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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Nov 16. 2020

119입니다. 어떤 상황이신가요?

첫번째 입원(1)


  가정의 달, 5월이었다. 엄마는 며칠 새 부쩍 숨이 차다고 했다. 온몸의 근육이 너무 약해져서 휠체어에도 앉아 있지 못하고 침대에만 누워 있는 생활을 하게 된 지 1년이 넘을 무렵이었다.


  '호흡'을 하게 해주는 근육이 무력화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이 투병의 마지막 종착지처럼 느껴졌다. 호흡이 힘들어지면 끝이라고 여기저기서 들은 적이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병이 진행된 상황에서의 끝판왕 같은 거였다. 온몸을 앗아간 병이 기어이 숨결에까지 침투하는 시기가 온 걸까.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그 시기가 정말 다가오자 절망스러웠다. 엄마가 점점 숨쉬기 힘들어할수록 내 숨도 조여 오는 것 같았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괜찮아지기를, 엄마가 스스로 호흡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음식이나 물을 삼키는 것도 예전에 비해 너무 힘들어해서 곱게 간 유동식을 조금씩 삼키도록 했다. 이모는 브로콜리, 당근, 양배추 등의 야채를 곰솥에 넣고 푹 삶아 쇠고기, 그리고 밥과 함께 곱게 갈아 엄마의 식사를 만들었다.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식사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의 우리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그저 우리가 아는 선에서 최선의 것을 모두 때려 넣고 만들 뿐이었다. 엄마는 당신이 좋아했던 갓 지은 밥, 싱싱한 쌈채소, 스테이크, 회 등의 음식들과 그렇게 갑자기 작별을 고했다.  




  그렇게 호흡이 하루하루 가빠오던 어느 날이었다. 부쩍 숨이 차다고 하던 엄마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지 병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엄마의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거동이 불편해진 후로는 아빠가 병원에 대신 가서 의사에게 엄마의 상태를 설명하고 약을 처방받아왔을 뿐, 이렇게 엄마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건 거의 2-3년 만이었다. 갑자기 멍해진 정신을 다잡은 뒤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고 기저귀, 휴지와 물티슈 등 간단하고 필수적인 것들을 챙겼다. 전화를 받은 아빠가 달려왔고 난생처음으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119입니다. 어떤 상황이신가요?"

  "아... 60세 루게릭 환자인데요. 숨이 차다고 해서요..."   

  "네, 지금 출동했고요. 전화 끊지 마세요."  


  전화를 끊자마자 내 핸드폰에 차단해 두었던 모든 번호가 일시 해제되면서, 누가 전화해도 받을 수 있는 응급 모드로 바뀌었다. 핸드폰 화면을 손톱으로 톡톡 두드리며 초조한 마음으로 구급차를 기다렸다. 살면서 119, 구급차 등의 단어는 나랑 관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우리 집으로 구급차와 구급대원들이 오고 있다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전화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구급대원 분들이 들것과 산소통을 든 채 집에 와주셨다. 이윽고 이것저것 질문이 이어졌다. 엄마는 작은 측정기를 통해 산소포화도를 쟀고, 산소통에 연결된 조그만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채 들것에 실려나갔다. 구급차에 보호자는 한 명만 탑승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빠는 직접 운전해 뒤따라오기로 하고 내가 엄마와 함께 구급차에 올랐다. 곧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이렌이 가동되었고 구급차는 빠르게, 밤의 적막을 가르며 병원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환자분과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딸이에요."

  "평소 이외에 앓던 지병 있으신가요?"

  "아뇨. 이것 말고는 없습니다."

  "네, 보호자님 성함과 핸드폰 번호 알려주세요."

  

  간단한 문진이 끝나고 나자 구급차 안에는 긴장감만 맴돌았다. 보호자 자리에는 딱히 등을 기댈 만한 곳이 없어 서서히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고 우습게도 멀미가 났다. 태어나서 이렇게 빠르게 달리는 차에 탄 적이 없어서였을까. 구급차 창밖으로 보이는 시야가 좋은 야경이 왠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세상은 이전과 같고 평범하게 흘러가고 있는데, 나는 지금 숨이 잘 안 쉬어진다는 엄마를 데리고 응급실로 달려가고 있다.

  이윽고 구급차는 빠르게 응급실 앞에 멈춰 섰다.




  응급실은 환자들로 붐볐다. 커다란 대학병원이라 그런지 보호자에 대한 출입 과정이 까다로웠고 경계가 삼엄했다. 검은 조끼를 입은 보안요원에게 명단을 받아 인적사항을 적고, 간호사에게 대략적인 상태를 설명했다. 일단 오긴 왔는데 자리가 쉽게 나지 않아서, 제법 긴 시간을 응급실 통로에서 대기해야 했다. 이동침대에 불안한 표정으로 누워 있는 엄마와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 엄숙한 표정의 보안요원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응급실에는 많은 사람이 왔고, 또 빠르게 어딘가로 실려나갔다.

  한참을 기다려 침대를 배정받고 나자 쉴 새 없이 기본적인 검사들이 이어졌다. 피검사, 소변 검사, 엑스레이 촬영 등등. 이윽고 엄마는 입원을 해서 상태를 살펴볼 것을 권유받았다. 처음 진단을 위한  받으러 4년 만의 입원이었다.

  입원실로 올라가려 대기하던 중 엄마는 배가 고프다고, 내가 혹시나 몰라 집에서 챙겨 온 사과 주스를 달라고 했다. 달짝지근한 사과주스를 종이컵에 담아 엄마의 입에 흘려 넣어 주었다. 엄마가 입으로 먹을 수 있었던, 마지막 음식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1인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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