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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Jan 10. 2021

목련이 피던 어느 날, 우리는 돌아왔다

두번째 입원(5) 2020. 1 - 2020. 4


두번째 입원, 그 마지막 기록.


  

  입원 중인 병실에서는 좀처럼 끼니를 챙겨 먹기가 쉽지 않다. 배가 고플 때는 종종 구운 계란을 먹었다. 계란이 완전식품이라는 말을 굳게 믿는 엄마는 우리가 계란을 먹는 걸 참 좋아했다.


 



  병실에서 뭔가 일을 하고 싶었지만 환경이 여의치 않아서 주로 공방과 관련된 이런 간단한 부업(?)을 하곤 했다. 덕분에 리본 하나만큼은 절대 모자랄 일 없었던 날들.  





  이런저런, 필요한 물건들이 워낙 많다 보니 교대하고 돌아갈 때마다 엄마에게 필요한 물건이나 심지어 무려 이불까지도 당당히 들고 버스에 타곤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코로나가 심하지 않아 보호자끼리는 교대가 가능했다. 언니가 오색찬란한 이불을 들고 병원으로 향하는 나를 보더니 너무 엄청난 비주얼이라며(...) 행여나 밖에서 마주치면 나랑 아는 척하지 말아 달라는 경고와 함께 찍어준 사진.





  봄에 가까운 날씨였는데 뜻밖에도 어느 날 갑자기 눈이 왔다. 그것도 아주 펑펑 왔다. 굳게 닫아 놓은 커튼을 열어젖히고 엄마와 함께 창문 너머로 펑펑 내리는 눈을 함께 봤다. 엄마의 눈높이에서, 엄마의 시선으로 함께 눈을 바라보고 싶어서 엄마의 볼에 내 볼을 마주 대고 엄마의 체온을 함께 느꼈다. 엄마, 눈 예쁘지? 라는 질문에 엄마는 잠시 온통 희어진 창문 너머를 바라보다가 가만히 응, 하고 대답했다.

  지금껏 본 것 중 가장 예쁘고, 가장 슬픈 눈이었다.




  

  두 달 가까이 금식하며 수액으로 버티는 중에도 엄마는 항상 내가 밥을 굶을까 봐 걱정하고 매 끼니마다 어떤 걸 먹는지 많이 먹는지까지 살폈다. 얼굴이라도 조금 여윈 것 같다거나 살이 조금이라도 빠졌다고 하면 근심하고 슬퍼했다. 엄마는 바보야, 엄마가 무려 일년 동안 모유를 먹여 키워서인지 나는 늘 통통해서 한 번도 말랐던 적이 없는데. 그런 걸 슬퍼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세상에 엄마밖에 없을 걸?

  그런데 내가 말했던가, 그래서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엄마가 사오라고 지시했다며 언니가 보내준 자음판 사진.


  음료수 중에서도 알로에 주스와 바나나우유, 초코우유를 제일 좋아한다. 엄마의 곁에서 밤을 새우고 나서 먹는 아침은 주로 삼각김밥이나 빵에 음료수 하나였다. 어느 날엔가, 알로에 주스를 맛있게 마시는 나를 엄마가 빤히 쳐다봤다.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이 교대하러 병원에 갔더니 냉장고에 알로에 주스와 바나나우유, 그리고 초코우유가 들어 있었다. 영문을 몰라 언니에게 물어보니 엄마가 언니에게 나 먹게 사다 놓으라고 했단다. 일부러 엄마 앞에 앉아서 뚱뚱한 바나나우유 하나를 맛있게 먹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흐뭇하게 쳐다봤다.  

  



언니가 보내준 자음판 사진. 2


  그날 아침에 꽈배기를 맛있게 먹었더니만 그날 밤에는 꽈배기가 놓여 있더라.

  엄마, 진짜 사랑스러운 사람.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얼마 안 되는 낙 중에 하나는 밥이나 간단한 간식거리들을 사러 편의점에 가는 것. 대학을 졸업한 후로는 살면서 편의점에 이렇게까지 많이 가 본 적은 없었다. 한동안 편의점 행사상품이 주는 2+1의 매력에 빠져서 나중에는 2+1 상품이 아니면 도무지 사지 않게 되어버렸지 뭐야.

  짭짤한 나쵸나 꼬깔콘 따위가 우리의 고단한 시간들을 달래주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3개월간의 입원도 드디어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퇴원 오더가 나기 전날 밤에는 긴 복도를 걸어 자판기에 가서,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을 뽑았다. 마지막 날의 작은 사치!





  그렇게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목련이 피던 어느 날-

  우리는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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