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만난 카이코우라 물개들
카이코우라, 물개
"메리 크리스마스!"
2022년의 크리스마스 아침이 밝았다.
눈을 떠보니 완연한 여름 날씨였다. 성탄절 아침 햇살은 따사로웠고, 활짝 핀 장미가 숙소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처음 맞이하는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다. 여기에서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추석이나 설날 명절처럼 가족들과 함께 하는 연휴로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열지 않는다. 때문에 오늘 아침은 호텔 조식으로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찾은 1층 식당은 활기찼다. 크리스마스 인사가 이어졌고, 모두가 환한 얼굴로 아침을 시작했다. 나는 빵과 베이컨, 누들과 연어, 허시브라운 등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따뜻한 커피도 은은한 향이 최고였다. 아내와 아이도 빵과 신선한 과일, 오렌지 주스로 아침을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 체크 아웃까지 시간이 2~3시간 정도 남아서 호텔의 야외 수영장으로 나갔다. 수영장은 정원 앞에 아담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서너 명이 물에 들어오면 가득 찰 정도로 작았다. 하지만 2명 정도가 일광욕을 즐길 뿐 수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아들과 함께 작은 수영장으로 들어가서 함께 물놀이를 즐겼다. 행복했다.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한 크라이스트처치 숙소 풍경 그렇게 성탄절 오전 시간을 마무리하고 12시에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북쪽으로 약 180km 정도 떨어진 카이코우라(Kaikoura)로 향했다. 처음 100km 정도는 평탄한 초원을 달리는 코스였지만, 마지막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야 했다. 마치 강원도 고갯길을 가는 듯한 길을 30분 정도 달렸다. 그렇게 1시간 40분 정도를 달리니 드넓게 펼쳐진 바다가 나타났다. 그리고 약 20여분을 해변가 도로를 달렸다. 강원도의 정동진 해안가 길을 달리는 것처럼 바다와 철길이 우리와 함께 했다. 이곳은 지난 2016년 인근의 큰 지진으로 인해서 길이 유실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든 길이 새롭게 단장되어 운전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오후 2시 20분 정도에 우리는 카이코우라 시내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카이코우라는 뉴질랜드 남섬 북동부 해안에 위치한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이곳의 이름은 가재(Cray fish)가 많이 잡힌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했다. 미리 예약한 고속도로 인근의 모텔에 짐을 풀고 점심을 먹기 위해서 시내로 나왔다. 크리스마스 휴일답게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대형 마트마저 오늘은 문을 닫은 상황이었다. 점심을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던 찰나에 초밥집 하나가 문을 열고 있었다. 가게명은 '카이코우라 스시'. 오늘 카이코우라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식당이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으로 들어가 보니 대부분의 초밥 세트가 이미 팔린 상태였다. 다행히 몇 개가 남아서 그것으로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가게 주인분은 한국분이었다. 크리스마스였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 나와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덕분에 점심을 굶지 않을 수 있었다.
초밥과 라면으로 든든히 점심을 먹은 후에 포인트 킨 전망대로 향했다. 여기서는 카이코우라 반도의 트래킹 코스가 시작되는데, 해변가를 따라서 걸으면 물개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약 2km 정도의 해변 트래킹 코스를 걸었다. 해변가의 갈매기 둥지들을 지나니 저 멀리에서 물개들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마리만 보이더니 어느덧 수십 마리의 물개들이 보였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위험할 수도 있었기에 약 1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물개들을 바라봤다. 동물원이 아닌 실제 바닷가에서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물개들을 바라본 것은 처음이었다. 특히 아기 물개들을 지키기 위해 암컷 물개가 수컷 물개를 막아서는 모습은 진정한 야생의 모습이었다. 바다에서도 물개가 수영을 하면서 물고기를 잡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물개들의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너무나 신기로웠다. 이렇게 물개들이 많이 서식하기에 이 근처에서는 물개의 천적들인 고래들도 자주 발견된다. 때문에 현재 카이코우라는 뉴질랜드 고래 관광의 성지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카이코우라 해변의 트래킹 코스 카이코우라에서 만난 물개들 (바위 서식지와 수영하는 모습) 물개 구경을 마친 후에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아내는 숙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나는 잠시 숙소와 연결된 해변가로 나갔다. 숙소 이용자들만 이용할 수 있는 통로를 통해서 바다로 나갔다. 가는 길에는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픽턴까지 이어지는 기찻길이 있었고, 살짝 풀밭을 지나니 어마어마한 해변가가 나타났다. 해변의 모래는 검은색이었다. 푸른 바다와 하얀 파도, 검은 모래가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넓은 해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거센 파도만에 몰아쳤다. 웅장한 바다 앞에서 나란 존재는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혼자 그 모습을 감상하고 있자니 신비스럽기도 했지만, 파도가 언제 덮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살짝 무섭기도 했다.
카이코우라 해변혼자 독차지했던 카이코우라의 검은 해변을 뒤로하고 나는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는 우리는 한국에서 사 온 라면으로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를 했다. 내일은 아침 일찍 페리를 타러 떠나야 했기에 일찍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