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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Dec 11. 2020

코드 블루, 코드 블루

두 번째 입원(2)


  1

  코드 블루, 코드 블루


  다음 주면 입원한 지 거의 한 달째. 기껏해야 일주일 정도 있겠거니 생각했던 게 우습다.
  병원에 오래 있다 보니 진짜 별일을 다 겪고 별꼴을 다 본다. 아픈 게 얼마나 서러운 일인데. 서러운 사람들과 그 서러운 사람들의 보호자로 가득한 이곳은 정말이지 특이하기 짝이 없는 공간임을 매일매일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보통 처음 입원을 하게 되면 간호사가 한 명 와서 상세한 질문을 하고 문진표를 작성한다. 직업, 사는 곳, 나이, 가족관계 등을 모두 꼼꼼히 물어보기 때문에 이 문진 내용을 듣다 보면 본의 아니게 환자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있는 곳은 3인실. 먼저 맞은편에 들어온 사람은 무연고자인 데다 재활시설에 다니고 있는(알코올 중독으로 추정되는) 50대의 기초생활수급자 남성이었다. 초점 없는 눈빛이 어쩐지 싸했다. 병명은 아마도 술병이 아닐까 싶었다. 일주일 전부터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로지 술만 마셨단다. 연락 가능한 보호자를 묻는 질문에 한참이고 아무도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다가 그래도 아무나 말해 보라는 간호사의 재촉에 우물쭈물하며 지금 머물고 있는 여관 여주인의 이름을 댔다. 아, 기껏 댄 사람이 여관 여주인이라니. 간호사도, 본의 아니게 엿듣던 우리도 할 말을 잃었다.

  입원한 지 한 달이 되어가던 새벽, 한 할머니가 폐렴으로 병원에 실려왔다. 응급으로 실려오는 대부분의 환자가 그렇듯 아주 작고 마른 노인이었다. 할머니의 딸과 손녀, 그리고 사위가 수심 어린 표정으로 입원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할머니에게 배정된 중국인 간병인도 도착했다. 딸 내외 그리고 간병인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시기에 그래도 제법 편안한 동거가 되지 않으려나, 하며 잠이 들었다.

  그러나 그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은 셋째 날부터였다. 할머니는 치매가 있어 끊임없이 의료진을 불렀고 새된 목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선생님, 나 좀 어떻게 해 줘. 제발 나 좀 어떻게 해 줘.”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24시간 저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머지않아 내가 어떻게 될 것 같았다.
  그런가 하면 온몸에 달린 주삿바늘을 잡아 뽑아 자꾸 환자복을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꽂혀 있는 주삿바늘이 아파서 싫단다. 아니, 그러면 그 아픈 주사 다시 꽂게 되는 거 아닌가요? 피에 흠뻑 젖은 환자복을 마주할 때마다 간호사들은 긴 탄식을 내뱉었다.
  새벽에 문득 할머니의 침대를 보면, 주삿바늘을 다시 잡아 뽑느라 느리게 움직이는 마른 손이 보였다.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앉아있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면 기분이 절로 섬뜩해졌다. 뽑을 수 있는 주삿바늘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으면 기저귀를 전부 뜯어놓고 요도에 삽입한 소변줄을 뽑아냈다. 간병인의 속이 타다 못해 썩어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틀째, 무연고자 아저씨가 갑자기 일어나서 병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왜 없지?라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걸 보니 뭔가를 찾는 것 같았다. 우리 침대 쪽으로 와서 캐비닛을 물끄러미 한참 들여다보지를 않나, 하여튼 뭔가 이상했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와 다시 침대에 누우라고 얘기하니 갑자기 눈빛이 돌변해 "씨X, 다 죽여 버릴 거야!!" 하며 난동을 부린다. 황급히 달려온 간호사와, 연락을 받고 도착한 병원 보안요원들이 그를 병상에 묶었다. 온갖 욕설과 고성이 오갔고, 결국은 스테이션으로 임시 격리되었다. 그는 끊임없이 몸부림치며 발작성 고함을 질러댔다. 아무래도 정신병력이 있었겠지 싶다. 그리고는 병상에 묶인 채로 어디론가 실려갔다. 그 후로 한 번도 그를 보지 못했다.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인가, 병원의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 다섯 시였다. 이 병동에서 가장 막내인 남자 간호사가 할머니의 혈압을 재러 왔다. 할머니~ 하고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곧이어 퍽, 퍽 하고 세게 등을 치는 소리와 함께 급박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할머니!
  그는 짧게 침묵하다가 이윽고 빠르게 밖으로 뛰어나갔다. 곧이어 제세동기를 든 다른 간호사와, 당직을 서던 의사들과, 파란 옷을 입은 응급구조사, 보안요원까지 속속들이 좁은 3인실로 모여들었다. 어딘가에 달려 있을 스피커로 기계적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5층에 코드 블루, 코드 블루(심장마비) 발생."

  고요하던 병실에 환하게 불이 켜지고, 의사의 지시 아래 심폐소생술이 시작되었다. 더 이상 마르기도 어려울 만큼 마른 할머니의 가슴팍 위로 응급구조사의 몸집이 펌프질 하듯 온 힘을 다해 위아래로 움직였다. 심폐소생술을 눈앞에서 지켜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처음 목격한 심폐소생술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격렬했고, 치열했다. 심폐소생술을 할 때 왜 흔히 갈비뼈가 부러지는지 백번 이해할 수 있었던 몇 분이었다. 나는 보호자 침대 위에 얼어붙은 채, 한 사람의 생명이 한 줌의 재처럼 빠르게 사그라드는 장면을 지켜봤다.

  평소 의사들이 쓴 책을 많이 읽은 덕에 코드 블루가 병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 중 가장 응급한 상황이라는 것도, 의료진들이 내뱉는 용어들도 웬만하면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다만 현실과 책에 미묘한 괴리가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실제로 보면 이 많은 사람들이 한 환자를 살리려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심폐소생술을 하는 그 장면이 꽤 박진감 넘친다거나 멋져 보일 줄 알았는데 웬걸, 너무 무서웠다. 엄마 때문에 병실을 떠나지 못하고 그 장면을 고스란히 보고 있어야 했다. 그 광경을 반강제로 지켜보는 몸이 사정없이 덜덜 떨렸다.
  할머니는 심폐소생술을 마치고 환자복 앞섶이 사정없이 풀어헤쳐진 채 빠르게 중환자실로 실려나갔다. 나는 쑥대밭이 된, 할머니가 사라진 병실 한가운데 서서 어색하게 정리를 했다. 생은 저렇게 갑자기 끝나고- 아주 가벼우면서도 아주 무거웠다. 누워 있어서 상황을 모르는 엄마는 이게 다 뭔 일인지 궁금한 마음에 눈을 동그랗게 말똥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저 말없이 엄마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2
  만렙이 되었다


  5년 차에 접어든 간병 생활. 심지어 이번에 병원 물을 한 달 먹으며 간호사들이 하는 일을 어깨너머로 배웠더니 웬만한 건 다 꽤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간호조무사 시험을 봐도 넉넉히 프리패스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비록 손이 느리지만 꼼꼼한 편이라 엄마의 불안을 토닥토닥 잠재울 수 있는 만렙 간병인이 되었다. 병동의 보호자와 간병인은 5-60대가 대부분이라 고용된 간병인 없이 엄마의 곁을 지키는, 20대의 나는 굉장히 튀는 존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디서든 쳐다보는 시선과 호기심 어린 눈빛이 느껴진다. 간병인 분들은 대개 나에게 굉장히 친절하시고 또 안쓰럽게 여겨주신다. 배선실을 가거나 병실에 있으면 꼭 먹을 것을 주려고 그렇게 애쓰셔서 뭔가 손에 한아름 들려 있는 날이 많아졌다.

  하루는 새로 온 아주 외향적이고 친화력 갑인 아주머니께서 이런 나의 프로다운 모습(?)을 보고 감탄하셔서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통에 본의 아니게 신상조사를 받았다. 먼저 나이 조사, 직업과 사는 동네, 남자 친구 있는지 여부, 엄마와의 가족관계 조사, 성씨와 본관 조사, 가족력에 이르기까지. 아침에 교대하고 직장에 가는 거냐길래 딱히 거짓말은 아니어서 그렇다고 했다. 본인은 영등포시장에서 옷가게를 하신단다. 요구르트며 귤이며 구운 계란 같은 것들을 자꾸만 주셔서 나중에는 받기도 죄송스러웠다.
  밤을 꼬박 새우며 엄마를 돌봤다는 것을 근거로 요즘에 보기 드문 처녀라며, 주선하고 싶은 총각이 있는데 나이가 좀 많다고 말끝을 흐리신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엄마의 눈이 동그래졌다.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웃으며 물었더니 당구장을 운영하는 마흔한 살 노총각이라는 말에 누워 있던 엄마의 눈에서 불꽃이 튄다. 안타깝지만 아무래도 선을 보기는 틀린 것 같다.



 

  생사를 오가는 환자가 있으면 병동에는 긴장감이 맴돈다. 그날 밤에도 1인실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남겨진 가족들의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병실을 옮긴 이후로 아주머니를 잘 보지 못하다 오랜만에 복도에서 마주쳐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우리 엄마, 새벽에 가셨어... 아주 천사처럼 갔어, 편안하고 예쁘게."

   

  아, 지난밤 1인실에서의 곡소리 중 아주머니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겠구나.

  그러고 보니 아주머니의 눈가가 온통 붉었다.


  "... 분명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예요. 엄청 좋은 곳이요."

  "아이고 고마워... 그럼 고생해라, 딸~"


  27년 전 내가 태어난 이 병원에서는 오늘도 조금씩 꺼져가는 생명들이 있다. 괜찮다고 해도 연신 쥐어주시던 그녀의 요구르트를 생각하며, 힘없이 멀어지는 아주머니의 등 너머로 그녀의 어머니를 위한 나직한 기도를 드렸다. 배선실 창문 너머로 찬 바람이 복도로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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