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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Feb 23. 2021

엄마의 장례식 다음 날, 제주로 떠났다

이별 여행 기록지



  우리 제주도에 가자. 음, 3박 4일 정도?

  장례식 둘째 날, 결연한 표정으로 언니가 말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장례식 첫날밤, 장례식장은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9시까지만 조문객을 받았다. 저녁 즈음에 엄마가 떠났기에 경황없는 가운데 부고를 돌리다가 어영부영 하루가 끝나 버렸다. 5일 동안 1인실에서 거의 잠들지 못했던 나는 언니와 함께 장례식장을 떠나 20분 거리의 집으로 돌아왔다. 밤에 잠을 자는 건 2년 만이었고, 매번 번갈아 불침번을 섰던 언니와 나란히 누워 잠을 자는 건 3년도 더 된 일이었다.


  크고 많은 일이 일어났던 하루가 너무 꿈처럼 길어서 아직 내게 닥쳐온 상황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가 본 장례식이라곤 오래전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이 유일했다. 내 생에 두 번째로 참석하는 장례식이 우리 엄마의 장례식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제 내일은 상주가 되어 상복을 입는 건가, 드라마에서나 보던?

  복잡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고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기어이 세 시간도 안 되어 잠에서 깨고 말았다. 언니를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거실로 걸어 나갔다. 아빠와 남동생은 장례식장에 있었기 때문에 인기척 없는 거실에 한기가 돌았다. 내 전화를 받은 가족들이 옷만 대충 입고 다급히 떠났을 집은 범죄가 일어난 사건 현장 같았다. 평소 깔끔한 성격의 아빠답지 않게 집안이 지저분했다. 오래되어 밥알이 말라붙은 그릇들이 싱크대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거실 한복판에는 주인을 잃은 간병용 침대가 쓸쓸하게 놓여 있었다. 휠체어에조차 앉지 못하고 누워서만 지냈던 2년여의 시간 동안 엄마와 늘 한 몸이었던 침대. 침대를 잠시 바라보다가 불침번들을 위해 침대 발치에 마련해 둔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의자에 앉으면 늘 시야에 담겨 있던 엄마가 없다는 사실은 무시하려 애썼다.

  곧 무시무시한 적막이 찾아왔다. 적막은 엄마의 부재가 예전과는 다른 장르임을 상기시켜 주는 가장 직접적인 증표였다. 24시간 돌아가던 인공호흡기 소리, 2초 간격으로 픽픽거리던 산소발생기 소리. 그리고 주기적으로 약물을 넣어주던- 아래층에서 올라올까 늘 조마조마했던 네빌라이저 소리, 심심한 엄마를 위해 거의 24시간 내내 켜져 있었던 텔레비전 소리, 무엇보다도 나를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 이제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순간, 그대로 무너져 울었다.

  오열하는 소리에 깬 언니가 반쯤 뜬 눈과 어두운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다시 자라며 언니의 등을 떠밀어 방에 집어넣은 뒤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설거지를 했다. 말라붙은 밥풀은 좀처럼 잘 씻기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영정사진만 보면 눈물이 났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아프기 전 엄마의 사진은 너무 낯설고 너무 예뻤다. 그 아름다움이 이토록 낯설다는 사실이 계속해서 마음을 아프게 저몄다. 하지만 실은 영정사진보다 더 슬펐던 건 한 송이의 국화꽃을 집어 든 채 엄마의 영정 앞에 선 조문객들의 망연자실한 뒷모습이었다. 사랑했던 가족을, 가장 친했던 친구를, 아꼈던 동료를 별안간 낯선 장례식장의 영정사진으로 마주한 그들의 가늘게 떨리는 등이 왜 그리도 보기가 힘들었는지.

  힘겨웠던 둘째 날을 마칠 즈음 언니는 장례식 다음 날 제주도로 떠나자고 했다. 엄마가 루게릭병에 걸린 이후 우리 가족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 우리가 겪었던 평범한 일상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게 되었고 언제 엄마의 숨이 멎을지, 언제 또 119를 불러야 할지 초조해하는 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한때 일상이었던 것들과 더 이상 일상이 아니게 된 것들의 경계는 점점 단단하고 확실해졌다. 남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것들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리의 일생을 뒤흔든 슬픔을 견디고 5년 만에 다시 마주한 '평범한, 남들 같은' 일상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슬픔을 온전히 마주하고 인정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실 예전부터 생각했던 일이었고, 며칠 후면 다시 출근해야 하는 언니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부의금을 정리하느라 제법 늦어진 새벽 우리는 급히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매했다.

  그렇게 누구도 상상 못 할 서글픈 사연을 안고서, 우리의 아주 기묘한 제주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제주공항에 내리자마자 대로변에 감귤이 가득 달린 나무가 보였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무려 한 시간이 걸렸고 섬에는 가로등이 없어 숙소를 찾는 데 한참 동안 애를 먹었다. 배가 고팠던 우리는 짐도 제대로 풀지 않은 채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3박 4일 내내 코로나 때문에 밖에는 거의 나가지 않고 숙소에만 있을 예정이었다.

  저녁과 밤마다 기도하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매 시간마다 정해진 이야기 주제를 가지고 오래도록 마음껏 이야기했다.


- 어떻게 해야 엄마를 더 아름답게 보내줄 수 있을까

- 엄마는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었지?

- 엄마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에 대하여.

- 지난 5년이 우리에게 남긴 것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들

-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남겨진 생을 살아야 할까


  모든 순간이 고비였고 매일 밤이 눈물바다였지만 육지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나아졌다. 엄마는 그냥 세상을 떠난 게 아니고 운이 나빠서, 재수가 없어서 간 게 아니다. 이 땅에서 맡겨진 사명을 다하고 제일 아름답고 멋지게 떠난 거였다.

  물기 어린 눈으로 그 확신을 가슴에 품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다음날에는 언니가 가고 싶어 했던 오름을 올랐다. 늘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름 중턱에서부터 정말 무시무시한 바람이 불었다. 일출봉도 아니고 이 야트막한 오름을 오를 뿐인데도 너무 거센 바람에 걸음을 옮기기 힘들었다. 바람을 가까스로 견디며 서 있는 동안 문득, 앞으로 우리의 삶도 이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토록 아프게 떠나보낸 삶은 지독히 슬프고 길 테지만, 살면서 많은 풍파가 있을 테지만. 어딘가 정상이 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오를 것이다.  


  숙소가 있는 골목을 나가면 바로 바다가 보였다. 우리는 해안가를 따라 하염없이 오래 걸었다. 코로나가 무서워 거의 가지 못했지만 손님이 하나도 없는 카페가 보이면 조심스레 들어가 한라봉 주스를 마시고, 그리고서 또다시 해안을 따라 걸었다. 우리의 종착지는 어느 붉은 등대였다. 등대에 기대어 앉자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언니와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푸르게 반사되는 물빛과 철썩이는 파도를 오랫동안 바라봤다. 저 맑은 하늘 어딘가에서 엄마가 우리를 향해 웃고 있을 것 같아서 하늘은 오래 바라보지 못하고 애꿎은 바다만 내려다봤다. 하늘이 서글프게 푸르고 맑았다.



  엄마, 우리 엄마 몫까지 열심히 살게.

  지켜봐 줘!





  어느 해변가에 멈춰 서서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이제 우린

  아주 먼 길을 가야 해.

  서두르지 말자.


  자. 그럼 우리 함께, 치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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