을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영업을 하는 전형적인 뉴질랜드 현지의 동네 음식점이었다. 6시 예약을 했지만 식당은 한적했다. 알고 보니 여름은 해가 길어서 대부분 7시나 8시쯤에 식사를 하러 온다고 했다. 우리는 예약자들 중에서 첫 번째로 주문을 했다. 식당에서 가장 많이 먹는 스테이크를 주문했고, 그것으로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을 즐겼다. 우리가 식사를 마무리할 즈음 예약한 뉴질랜드 현지인들이 하나둘씩 레스토랑으로 들어왔다. 화려한 음식보다는 가족들과의 오붓한 시간을 갖는 소박한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이 대부분이었다.
저녁을 먹고 시티로 향했다. 뉴질랜드의 크리스마스이브 분위기는 어떨까 하고 둘러봤지만, 관광객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시내는 너무나 조용했다. 아무런 행사도 아무런 축제도 없었다. 상점 대부분이 문을 닫고 있었다.
뉴질랜드의 크리스마스이브는 화려함 대신 조용함, 그 자체였다. 우리도 바로 숙소로 들어왔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외쳤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