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머리가 아프다. 실제로 통증이 있는 건 아님에도 두통처럼 머리가 지끈거린다. 보험사 홈페이지에 접속한 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 책상을 가득 메우고도 남을 온갖 서류들 때문이다.
가족의 모든 것이 다 엄마의 명의로 되어 있었다. 살고 있는 집과 온 가족 구성원의 보험계약, 인터넷과 정수기, 하다 못해 핸드폰까지. 엄마가 떠난 이후 제일 많이 했던 말은 이 문장이었다. "아. 저희 엄마가 돌아가셔서 그러는데요."
병원 원무과 앞에서, 동사무소에서, 보험사와 통화하는 핸드폰 너머로 엄마의 사망선고를 앵무새처럼 내뱉었다.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은 내 인생을 뒤엎고도 남을 사건인데 그 사실이 이 간단한 한 문장으로 축약된다는 게 어색했다. 그렇게 수도 없이 말했으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내 입으로 낯선 이에게 엄마의 사망을 알릴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고 미묘하게 비틀렸다. 그 무렵 생각했다. 아마 나는 이 문장과 평생 친숙해질 수 없겠구나, 하고.
엄마가 살아 있는 동안에 엄마의 명의로 된 것들을 관리하기란 쉽지 않았다. 정수기라도 바꾸려고 전화를 한다 치면, 전화기 너머의 내 앳된 목소리에 상담원들은 "60년생 맞으세요?"라고 되묻기 일쑤였다. 엄마는 산소호흡기를 하고 있어서 말을 할 수 없는데 직접 통화할 수 없다면 정수기 하나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저희 엄마는 말을 못 하는데,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해요? 절망적인 심정으로 되물었을 때 돌아오는 건 난감한 목소리의 거절뿐이었다.
나는 종종 중년의 여인으로 위장하기 위한 낮은 목소리를 연습했다. 중년 여인이 되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최대한 낮게 깔고 그윽하고 부드러운 톤을 내야 했다.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전화기를 붙들고 네, 여보세요? 를 수십 번 연습하다 문득 현타가 와서 그만두었다. 34년의 세월을 변조하기엔 나는 너무 쪼렙이었기에.
사망 선고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오히려 엄마가 살아 있었을 때는 불가능했던 것들이 그 한마디에 너무 쉽게 열렸다. 그 사실이 퍽 생경하고 낯설었다. 나는 몇 날 며칠 프린터를 돌리며 산더미처럼 쌓인 명의 변경 서류들과 씨름했다. 서류를 분리해 놓은 투명한 클리어 파일이 열 개 넘개 쌓였다. 엄마는 집안을 굴러가게 만들었던 모든 것들의 중심에 있었고, 그녀를 중심으로 굴러가던 모든 세계에서 엄마를 덜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서류를 차곡차곡 정리하는 동안 내내 겁이 났다. 엄마. 엄마 없이 이 세상을 살아낼 수 있을까?
사망신고를 하러 가는 건 또 어김없이 내 차지가 되었다. 느지막이 일어난 아침에 엄마가 쓰던 네빌라이저를 뽁뽁이로 잘 감싸서 포장했다. 몇 번 쓰지 못한 네빌라이저를 중고로 팔았기에 우체국을 지나가는 길에 택배를 부칠 참이었다. 네빌라이저를 보내는 도중 눈가가 시큰하게 젖었다. 이 조그맣고 시끄러운 기계를 사던 날 나는 2호 케이크를 하나 팔았고, 그 돈으로 산 네빌라이저를 엄마에게 선물이라고 자랑스럽게 보여줬었다. 중고물품 설명에 네빌라이저를 '거의 새것'이라고 쓰면서 아마도 조금, 울었던 것 같다.
우체국을 나와 동사무소를 향해 걸어갔다. 왠지 더 많이 씩씩해져야 할 것 같아서 이어폰 너머로 며칠 전 다녀온 콘서트에서 들었던 이매진 드래곤스의 'Warriors'를 재생시켰다. 웅장한 록 사운드가 주변의 소음을 단번에 차단시켰다. 나 지금 워리어스 들으면서 사망 신고하러 가는 중이야. 내 카톡을 읽은 언니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 마디를 남겼다. 와... 너 진짜 용자다.
뜻밖의 용자로 만들어 준 이어폰을 제대로 고쳐 끼고서 애써 씩씩하게 걸었다. 왠지 아마도 앞으로는, 오늘보다 더 용감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