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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Dec 29. 2020

내가 트로트를 들을 줄이야

두번째 입원(3)


  8개월 만에 입원하게 된 병원. 엄마의 상태는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회진을 돌 때마다 자꾸 새로운 병명들이 추가되었다. 둘째 날에는 폐렴, 그다음 날에는 장이 마비되어 변이 제대로 배출될 수 없는 상태라는 이야기, 또 그다음 날에는 기흉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모르는 동안 엄마의 작고 마른 몸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걸까.

  오전에는 아빠가, 오후에는 언니가, 밤에는 내가. 우리는 그렇게 하루 24시간을 8시간으로 나눠 3교대를 하며 엄마를 돌봤다. 24시간 간병인을 쓰게 되면 한 달에 적어도 300만 원 이상을 내야 했는데 그럴 돈도 없었을뿐더러, 자음판을 이용해 엄마와 소통할 수 있는 간병인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으므로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게다가 의식이 멀쩡한 엄마를 남의 손에 맡기고 마음 아파하느니 차라리 직접 간병하는 게 훨씬 편했다. 그렇게 우리의 이상한 3교대가 시작되었다.


  온 병동을 통틀어 밤에 자지 않는 간병인은 나뿐이었다. 노트북을 이용해 이런저런 동영상들을 보거나 공연히 자판기와 복도를 왔다 갔다 하거나,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했다. 원체 잠이 많은 데다 까딱 잠들어버릴 것에 대한 공포가 너무 커서 눕기는커녕, 벽에조차 머리를 기대지 않았다. 엄마는 내게 미안한지 자꾸 자라고 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잠들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매일을 버텼다.

  엄마는 폐렴 치료를 위해 항생제를 투여받기 시작했다. 폐 속에 찬 공기를 빼내기 위해 기흉관을 달았고, 항문에 관을 꽂아 변을 빼냈다. 우리는 묵묵히 3교대를 계속해가며 엄마가 조금이라도 호전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지만 엄마의 상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매일매일 병원을 오가는 동안 우리 모두의 일상은 중단되었고 병원비는 늘어만 갔지만, 서로를 바라보며 지냈다.


  밤에 돌아와서는 주로 오전과 낮에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저녁에 일어나서는 병원에 있는 언니를 위해 저녁거리를 사서 병원으로 가 함께 저녁을 먹었다. 하루 종일 나누지 못한 수다를 떨고, 혼자 갈기 힘든 기저귀를 함께 갈거나 옷을 갈아입히고, 떨리는 검사 결과도 함께 들었다. 병원에 혼자 있으면 마음이 힘들었지만 둘이 있으면 훨씬 괜찮다는 걸 알기에 각자 집에 있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병원의 교대 방침에 따라 우리는 더 이상 함께 있을 수 없었고 병원 문 밖에서 교대해야 했다. 코로나 블루는 우리에게 더 짙게 찾아왔다. 언니와 나의 유일한 낙은 아빠가 병원에 있어 우리가 함께 집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던 정오에 함께 점심을 먹는 순간뿐이었다.


이마트 다녀온 날. 언니와 병원에서 함께 먹을 수 있었던 마지막 저녁.




  내게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 세대가 기성세대가 될 시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의문이 있었다. 예를 들면 '우리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 고부갈등이나 시집살이가 사라질까?' 같은 미래에 대한 궁금한 점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그쯤 되면 트로트라는 장르가 사라지지 않을까?'였다. 특유의 뽕짝 멜로디, 강렬한 가사, 그리고 번쩍이는 무대의상까지. 잔잔한 인디 음악이나 발라드를 즐겨 듣는 나에게는 전주만 들어도 지긋지긋한 장르가 바로 트로트였다.

  입원한 지 한 달이 지나갈 시점, 우연히 미스터 트롯을 보게 됐다. 처음에는 그저 요즘 하도 화제라기에 언니와 점심을 먹으며 우연히 보게 된 것이었는데 웬걸, 이거 너무 재밌잖아? 심지어 노래도 왜 이렇게 가슴에 와 닿는지. '희망가'를 듣다가 할아버지를 갓 떠나보낸 어린 동원이의 목소리에 펑펑 울어버리고, 급기야는 교대를 하러 병원에 가는 길에 '18세 순이'를 듣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더 이상 트로트를 듣지 않게 되었지만, 그때 당시 간병과 코로나로 지쳐 있던 마음에 그토록 싫어했던 트로트가 얼마나 뜻밖의 위로가 되어주었던지.

  그렇게- 내 오랜 의문에 대한 답은, '사라지지 않는다'인 걸로!     






  밤 11시가 넘은 시간, 절친한 동생 A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지금 병원에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웬만큼 친한 지인들은 모두 엄마의 입원 사실을 알고 있었다. A는 갑자기 자신이 근처에 와 있다며 코로나 때문에 들어올 수 없으니 잠시 뒤에 병원 앞으로 나올 수 있는지 물었다. 병원에서 한 시간도 넘는 거리에 살고 있고, 간병과 코로나 때문에 본 지 한참 된 A가 갑자기 병원 근처에 와 있다는 이야기에 당황스러웠지만 날이 추우니 옷을 꺼내 입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다고 하니 불안해하는 엄마에게 금방 돌아오겠노라 약속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병원이 크지 않아 내려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병원 문 언저리에서 서성이고 있는 A의 실루엣이 보였다. 뭐야, 어쩌다가 왔어-하면서 미안하고 반가운 마음에 차가운 A의 손을 꼭 잡았다. 늦은 시간이라 부지런히 뛰어왔다는 A의 양 볼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 언니, 이거.


  A가 들고 온 종이 쇼핑백을 건넸다. 놀라서 받아 든 쇼핑백이 묵직했다. 별 건 아니지만, 하면서 그녀는 웃었다. 멀리서 와 준 그녀에게 커피 한 잔이라도 대접하기는커녕 엄마 때문에 5분 정도밖에 못 보고 돌아서야 했다. A는 행여나 막차를 놓칠까 서둘러 떠났다. 1월의 차디찬 바람 속으로 빠르게 멀어지는 A의 뒷모습을 보며 쇼핑백 손잡이를 꽉 쥐었다. 찬바람에 붉어진 양 볼이 자꾸 생각나서 눈물이 나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병실에 돌아와 쇼핑백을 열었다. 어쩜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워왔는지. 대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지 제법 오래되어 내 취향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A의 선택은 무엇 하나 틀린 것이 없었다. 긴 밤을 함께해 줄 간식들, 원하는 음료 자판기에서 뽑아 먹으라고 지퍼백에 넣어 온 동전들, 그리고 텅 빈 쇼핑백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던 오만 원권 지폐 한 장.

  아 진짜, 지가 학생인 주제에 돈이 어디 있다고, 하면서 과자를 쥔 손에 눈물 떨궜다. 힘겨운 날에 누군가 보내 준 마음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긴 울림을 남기곤 했다. A가 주고 간 돈으로 엄마의 부은 발을 위한 발마사지기를 샀다. 아마도 저 마사지기를 볼 때마다 A의 붉어진 양 볼을 떠올리게 되겠지, 한없는 고마움에 녹진녹진해진 그날 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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