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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Nov 24. 2020

27kg, 실화입니까?

첫번째 입원(2)


  초조함에 손톱을 물어뜯어야 했던 응급실에서의 시간들이 지나고 입원 오더가 난 뒤, 엄마와 언니, 그리고 나는 병실이 배정되기를 기다렸다. 응급실을 떠나 병실로 올라가는 발걸음이 혼란스럽고 무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에게 입원이란 진단 초기에 상세한 근전도 검사를 위해 잠깐 입원했었던 것이 전부였고, 그나마 그때는 이모와 교회 집사님 권사님들께서 우리 대신 엄마의 곁을 지켜주셨었다. 또 나는 비교적 건강하게 자란 편이어서, 아주 어렸을 때 이후로는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었다. 드라마나 다른 곳에서 보았던, 입원 병실의 장면들이 빠르게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병실에 들어서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가 1인실을 배정받았다는 것을.


  환자용 침대에 누워 실려온 엄마를 한 명의 보안요원과 간호사 두 명이 들어 올려 병실 침대로 옮겨 주었다. 간호사는 어떤 상황인지, 앓고 있는 다른 지병은 있는지 등의 간단한 문진을 하고 환자복을 내어주었다. 그 사이 엄마는 간단한 검진을 하고 몸무게를 쟀다.

  1인실에는 환자용 침대와 보호자용 침대가 있었고, 보호자가 식사를 할 만한 테이블과 작은 냉장고, 옷장, 그리고 개인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이후 여러 번의 입원을 하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정말 호화로운 병실이었다). 처음 입원한 병실이 1인실이다 보니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1인실이면 좋은 건가? 모든 병실이 다 이런가? 내가 상상했던 병실의 모습과는 너무 달랐고,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당황스러웠지만 우선 지급받은 환자복으로 엄마의 옷을 갈아입혔다. 이 모든 상황들을 갑작스럽게 겪어낸 당사자인 엄마는 반쯤 탈진한 상태로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이 열리고 도도한 인상을 지닌 한 간호사가 들어왔다. 엄마의 발치에 서서 차트를 훑어보던 그녀의 미간이 순식간에 살짝 찡그려지더니, 이윽고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그때 그녀의 첫마디를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와. 27kg, 실화입니까?"  


  



  다음 순간, 충격과 함께 빠르게 몰려오는 수치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나를 단순히 비난하기 위해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그 순간 그 말은 '27kg이 될 때까지 여태 환자를 방치했냐'는 비난처럼 들렸다.

  삼킴 장애가 오고 씹을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면서 잘 씹지도, 삼키지도 못하게 된 후로 엄마의 체중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팔은 팔뚝과 손목의 경계가 딱히 없을 정도로 뼈만 남아 앙상해졌고, 다리도 마찬가지였다. 다리를 주무르다 보면 주무르는 손이 뼈와 마찰되어 아플 지경이었다. 해외의 결식아동을 돕는 홍보영상에 등장하는 아이들처럼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났고, 골반과 엉덩이 그리고 꽁지뼈마저 여과 없이 드러난 상황이었다. 줄어드는 몸무게는 마치 우리의 남아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 같아서 애써 외면해왔던 부분 중 하나였다. 엄마는 더 이상 두 발로 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체중을 잴 방법 또한 없었지만.   


  삼키기가 힘들어진 이후로 엄마에게 주로 죽을 먹였다. 맛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몸에 좋다는 재료들은 다 때려 넣고 푹푹 삶아 갈아서 만든 짙은 카키색의 죽이었다. 브로콜리와 당근, 표고버섯, 단백질도 있어야 하니 소고기는 물론이요 양배추도 한 통이 통째로 들어간 데다 몸에 나쁜 것 빼고는 모조리 들어간 죽. 때로 엄마는 죽 맛이 정말 끔찍하다며 제발 너도 한 번만 먹어봐, 하고 웃으며 말하곤 했다. 한 번도 맛본 적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몸무게가 고작 27kg이라니.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OMR 카드를 밀려 쓰는 바람에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든 기분이었다.


  "지금부터 금식입니다. 내일은 위루관 시술할 거고요. 환자분 숨이 차다고 하시니까 벤틸레이터(인공호흡기)가 필요할 것 같아서 호흡기 회사에서 직원분이 오실 거예요."

  "아, 네.. 그런데 위루관 시술이 뭐죠?"

  "쉽게 말해 위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삽입하는 거죠.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 호스를 통해 경관 유동식을 넣어서 식사를 하실 거예요. 진작 경관식을 드셨으면 그나마 살이 덜 빠지셨을 텐데..."


  흐려지는 그녀의 말끝이 나를 푹 찔렀고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집에서 환자를 돌보며 늘 느끼지만, 이번에도 무지가 죄였고 나는 또 죄인이 되었다.




  언제 호흡곤란을 호소할지 모르는 엄마의 곁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보호자 침대가 있었으나 차마 누울 수 없었다. 거의 탈진 상태인 데다 이제는 말을 하기도 힘들어진 엄마의 목소리가 급격하게 작아졌기 때문에 혹시 내가 잠든 사이에 엄마가 나를 부르면 어쩌나, 그리고 잠든 내가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해 움직일 수 없는 엄마가 계속 나를 목놓아 부르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서였다. 보호자 침대에서 무릎을 안은 채로 앉아 대기하면서 엄마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부를 때마다 벌떡 일어나 달려가 자세를 바꿔주거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 천년 같은 밤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아침 해가 떠왔다.


잠이 올 때면 졸음을 깨기 위해 탄산을 마셨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 엄마는 위루관 시술을 위해 혈관조영실로 향했다. 늘 보호자인 우리와 함께 있었던 엄마는 혼자 수술실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상당히 초조해 보였다. 엄마의 손을 한번 꼭 잡아 주고 아이를 달래듯 들여보냈다. 시술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함께 있던 아빠가 초조한 걸음으로 시술실 앞을 돌아다녔다. 예상한 것보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엄마는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가엾게도 겁에 잔뜩 질린 눈이 우리를 발견하고 나서야 안심하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회복을 위해 다시 병실로 올라와 엄마의 환자복 자락을 슬쩍 들춰 보았다. 소독 거즈를 붙인 엄마의 배 위로 짤막한 호스 하나가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위루관. 이곳으로 물과 식사, 약 등을 넣는다.
피딩백(feeding bag)


  위루관 시술을 받기 위해 배와 위에 구멍을 뚫은 상처가 아문 뒤에야 비로소 경관식을 먹일 수 있었다. 한 방울씩 서서히 떨어져 엄마의 위로 흘러들어 가는 베이지색의 액체를 보며 많은 생각이 스쳤다. 엄마는 이제 물 한 방울조차 입으로는 먹을 수 없게 되었지만 저렇게라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라고.


  복잡한 생각들과 함께

  입원 이틀째 날 밤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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