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나는 내 인생도 평생 장애와는 연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이나 친척 중애 장애를 가진 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중고등학교 때 복지관으로 종종 다녔던 봉사활동을 제외하면 장애우와 접촉할 만한 일도 거의 없었다. 그만큼 먼 일이라고 생각해왔고, 철저히 남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장애우 가족들을 보며 '아, 저런 집도 있구나.' 하는 일이 내 인식의 전부였다.
가족 중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생길 뻔한 일은 있었다. 엄마가 남동생을 가졌을 때 기형아 수치가 굉장히 높아 거의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날 확률이 높았다고 했다. 엄마에게서 그 날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은 적은 없지만, 겁이 많은 우리 엄마는 분명 동생을 낳는 그날까지 큰 죄책감과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도 엄마는 용감하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동생을 낳았다. 주변의 염려와는 달리 아주 건강하게.
엄마가 사지를 전부 못 쓰게 되고 휠체어에도 앉지 못하는 상황이 오게 되자 우리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을 딱히 활용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국가에서 뭐라도 지원받을 수 있다면 조금 낫지 않을까라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였다. 그리고 그 첫 타자가 바로 장애등급 판정을 받아 장애인 등록을 하는 것이었다.
구청에 가서 장애인 등급 판정 심사 신청을 했다. 원래는 본인이 직접 가서 해야 한다지만, 엄마는 이미 직접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빠가 가서 신청을 하고 나니 동사무소 직원들이나 관계자들이 와서 직접 엄마의 상태를 살펴보고 심사를 한다고 했다.
이 상황을 전달받은 엄마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엄마는 손끝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심사에서 탈락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이 되었다. 왜인지 몰라도 '심사'라는 단어는 늘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신청서를 내고 난 후 며칠 뒤, 동사무소 측에서 세 명의 관계자가 집을 방문했다. 누워있는 엄마를 살피고 팔을 들어 올려 보라고 하거나 다리를 움직여 보라고 했다. 엄마는 입을 굳게 다문 채 가만히, 그저 가만히 있었다. 관계자들은 몇 가지를 더 묻고, 사진을 찍고, 움직여 보라는 말에 묵묵부답으로 가만히 있는 엄마의 동영상을 촬영했다. 엄마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엄마의 곁에 어정쩡하게 서서 촬영이 끝나길 기다렸다.
"네. 다 끝나셨고요~ 심사 결과 나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관계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난 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제 우리가 기다릴 것은 엄마가 장애인이 되었다는 통보뿐이었으니 심사가 끝났다고 기뻐할 일도 아니었다.
할 말을 찾지 못해 가만히 엄마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다시 조용해진 집 안, 침대 위에 누운 엄마는 조용히 울고 있었다. 팔을 들어보라는 말에, 다리를 움직여 보라는 말에 엄마인들 왜 움직이고 싶지 않았을까. 설령 장애등급 판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로 인한 약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싶었겠지.
손을 꼭 맞잡은 채로, 등을 동그랗게 말고 울고 있는 엄마의 눈물을 꾹꾹 눌러 닦아주었다.
희귀 난치성 질환인 루게릭병 환자라면, 또 장애인 등록을 마쳤다면 다음과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1. 장애인연금
= 18세 이상부터 수령 가능하다고 하는데, 우리 가정의 경우엔 공무원연금 수령자가 있어 중복 지급이 불가능한 관계로 지급받지 못했다.
2. 보장구
= 이동에 필요한 휠체어, 욕창매트, 휴대용 변기 등을 1/10 정도 되는 가격으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보장구
[ 補裝具 , assisting devices ]
신체 결함 및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고안된 장비이다. 보조기구라고도 한다. 「장애인복지법」 제65조에 따르면 장애인 보조기구는 장애인이 장애의 예방·보완과 기능 향상을 위하여 사용하는 의지(義肢)·보조기 및 그밖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보장구와 일상생활의 편의 증진을 위하여 사용하는 생활용품이다.
국가와 지방단체에서 지급하는 장애인 보조기구는 다음과 같다. ① 의지(prosthesis)-의수(義手), 의족(義足), ② 보조기(orthosis, brace)-상지 보조기, 하지 보조기, 척추 보조기, ③ 휠체어-수동 휠체어, 전동 휠체어, ④ 정형 구두 등이 있다.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신경외과의 처방전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제공된다. ① 의지, 보조기-신체의 일부가 상실되어 의지, 보조기 착용이 요구되는 사람, ② 전동 휠체어-뇌병변 장애인으로서 상지기능 근력 검사가 1~3등급이고 인지기능 간이 정신진단검사 30점 중 24점 이상인 사람, 또는 지체장애인으로서 상지기능 근력 검사가 1~3등급인 사람, ③ 전동 스쿠터-뇌병변 장애인으로서 상지기능 근력 검사가 4~5등급이고 인지기능 간이 정신진단검사 30점 중 24점 이상인 사람 또는 지체장애인으로서 상지기능 근력 검사가 4~5등급인 사람, ④ 수동 휠체어-지체장애인이나 뇌병변 5급 이상인 사람으로서 100m 이상 보행이 불가능한 사람, ⑤ 정형 구두-다리 길이의 차이, 족부 변형, 편마비가 있는 사람
며칠 후 심사에 통과되었다는 연락과 함께 동사무소에 가서 장애인등록증을 받아왔다. 엄마의 이름 옆에 쓰여 있는 '지체장애 1급'이라는 단어가 적응이 안 되고 낯설었다. 우리 엄마가 장애인이라니, 그것도 무려 1급의 중증 장애인이라니. 사실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아마 평생 적응되지 않을 것 같다. 아직 함께 팔짱을 끼고 걷던 엄마의 씩씩한 걸음걸이가 선명하고, 매일같이 엄마가 오늘이라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는 꿈을 꾸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