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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Jan 04. 2021

아주 특별한 환갑잔치

두번째 입원(4)

   

  1월에 한 입원은 3월이 다 끝나갈 때까지, 끝날 줄을 모르고 길어졌다. 가뜩이나 코로나가 겹친 탓에 우리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지만 그나마 희망적이었던 건 엄마의 마비되었던 장이 풀리고 폐렴도 깨끗이 나았다는 사실이었다. 기저질환인 루게릭병 자체로 워낙 중환자이다 보니 조심스럽게 상태를 관찰하느라 입원기간이 계속해서 길어지고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엄마는 분명 나아지고 있었다. 수액으로 유지하며 버틴 자그마치 두 달이라는 긴 금식을 끝내고 위루관을 통해, 장이 마비되기 전에 비해 훨씬 많은 양의 식사를 했다.

  

  그렇게 병원에서 밤을 새우고 돌아온 평소와 다름없던 어느 날, 언니와 점심을 먹으며 달력을 보다가 오늘이 엄마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도 보통 생일이 아닌 무려 환갑! 어떡해, 우리 뭐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고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언니는 아빠와 교대를 하러 병원에 갔고 집에 홀로 남은 나는 엄마의 환갑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정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달 전에는 내 생일을 병원에서 맞았다. 슬슬 내 생일이 가까워 온다 싶으니 매일매일 날짜를 물어보던 엄마는 교대 전 맛있는 걸 먹고 오라는 지령을 내렸었다. 우리는 기념일을 그리 중요하게 챙기는 집안은 아니었다. 엄마가 아프기 전에는 각자 살기에 바빠서, 엄마가 아픈 후에는 매일매일을 살아내기에도 벅차서. 기념일을 챙긴다는 게 우리에게 사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침대에 누워서도 우리의 생일만큼은 잊지 않고 챙겨주었었다.

  내 생일에는 언니와 함께 올해 들어 거의 중독되다시피 한 마라탕을 먹고 코인 노래방에 갔다. 그래도 특별한 날이니까 엄마와 함께 오늘을 기념하고 싶어서 병원에 가는 길에 늦게까지 여는 카페를 찾아 조그만 초콜릿 케이크를 샀다. 엄마가 케이크 위에 올려진 크림이 조금이라도 먹고 싶다고 해서 입에 넣어주었다가 결국 그마저도 삼키지 못해 도로 빼냈었더랬지.


내 생일 케이크


  머리를 굴리는 사이 공방으로 출근할 시간이 되었다. 얄궂은 운명의 장난처럼 그날은, 어느 손님의 부모님을 위한 환갑 선물 주문건을 만들어야 했다.

  머리를 질끈 묶고 환갑 선물 제작에 열중했다. 작업을 하는 내내 어떤 날카로운 바늘 같은 것이 자꾸만 마음 한구석을 쿡쿡 찔렀다. 남의 부모님 환갑 선물은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들면서 정작 우리 엄마의 환갑에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다니. 입으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엄마를 위해 맛있는 파티 음식을 준비할 수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줄 수 있는 선물도 없었다. 골똘한 고민과 함께 환갑 선물을 작업하는 동안 정말 문장 그대로 피눈물이 났다.

  제작한 선물을 택배로 보내고 공방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퇴근길, 작은 풍선 장식품을 샀다. 병실이라 초를 켤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생일인데, 초라한 모형 케이크라도 하나 가져가야겠지 싶었다. 집에 있던 동그란 스티로폼 모형에 풍선을 꽂아보았다. 생각보다 훨씬 초라해서 당황했지만 그래도 가져가기로 결정하고 잠시 눈을 붙인 뒤 풍선 케이크와 종이, 그리고 매직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언니와 함께 마실 음료 두 잔과 함께 병실에 도착했다. 누워 있던 엄마가 눈으로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랜 시간 햇빛 한 점 보지 못한 채 병실에서 낮 시간을 보내며 고생한 언니에게 음료를 건네고, 엄마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앉아 준비해 온 이면지에 검은 매직으로 축하 멘트를 공들여 적었다. 매직으로 글씨 쓰는 북북 소리가 작은 병실에 퍼졌다. 내가 글씨를 쓰는 동안 엄마가 언니를 불러 자음판으로 말했다.


- 내 생 일.

- 환 갑.


  세상에 우리 엄마, 기억력이 좋기도 하지. 나이스 타이밍!


  엄마, 안 그래도 우리가 준비했지- 하며 내가 자랑스럽게 나섰다. 언니에게는 종이를 들게 하고, 나는 풍선 케이크를 엄마의 눈앞에 내밀었다. 병실이라 혹시나 화재 위험이 있어 초를 켤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 박수를 치고, 최대한 조그맣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세상에서 제일 초라한 풍선 케이크와 함께 우리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내가 쓴 글씨들을 오랫동안 쳐다보며 읽고 또 읽었다.



  엄마, 우리가 준비한 파티 어때? 장난 아니지? 만족해? 장난스럽게 묻는 내 목소리에 엄마가 긍정의 표시로 눈을 깜박였다. 비록 세상의 다른 화려한 환갑잔치들에 비해 한없이 초라하고 서글픈 환갑잔치였지만,

  그래도 함께여서 아름다웠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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