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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Feb 18. 2021

엄마 없는 첫 생일을 보내는 법

엄마, 날 낳아줘서 고마워



  28살이 되었다.

  엄마가 하늘로 떠난 뒤, 엄마 없이 보내는 첫 해에 맞이한 스물여덟 번째 생일.

 

  지난밤은 유난히 잠을 설쳤다. 계속 깨서 핸드폰 시계를 확인하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특별히 대단한 날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일 년에 한 번뿐인 생일인데, 늦잠을 자느라 하루의 대부분을 날릴까 봐 속으로는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출근하는 언니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잠든 기억을 마지막으로 오전 열 시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시계를 보려고 집어 든 핸드폰에서 카카오톡 알림이 반짝였다. 고마운 친구들의 축하한다는 연락과 가지각색의 기프티콘에 공들여 답장을 하고 이불을 갰다.

  요새는 점심을 챙겨 먹는 일만큼 귀찮은 게 없다. 먹는 것보다 차라리 마시는 걸 선택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래도 생일에 점심을 굶는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일 것 같다는 결론과 함께 냉장고 문을 열었다. 전날 끓여 둔 참치찌개에 밥을 대충 말아먹고, 탄산수 반 컵에 자몽청을 넣고 휘휘 저었다. 휘리릭 완성된 자몽에이드에 실시간 검색어를 곁들여 간단한 식사를 마쳤다.    


  실은 지난달부터 생일에는 꼭 쉬어야지 하고 다짐했었다. 느지막하게 눈 뜨는 기쁨을, 서두르지 않고 초조해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을 맞이하고 싶었으니까. 이 하루는 온전히 나에게만 주고 싶었으니까. 일부러 공방 주문 달력에 '휴무' 두 글자를 굳게 적어놓았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집 근처 상가로 향했다. 백화점과 이마트가 붙어 있어서, 쇼핑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좀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곳이다. 혼자서도 야무지게 지하 2층부터 7층까지 열심히 돌아다니며 좋아하는 잡동사니들을 이것저것 샀다. 집에 있어도 되지만 굳이 밖으로 나와 시간을 보낸 건 실은 엄마 생각을 덜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작년까지는 생일이 그냥 단순히 내가 태어난 걸 축하하는 날이었다면, 올해는 28년 전 오늘- 배가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나를 낳았을 엄마를,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나를 애쓰고 수고해서 키워낸 엄마를 생각하는 날이었다. 마치 얄궂은 운명처럼, 엄마는 28년 전 내가 태어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얼마 전 가장 친한 언니네 집에 다녀왔다. 언니가 낳은 두 명의 조카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언니와 멀리 사는 탓에 우리는 5년 동안 거의 보지 못했다. 각각 3살과 1살인 아기들은 사진으로밖에 못 본 사이 훌쩍 커 있었다. 너무너무 신기하고 예뻤지만, 이제 갓 걷고 기어 다닐 시기의 에너지가 넘치는 두 아이와 오랜 시간 있노라니 기운이 쭉쭉 빨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주변의 친구들과 지인들이 점점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모습을 보며, 그 아이들을 힘겹지만 보람되게 키우는 모습을 보며 자꾸 나를 키웠을 엄마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내가 어렸을 때 비교적 온순한 아이였다고 들었으니 그 점은 다행이지만 그래도 겁도 많고 체력도 약한 우리 엄마가 나를 어떻게 키웠을까. 많이 힘들었을 텐데 하고 생각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시큰해진다.

  인터넷에서 읽은 어느 산모의 지나치게 생생한 출산 후기가 생각난다. 출산의 진통을 누군가 뱃속에서 칼춤을 추는 것 같다던 그 표현이 어찌나 충격이던지. 그렇게 힘들게 낳은 저 어린 생명을 한 명의 사회화된 인간으로 키워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필요할지 나는 아직 미처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언니. 나 이제 그만 가볼게- 하고 지친 모습의 언니를 남겨 둔 채 집을 나섰다. 손님인 나는 잠깐 왔다 떠나지만, 엄마인 그녀는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남아 고단한 24시간 육아를 이어갈 것이다. 24시간 간병을 해온 내 삶도 그랬었지. 손님을 배웅하고 돌아서는 그 순간부터 다시.

      



  매년 생일마다 나를 위한 작은 선물을 산다. 올해에는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잠옷을 샀다. 사실 예전부터 잠옷이 정말 사고 싶었는데 현실은 그냥 막 입을 수 있는 오래된 옷을 입고 지냈다. 몇 달 전쯤인가, 매번 잠옷이 갖고 싶다는 나에게 언니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도대체 집에서 입는 옷에 왜 돈을 써?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남들은 밖에서 일하니까 외출복을 사지만 나는 간병인이니까 집에서 일하잖아. 그러니까 집에서 입는 옷에 투자해야지.

  그 말이 오늘에야 실천된 게 왠지 조금 슬펐다.


  돌아오는 길에는 유난히 하늘이 맑았다. 음성 녹음 목록에 있는, 3년 전에 녹음해 둔 엄마의 생일 축하 노래를 들을까 말까 고민하며 계속해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엄마는 우리의 생일날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불러주곤 했는데 3년 전 내 생일날, 이 노래를 과연 내년에도 들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엄마 몰래 녹음해 두었던 파일이다. 사랑하는 우리 ㅇㅇ이~ 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이어폰 너머로 듣는 상상만으로도 감정이 거칠게 넘실거려서 결국 휴대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대신 쇼핑백 밖으로 삐져나온 잠옷 소매를 가만히 만지작거리며, 맑은 하늘을 향해 작게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엄마, 나 오늘 생일이야. 축하해 주고 있어?

  엄마, 날 낳아줘서 고마워. 그리고 길러줘서 고마워.

  덕분에 또 무사히 한 살을 먹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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