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재밌으면 돈을 내고 다녀야지 x 2
외국계 기업의 단점에 대해 지난 시간에 이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성과나 이로 인한 압박감, 그리고 실제로 거의 느껴지지 않는 오랜 근속을 향한 안정감(?)과는 무관한, 일할 때 힘든 점 위주로 이야기를 정리했다. 1편은 여기에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외국계 기업은 전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언어 중 하나인 영어를 기본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내용을 한국말로 전달하려고 해도 뉘앙스나 분위기, 그 외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참 많은 것이 커뮤니케이션인데, 나의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나의 경우도, 입사 초기에는 '첨부파일 보시고 내일까지 의견 부탁드립니다.' 같은 메시지를 메일로 적는데 30분씩 걸리기도 했다. 영어로 적어야 하니 작문에도 신경 써야 하지만 (물론 첨부파일도 영어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본사에 있는 '누군가'에게 메일을 툭 던져야 한다니, 상상만 해도 숨이 막혔다. 상대가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나, 내가 이상한 말을 적진 않았나, 예의 없어 보이거나 큰 결례를 범한 것은 없나, 한국말로 해도 어려울 것들을 영어로 하려니 힘이 들 수밖에.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똑같은 일 하나를 하려고 할 때 커뮤니케이션이 정말 힘들다. 외국어라서 힘든 것 외에도, 문화가 달라서 힘든 것 말고도, 물리적인 거리가 있다는 것이 힘들게 하는 부분들이 제법 있다.
무엇보다 피곤한 점은 시간차다. 미국을 기준으로 샌프란시스코가 되건 뉴욕이 되건, 일단 기본적으로 우리가 낮이면 저쪽은 밤이다. 저쪽 오후는 우리 새벽이다. 그래서 '하루에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어느 한쪽이 '업무시간 외' 근무를 하지 않는 이상 거의 없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는 본사가 미 서부에 있는데, 그래서 한국 시간으로 오전 8시~오전 10시 사이에 미팅이 정말 많다. 그때 아니면 본사 친구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없는데, 본사 친구들 또한 오후 5시 ~7시에 내부 미팅이나 업무 정리, 미 서부 특유의 교통체증을 고려한 빠른 퇴근 등으로 자리에 없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한두 명과 미팅해서 끝날 일이 아니라, 개발/마케팅/법무 같이 여러 부서가 보여야 하는 미팅이라도 한번 잡으려면, 무조건 일단 다음 주다. 1~2주 정도 전에 스케줄을 잡지 않으면, 미팅 자체가 잡히질 않는다.
여기에 한국 회사에서는 다소 생소한 근태가 한몫 더 한다. 업무에 지장만 없으면 반드시 사무실에 있을 필요도 없고, 휴가도 퇴근도 자유로운 서구권 문화 덕분에 모처럼 잡으려던 미팅에 1-2명씩 꼭 참석 불가능한 사람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미팅을 다시 잡아야 하고, 크게 작게 일정이 뒤로 밀리면서 굉장히 간단한 업무나 의사결정이 연기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이러한 부분들은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사람을 조금 지치게 한다고 할까? 국내 기업에서 겪는 지지부진함과는 좀 다른, 물리적 거리와 시간차로 인해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과 영어가 섞여 다가올 때 느껴지는 답답함은 국내 기업에서 느끼는 부분과는 많이 달랐다. 물론 이 부분 또한 극복할 수 없는 엄청난 단점이라기보다는, 이러한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차원의 이야기이다.
I strongly recommend to not do that by local office, because it's in our roadmap and we don't want to have fragmented system.
정확하게 저런 문장을 구사한 것은 아니고, 나의 기억을 더듬어 대충 뉘앙스를 맞추어 보았다. 한마디로 하지 말란 소리다. 어디서? 로컬 오피스에서. 지사, Branch, Local office. 회사마다 부르는 말은 다르지만, 결국 본사(Headquarters)가 아니라는 점이 가지는 한계가 있다. 이는 대기업 중에서도 계열사나 자회사에 근무해본 사람은 쉽게 공감할 수 있을 만한 부분인데, 외국계 기업의 대부분의 경우는 한국 오피스는 지사다.
아무래도 의사결정이 본사에서 정해진 것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한국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하여도 이를 설득하기 어렵거나, 본사 정책이나 방향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점은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어려움으로 다가올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지사여서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때로는 사람을 매우 지치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외국계 기업에서 일할 때, 이 부분은 제법 큰 단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앞서 이야기한 장점 중 한 가지인 '많은 책임과 그만큼 자유로운 문화, 성과주의'와 한편으로 정면충돌하는, '본사가 아니라 할 수 없다'는 제약은 업무에 욕심이 많고 일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때로는 더 크고 괴롭게 다가올 수도 있다.
'본사가 아니라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답답함을 넘어 허무하게 느껴지거나, 업무 자체에 흥미를 잃게 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어떤 업무들은 '굳이 설득을 해가며 일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아예 내려 두거나, 편법을 써가면서 (예로, 다른 항목으로 보고하고 예산을 사용한다든가 등) 업무를 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기도 한다.
이 부분은 기존에도 지사에서 근무했거나, 자회사에서 근무했던 분들에게는 솔직히 크게 생소한 영역은 아닐 거다. 다만, 외국계를 지망하는 분들 중에 보다 크고 넓은 업무 기회와 성장 가능성을 보고 이직을 하는 분들에게는 다소 암담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장점 중, '내부 이동이나 승진의 기회'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분명히 Global 하게 영향을 주고 이를 발판 삼아 성장하는 분들이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최소한 국내 대기업보다는, 훨씬 더 많이, '나 하기 나름'이다.
자, 단점을 이야기해보았다. 무려 두 편에 걸쳐서! (전편은 요기)
그래서, 외국계로 가지 말라고? 아니다. 여전히, 외국계 추천한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국내 기업은 단점 없나? 결국 월급 받고 일하면 어려운 건 똑같다. 한국말로 한다고 커뮤니케이션이 더 쉽나? 물론 단순히 '메시지 전달' 측면에서야 모국어인 한국어가 더 쉽지만, 사실 기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다 비슷~ 비슷한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단점을 좀 자세하게 다룬 이유는 결국, "이곳이 마냥 꽃길만은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음 시간에는 조금 재미있게, 외국계 기업 : 헬적화 편을 들고 찾아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