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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Dec 01. 2020

어디까지일까, 내 불면(不眠)의 밤은

잠이 부족해


  긴 간병 생활 가운데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잠이 너무 부족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엄마가 더 이상 스스로 호흡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인공호흡기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었다는 것은 곧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장의 의사소통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밤이었다. 엄마의 곁에서 누군가가 자고 있다가 엄마가 부르는 목소리에 깨어나 필요한 것을 도와주곤 했는데,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것조차 어려워진 것이다. 엄마는 '응, 으응.' 하는 정도의 소리만 낼 수 있었고 자주 말하는 아주 간단한 단어만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으며,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아예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첫 번째 입원이 끝난 날로부터 아빠와 언니, 나 이렇게 세 명이서 가족회의를 하기 위해 둘러앉았다. 당장 밤과 새벽에 누구 한 명은 깨어 있어야만 했다. 주기적으로 체위를 변경하고, 가래를 빼주고, 위루관을 통해 밥을 먹이고, 이외에도 엄마가 원하는 다양한 요구들을 수시로 들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하루 종일 누워 있는 탓에 꼭 밤이 아니더라도 수시로 잠들기 일쑤였기 때문에 밤이라고 해서 하루의 다른 시간과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또 혹시나 엄마가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깨지 못해서, 밤새 신음하 우는 엄마를 방치한 채로 그대로 아침이 온다면? 아,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인공호흡기를 24시간 사용하기 시작한 뒤로는 더욱 조심스러웠다. 인공호흡기는 가습기에 정제수를 채워주거나 바람이 새지 않도록 마스크의 밴드 길이를 조절해줘야 하는 등 신경 쓸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엄마의 얼굴과 인공호흡기 본체를 연결하고 있는 호스의 여러 연결부들은 걸핏하면 툭 빠져서 잠깐만 방심했다 하면 바로 삐- 삐- 하는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결정적으로 인공호흡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인공호흡기에 능숙한 사람이 자리에 없거나 경고음을 듣지 못해 문제점을 시정하지 못한다면 엄마는 단 몇 분 안에 사망에 이를 수도 있었다.

  결국 누군가는 반드시 밤에 깨어 있어야 했다.


  회사에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밤에 반드시 자야 하는 언니를 제외하고 아빠와 내가 남았다. 사실 답. 정. 너. 답은 정해져 있고 나는 그저 대답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대답을 미뤘다. 그래도 나름 젊은 20대의 나와 60이 넘은 아빠. 모든 걸 포기한 듯한 나의 표정과 함께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나는 두 손을 들고 말했다.


  "내가 할게, 밤 당번."


  언니: 22:00-01:00

  나   : 01:00-07:00

  아빠: 07-00-11:00


  그리하여 이렇게, 우리의 불침번이 확정되었고, 열한 시경에 자서 새벽 한 시에 일어나 밤을 새우고 동이 다 트고 나서야 잠드는 생활이 벌써 2년째. 2년 동안 단 한 번도- 밤에 잠을 자 본 적이 없다.

 




  옛날부터 죄인들에게 행한 다양한 고문들 중에 가장 잔인한 고문이 바로 잠을 재우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내가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집안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다 엄마의 몫까지 두 사람의 몫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48시간, 아니 적어도 36시간 정도는 필요한데 하루는 야속하게도 24시간밖에 되질 않으니 잠이 부족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를 어느 정도 잘 아는 지인이라면 누구나, 내가 얼마나 잠이 많은 사람인지를 안다. 하나님께는 죄송하지만 교회에서 설교 시간에도 자주 졸았고(...) 중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 대학교에 가서도 참 지겹게 꾸벅꾸벅 잘 조는 학생이었다. 수능 시험 날에는 외국어 영역 듣기 평가를 하던 중 깜빡 잠들어 버리지를 않나.


  때와 시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는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바로 잠들었기 때문에 불면이란 단어를 평생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잠을 깨기 위해서 노력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커피는 마시지 않지만 대학교에 가서는 매 쉬는 시간마다 레쓰비를 들이마시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러나 하다못해 카페인조차도 내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대학교 시절 과제 때문에 밤을 새우는 날이 잦았는데 하루는 용기 내어 핫식스를 먹어봤다가 5분 후에 잠들었다. 책상에 엎드려 꿀잠을 잔 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마주친 빈 핫식스 통을 허탈하게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 나는 이 놈의 잠과 평생 동고동락해야겠구나!라는 사실을.


   비록 다른 가족들이 엄마를 봐줄 때 틈틈이 잠을 청하기는 하지만, 그런 내가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하는 삶이라니. 간병을 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지만, 그 어떤 것도 이놈의 '잠'처럼 나를 괴롭게 하지는 못했다.


  집에서도 힘들지만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그때부터 헬게이트가 오픈되었다. 다행인 건 집에서는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밀린 일을 처리하다 보면 시간이 빨리 가는데, 가진 것이라곤 오로지 핸드폰뿐인 병원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도와줄 가족은 모두 집에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비좁고 불편한 보호자 침대를 벗 삼아 엄마와 단둘이 있다 보니 행여나 깊이 잠들까 봐 미친 듯이 예민해진 상태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온 병원을 통틀어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보호자는 나밖에 없었다. 나는 잠을 깨기 위해 자주 물을 마셨고, 배선실에 가서 찬 공기를 들이마신 뒤 돌아오곤 했다. 보통 다인실이라 알람을 해놓을 수도 없고, 정말이지 미칠 노릇이었다.


  고민 끝에 이어폰으로 들을 수 있는 알람 어플을 다운받았다. 핸드폰 알람은 진동으로 20분에 한 번씩 맞춰 두고, 마찬가지로 20분에 한 번씩 울리는 이어폰 알람을 설정한 뒤 무선 이어폰을 귀에 낀 채로 겨우 잠들었다. 물론 이 방법 역시 완벽하지는 않았다. 엄마의 끙끙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 이어폰에 배신감을 느낀 채 발치를 찾아보면, 잠결에 뒤척이는 바람에 귀에서 빠진 이어폰이 조그만 콩나물처럼 나동그라져 있는 것이 보이곤 했다. 잠이 없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힘든 상황이겠지만, 유독 잠이 많은 내가 한없이 원망스럽고 원망스러웠다.


20분 단위로 설정해놓지 않으면 절대 깰 수 없는 밤.




  하루는 볼 만한 전자책 목록을 뒤적이다 반가운 제목의 책을 찾았다. 늘 잠이 부족한 내게 한 줄기 구원과도 같았던 책의 제목은 바로


   <적게 자도 괜찮습니다> !!!



  ... 하지만 책의 서두에서부터 이미 낙담해버리고 말았다.

  설명에 따르자면 이 세상에는 적게 자도 되는 쇼트 슬리퍼(short sleeper)와 길게 자야만 하는 롱 슬리퍼(long sleeper)가 있는데, 책의 내용에 의하면 나는 완벽하게 후자에 해당했고... 나는 책을 덮었다.

  그렇게 이번 생은 쿨하게

  졸면서 살기로 결심했다.




  이 기구한 운명을 안고서 오늘도 새벽 한 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때로는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식탁에 엎드려 잠이 들고, 평범한 낮 시간을 살아가다가도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고야 만다.  덕분에 만성 피로와 편두통까지도 같이 껴안고 살아가야 한다. 이 삶을 살아내는 동안 딱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


  어디까지일까, 이 내 기나긴 불면의 밤은-

  오늘도 남들과는 사뭇 다른

  하루가 저문다.       


  그래도 살아 있으니까,

  살아내야만 한다.



https://brunch.co.kr/@wyverns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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