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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고지순 Jan 24. 2018

미래를 바꾸는 열쇠, 선택

미래의 열쇠

지금으로부터 3 년 전 얘기다. 헤드헌팅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독일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여성분으로 남편이 독일 사람인데 한국에서 살고 싶어 한다고 했고,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그리곤 메일로 남편의 이력서를 보내주었다. 남편의 경력은 패션업계에서 대략 30 년 정도 일을 했고 주로 독일과 이태리에서 활동을 했다. 


국내 패션기업에서는 종종 패션 선도국에서 일한 외국인 전문가들을 찾는데 주로 선호하는 직군은 '디자이너'이다. 이유는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들의 창의적 디자인의 한계점을 색다른 감각을 지닌 해외 디자이너 채용을 통해 브랜드 상품 경쟁력을 보완하려는 필요인데 근래에 한국 디자이너들이 중국 브랜드로 이직하는 사례와 유사하다고 할 것이다. 물론 단순히 크리에티브 한 감각만 원하는 것은 아니고 좀 더 선진화된 디자인 기법이나 업무처리 방식도 해당 기업에서 접목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이력서의 주인공인 남편분은 디자이너 출신이지만, 브랜드 매니저 및 컨설팅, 대학 강의 경력 등 다양한 업무를 진행하셔서 전문직군보다는 전반적인 매니징 업무가 적합하게 보였다. 나는 독일 현지에서 취업 준비를 하는 것은 쉽지 않으니 혹시 한국에 들어올 기회가 있으면 남편과 함께 미팅을 하고자 했고 속으로 생각하길 경력은 나름 화려하지만 한국 패션기업에서 중년의 독일인 패션 전문가를 채용할 확률은 높지 않다는 점을 되뇌었다.


그리고 몇 주가 흘렀고 그 여성분의 전화가 왔다. 한국에 남편과 함께 들어왔으니 취업상담을 받고 싶다는 전화였다. 달리 해줄 얘기가 많지는 않았지만 전에 약속을 했으니 만나기로 했고 드디어 그들 부부와 마주 앉았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서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아내분이 통역을 맡아주었고 두 분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할 차례가 왔다. "한국 패션기업에서 저와 같은 경력자를 채용할까요?"  마음속에선 바로 '아니요'라고 바로 답하고 싶었지만 기대에 찬 두 분의 눈빛을 보고 나는 기존의 생각과는 달리 "쉽진 않지만, 찾아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괜한 희망을 주는 건 아닌지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게끔 어렵다고 답해주고 다른 기업을 찾아가 보라고 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하지만 기존 업계에 대한 상식이 꼭 맞는 건 아니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내가 갖고 있는 패션기업 인사담당자 리스트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이후로 국내 패션 대기업 및 중견기업에 이 분의 이력서를 전달하고 해당 담당자들을 만나보았지만 역시나 힘들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러던 중 예전에 함께 일했던 00 대학에 계신 분과 패션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과 관련해서 함께 자리를 마련했고 결국 기회가 닿아서 그분은 해당 대학의 겸임교수가 되었다. 이 분과의 인연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해당 대학에서 주관하고 이 분이 만든 이태리 패션 연수 프로그램에 초대받게 되었고 밀라노의 어느 거리에서 무명작가의 그림을 함께 감상할 때 이 분이 넌지시 말을 걸었다. "난 당신과 밀라노 거리에서 함께 그림을 볼 거라 생각하지 못했어"  나의 대답은 단순했다. "인연이죠(destiny)"


만약에 최초에 걸려온 전화에서 미팅을 갖자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한국에 와서 부정적인 답변만 들었다면 아마도 다시 독일로 돌아가지 않았을는지....  삶을 살아가면서 한 통의 사소한 전화에도 내 미래에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만남을 통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은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남에게 확실한 뭔가를 줄 수 있다는 전제하에 비즈니스적 만남이 주를 이루는 현실에서 때론 실리를 떠난 진정성 있는 만남은 뭔가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는 열쇠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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