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국어 시간에 배웠던 토론 수업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모든 토론 수업의 끝이 으레 그렇듯, 이 수업의 최종 보스이자 하이라이트는 역시 조별로 이루어지는 불꽃 튀는 토론 대결이었다.
동그란 안경을 낀 국어 선생님은 빼빼로 모양으로 길게 접은 쪽지를 교탁 위에 펼쳐놓고는 조장들을 소환했다. 주제를 뽑아야 할 시간이었다. 간통죄, 인터넷 실명제, 사형제도 존폐 여부 등등. 직전에 있었던 묵찌빠 대결에서 장렬하게 패배한 탓에 얼떨결에 조장이 되어버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를 쳐다보는 조원들의 초롱초롱한 기대 어린 눈빛을 받으며 벌떡 일어나 교탁으로 걸어 나갔다. 심호흡을 하고 손을 뻗어 종이 끝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양심적 병역거부도 괜찮고 인터넷 실명제도 나쁘지 않지. 제발 GMO 식품만 아니게 해 주세요, 라는 마음으로 남몰래 짧은 기도를 끝낸 후 종이를 뽑아 들었다. 펼쳐 본 종이 안에는 ‘안락사 찬성/반대’라는 글씨가 검게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오케이, 굿.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우리 조는 그 길로 토론 준비에 돌입했다. 학창 시절의 나는 말이 그다지 많지 않은 조용한 학생이었지만 논리적으로 근거를 세워 조리 있게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나름대로 밀리지 않고 말할 자신이 있었다. 토론 대결을 펼치기에 앞서 상대편 조와 먼저 안락사 찬성 측을 할 것인지 반대 측을 할 것인지를 상의해야 했다.
모태신앙인 데다 길지 않은 인생의 절반 정도를 교회에서 보낸 독실한 기독교인인 나에게 안락사 찬성이란 입장에 서는 것은, 그것이 비록 모의 토론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상대편 조장과의 본 게임 못지않은 불꽃 튀는 실랑이 끝에 어렵게 안락사 반대 입장을 맡을 수 있었다.
음, 그런데, 그 토론에서 결국 승리했던가...?
입원 사흘째, 병원 사회복지팀에서 병실을 방문했다.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할 것인지의 여부를 묻기 위해 왔다고 했다. 며칠째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하고 있었던 나는 잠이 부족해서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마찬가지로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멍하니 눈을 껌벅거렸다. 복지팀 직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빙긋 웃더니 두툼한 서류 뭉치를 꺼내 밑줄을 그어가며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쉽게 말하면 향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하는 거죠. 보통 의식이 없는 상황이 왔을 때 하는 기도삽관이나 심폐소생술 등의 연명의료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혀 놓는 거예요. 한 번 작성하시면 언제든 취소하실 수 있지만… 본인 동의가 있어야만 작성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리 작성하지 않으실 경우 추후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연명의료를 실시해야 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미리 작성하고 계세요.”
“엄마랑 한 번 상의해 보고… 다시 연락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다음 날 이 시간쯤에 다시 올게요,”
그녀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듣지 못해 궁금한 마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엄마에게 방금 들은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엄마는 고민도 거의 하지 않고 당연히 작성하겠다고 했다. 갑자기 괜스레 목이 메었다. 엄마, 우린 왜 지금 이런 선택을 해야 할까? 대체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꿀꺽 침을 삼키는 입안이 썼다.
다음 날, 복지팀 직원이 다시 병실로 찾아왔다. 작성하겠다는 나의 말에 커다란 태블릿 PC를 꺼내 이것저것 서명을 하고, 동의하는 엄마의 모습을 담은 짧은 동영상을 촬영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은 했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은 사실 사정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 60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작성자가 되었다.
※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나중에 아파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서류다. 19세 이상이면 작성 가능하며, 신분증(주민등록증 또는 운전면허증)을 지참하고, 보건복지부의 지정을 받은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등록기관을 방문해 작성해야 한다. 등록기관에 등록된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는 연명의료 정보처리 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되어 법적 효력을 인정받는다.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는 국가생명윤리정책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보건소, 의료기관, 비영리 법인 또는 단체에서 작성할 수 있다. 2019년 7월 말 현재, 전국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등록기관은 총 110개(보건소 29개, 의료기관 55개, 비영리 법인 및 단체 24개, 공공기관 2개)에 달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1인실 입원비는 하루에 45만 원. 지금껏 묵어 본 그 어떤 숙소에서도 지불해 본 적 없는 금액이었다. 입원비가 너무 부담되어 계속해서 다인실로 옮기고 싶다는 요청을 했지만 병원 측에서는 다인실이 없어 옮겨줄 수 없다는 답변만 되돌아왔다. 시설이 좋고 넓은 데다 화장실과 텔레비전까지 비치되어 있는 좋은 병실이었지만, 넓은 보호자 침대에 누워 있을 때마다 내일이면 또 45만 원이 병원비에 추가된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가엾은 우리 엄마, 살아오면서 호텔은커녕 맘 놓고 괜찮은 펜션 한 번 가본 적 없는 우리 엄마는- 이렇게 아프고 나서야 스위트룸보다 비싼 병실에 누워 있었다.
복지팀 직원이 작성된 의향서를 가지고 떠난 늦은 오후,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커다란 백팩을 멘 한 남자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병원과 연계된 인공호흡기 회사에서 나왔다는 직원은 성인의 다리 길이만 한 크기의 낯선 기계와 함께였다. 앞으로 계속 함께할 인공호흡기와의 첫 만남이었다.
“기계에 호스를 연결해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버튼은 이곳 이곳을 누르면 됩니다. 설정은 의료진 아니면 변경할 수 없어요. 이 숫자를 보면 마스크가 제대로 피팅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데, Leak을 확인하시면 되고……”
난생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이 계속 튀어나오는 탓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아, 천생 문과+기계치인 나에게 이런 시련이라니. 심지어 다른 기계와는 달리, 잘못 조작하면 엄마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만큼 작동법을 제대로 숙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긴장이 되었다. 핸드폰을 꺼내 계속해서 동영상을 찍었는데도 땀이 저절로 흘렀다.
숨을 쉬기 힘들어했던 엄마는 직원의 시범 아래 인공호흡기 마스크를 착용했다. 기계가 주는 압력이, 스스로 숨쉬기 힘든 엄마의 폐로 강하게 공기를 밀어 넣었다. 처음에 30분도 착용하기 힘들어하던 엄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호흡기에 적응했고, 5일째 되던 날 드디어 퇴원할 수 있었다. 맨몸으로 갔던 5일 전과는 달리 새로운 기계와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