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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Feb 21. 2021

내 마음은 매일: 그 1인실 앞으로

그날의 펜시브



  병원에 입원하기 전날 엄마는 밤새 앓았다. 여전히 코로나 상황은 좋지 않았으므로 병원 문턱을 밟을 수나 있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왔다. 평소대로 새벽 1시에 일어나 살핀 엄마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아 보였다. 아침이 되면 바로 출발하자고 엄마를 다독이고 다이소에서 산 제일 큰 장바구니에 기저귀와 담요 등의 입원을 위한 짐을 쌌다. 제법 자주 있는 일이었기에 짐을 싸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죽어도 병원에 가기 싫다던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간절히 병원을 원하고 있었다. 못 견디겠다고, 했다.

  입원 첫날이니만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잘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억지로 김치사발면 한 개를 먹었다. 엄마 미안한데, 나 이거 하나만 먹고 바로 119 부를게. 엄마가 힘겹게 눈을 깜박였다. 덜 익은 면발을 젓가락으로 억지스럽게 풀어서 아무렇게나 집어삼켰다. 국물에서는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119를 불러 병원으로 가는 내내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혹시 우리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싶었지만 극적으로 자리가 나서 바로 격리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몇 달만에 다시 마주친, 올해 몇 번째로 만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응급실 과장님과 머쓱한 조우를 했다.  

  마지막 입원을 하기 전, 엄마와 함께 나란히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엄마 상태가 좋지 않아서 어딜 딱히 나간 적도 없었는데 내 몸에서 약간의 열이 난다고 했다. 며칠 사이 악화된 엄마의 컨디션으로 인한 긴장 때문이었을까, 병원에 오는 내내 두근거렸던 가슴 때문일까. 예상대로 첫날밤은 지옥이었다. 엄마는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2분에 한 번씩 머리를 뒤집거나 자세를 바꿔 달라고 했다. 의료진도 혈압을 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조치가 없었다. 엄마의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다음날 우리는 뜻밖의 결과를 받아들었다. 심근경색이라는 처음 듣는 장르의 병명. 엄마의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말. 엄마는 병명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태연하게 보험을 청구하라고 했다. 조금이나마 언니와 교대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던 병원에서는 이번에는 절대 교대가 불가능하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당연한 일이었고 예상한 일이었지만 이곳에서의 모든 상황과 두려움을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절망스러워서 겁에 질린 눈물이 났다.     


  코로나 결과가 음성으로 나온 다음날 엄마는 다인실로 옮겨졌다. 1인실 요금으로부터의 압박이 없는 다인실은 한결 편했지만 이윽고 그런 잠깐의 편안함을 비웃듯 고열이 나기 시작함과 동시에 엄마는 의식을 잃었다. 저번 입원 때도 딱 이랬는데 이틀 만에 의식이 돌아왔었지. 이번에도 그럴 거야. 나는 근거 없는 확신과 함께 부지런히 한 시간 간격으로 엄마의 몸을 뒤집어 주었다. 그러나 그날 밤 기다렸다는 듯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서 우리는 다시 1인실로 향해야 했다. 무려 이틀이나 열이 떨어지지 않자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 가족들에게 인사할 시간을 주겠다는 말과 함께.

  다음 날, 연락을 받은 가족들과 이모, 삼촌이 병원으로 찾아왔다. 코로나 때문에 한 명씩 따로따로 올라와야 했고 각자에게 한 사람당 1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가장 마지막에 올라온 이모는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오열하며 말했다. 너네 애들 내가 다 책임질게, 걱정하지 마. 애들 셋 다 결혼하고 애 낳는 것까지 내가 다 봐줄게. 그러니까 넌 하나도 걱정하지 마. 하나님, 우리 동생 제발 열이라도 내리게 해 주세요... 이모의 말을 듣던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한바탕 쏟은 눈물과 함께, 그날 저녁 응답처럼 열이 내렸다.


  열이 내린 기쁨은 아주 잠시였다. 그날 새벽, 석션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잠깐 호흡기를 뗐다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아주 고르고 가지런했던 엄마의 아래 치아가 호흡기 압력을 견디지 못했는지 온통 무너져 있었다. 때마침 들어온 간호사 선생님을 붙들고 펑펑 울면서 말했다.


  - 선생님, 우리 엄마 치열이 무너진 것 같아요. 이 호흡기 압력 좀 줄여 주세요. 제발요. 너무 힘들 것 같단 말이에요.


  간호사 선생님은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이 봤을 때는 괜찮다며 울지 말라고 나를 달랬다.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으니 비로소 마음도 생에 대한 의지도 놓아버렸던 걸까. 누가 봐도 이빨은 무너진 게 확실했고 그날 새벽 내 마음도 함께 무너졌다.  

  다음날 아침부터 혈압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 대소변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은 지 오래였고 상황을 전하러 온 전담간호사는 혈소판 수치가 너무 낮아서 위험하다고 했다.


  - 혈소판 수치가 낮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 어... 익스파이어(expire)... 할 수 있죠.


  전담간호사가 나간 후 인터넷에 expire를 검색했다.        

  '사망하다.'


  잠시 후 들어온 주치의 선생님이 수혈을 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라며 수혈을 할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작년에 작성한 사전 연명치료 동의서가 떠올랐다. 내 기억에 의하면 그 항목에 수혈이 있었지, 아마.

  고개를 돌려, 초점 없이 눈을 뜨고 있는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라면 분명히 수혈을 받지 않겠다고 하겠지만, 그렇지만. 엄마에게 물어볼 수 없는 나는 어떻게 하면 좋지? 이렇게 아픈 엄마라도 살아 있기만 하면 돼. 엄마한테 못할 짓이라고, 내 욕심이라고 해도 괜찮아. 난 절대 내 손으로 엄마를 포기할 수가 없어.


  - 선생님. 안 받겠다고 서명은 했는데요... 근데 딱 한 번만 받고 싶어요. 의미 없다는 거 아는데요. 그래도 차마 제 손으로 포기 못하겠어서요...


  얼마든지 그렇게 하라며 따뜻하게 나를 다독여 준 주치의 선생님이 나가기 무섭게 수혈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회사에 있던 언니에게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아무래도 이번엔 엄마를 보내게 될 것 같다며 그 주의 주일 설교 링크를 보내왔다. 모세의 마지막에 관한 설교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에 들여보내고서 결국 자신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모세. 한평생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고 신앙으로 키우다 생의 마지막에 다다라 있는 엄마. 보호자 침대에 홀로 웅크린 채 울다가 온몸에 주렁주렁 줄이 꽂힌 채 누워 있는 엄마를 흠뻑 젖은 눈으로 올려다봤다. 블라인드 너머로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 아래 있는 엄마가, 모세처럼 보였다.   




 수혈을 준비하다 말고 엄마는 갑작스럽게 뇌파 검사를 위해 뇌파검사실로 보내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검사가 끝나고 나온 엄마의 침대를 붙든 채 검사 결과가 좋기를 바라며 천진한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근데 우리 엄마 이 검사 왜 한 거예요? 검사 결과는 괜찮아요?애써 태연하게 설명해 주셨던 것 같은데 대답은 기억나지 않는다.


  병동으로 돌아온 엄마를 다시 침대로 옮기기 위해 다섯 명이나 되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동원되었다. 검사 때문에 잠깐 떼어 놓았던 온갖 줄과 호스들을 다시 엄마의 몸에 연결하느라 분주한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1인실 문 쪽에 비껴 나 서 있었다. 그런데 원래대로라면 심박과 산소포화도 숫자가 떠야 할 기계에, 왜인지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이윽고 간호사 중 한 명이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어 이거, 익스파이어(expire)인 것 같은데.


  순간, 모든 간호사들이 일제히 멈칫하더니 문 쪽에 서 있는 내게로 시선이 향했다. 나는 누워 있는 엄마와 응답 없는 기계를 번갈아 쳐다봤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지금이구나. 수도 없이 상상했던 엄마의 마지막이 지금이구나. 엄마가 드디어 우리 곁을 떠난 거구나.  

  내 기억은 늘 여기서 끝이 난다.




  물론 그 이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호흡기를 뗀 엄마의 모습을 2년 만에 마주하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건 전화를 받은 가족들이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왔다. 꿈결처럼 장례를 치렀고 화장터에 들어가는 관을 보고 오열하다 사물함보다도 작은 납골당에 한 줌의 유골이 된 엄마를 넣었다. 가족들은 의식이 멀쩡한 상태에서 병원에 간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했고, 엄마의 임종을 5일 동안 혼자서 지켜봐야 했던 나는 죽어가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장례식 중간마다, 애써 돌아온 일상의 순간순간마다, 잠깐 방심했다 싶으면 나는 어느새 또다시 그 날의 1인실 앞으로 돌아간다. 간호사들과 함께 침대를 옮기고 방해가 될까 봐 문 쪽으로 비껴난다. 엄마의 몸에 수많은 줄들이 연결되는 모습을 늘 그렇듯 아무렇지 않게 지켜본다. 이윽고 한 간호사의 중얼거림이 들리고, 멈칫하며 내게로 쏠린 시선들이 일제히 날아와 잘 벼린 표창처럼 가슴에 꽂힌다.


  무심코 걷던 길거리에서, 내 방 책상 앞에서,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문득. 무한으로 반복되는 덤블도어의 펜시브처럼 나는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 그날의 1인실 앞에 서 있다.  


  언제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제 그만 1인실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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