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모두 고해(苦海)다. 말하자면 우리는 거칠고 깊은 바닷속으로 흘러들어, 밀물과 썰물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어떤 때는 갑작스러운 행운을 얻어 하늘 높이 올라가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더 큰 손실을 입고 끝도 없는 바닥까지 떨어지면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계속 표류해야만 한다. 우리는 어차피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여기저기로 흘러가는, 때로는 서로 충돌하거나 때로는 난파당하면서 늘 두려움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세네카
B(Birth)와 D(Death) 사이 C(Choice)라고 했다. 크고 작은 선택 가운데, 그때 그 일을 고른 것은 제대로 오판이었다. 영어도서관에서 일했던 스물셋, ‘글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온라인 기자 일을 병행했다. 말이 기자이지 온라인을 타고 흐르는 이슈를 떠내 나르는 일이었다. 보도국에서 제보 수취를 담당하는 야간 아르바이트도 했다. 몸을 혹사하는 일명 쓰리잡이었다. 기사의 틀을 익히고 여러 형식의 글을 접하겠다는 야심 덕분에 가능한 일과였다. 온라인 기자가 첫 단추가 되어 이후 매거진, 여행 플랫폼 등 여러 곳에 기고를 했고, 신문사에 취업했다. 파견직에서 자체 계약직으로, 자체 계약직에서 정직원으로 겉보기에 그럴듯한 수순도 밟았다. 하나 나는 그 일을 취업, 취직, 직업 그 어떠한 것으로도 부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근원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다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온라인이 아닌 정식 신문사에서 일하게 됐지만, 내가 다루게 된 것은 연예계였다. 방송 미디어에 관심이 많았기에 생판 모르는 분야는 아니었다. 다만 겉핥기 식으로 화젯거리를 양산하는 일은 아무런 보람 없이 등짐을 지는 고된 부역과도 같았다. 생산성 없이 소비되는 가십과 자극, 거기에서 파생되는 관심을 먹고 사는 연예인들, 무분별한 관심이 독이 돼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몇몇의 연예인들, 그리고 그들의 전령이 된 나. 온라인 강태공이 되어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건 일신‘만’ 편안한 확실한 불행이었다.
카드값은 매달 나가고, 싫다 싫다 해도 결국은 새벽같이 버스에 오르고, 퇴근 후엔 큰일이라도 치른 것처럼 피곤과 함께 보상심리가 찾아와 맛있는 음식이나 갖고 싶은 물건이 떠오르고···심지어 독(毒)을 반복하는 것은 선(善)을 반복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재미있다. 거대한 작심 없이는 ‘무한 반복’될 가능성 또한 농후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니체가 인간에게 가장 무거운 짐은 ‘영원히 반복되는 삶’이라고 얘기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어떠한 공상과 패기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는 게 일상의 반복인 것이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비관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것 역시 일상의 반복이다. 잘 풀리지 않는 생활, 자조하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현실이 언제까지 반복될지 아득하다가도 반복 자체가 삶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조금은 편해진다. 반복될 줄 알았으나 한순간에 멎어버린 이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나의 초침은 여전히 가고 있다. 반복해서 하루를 맞을 수 있으니 개선의 여지가 충분하다. 별일 없이 매일 저녁 가족과 마주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일도, 아침저녁 출퇴근 끝에 통장에 찍히는 월 급여도 내 삶이 반복될 수 있는 행운 아래 놓여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무수한 생명력이 그 안에 있다.
일상의 되풀이가 지겨운 반복으로만 그치지 않는 것은 삶이 ‘불가측’하다는 점 때문이다. 한 치 앞을 모르는 불가측성이 우리를 계속해서 시험에 들게 한다.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틀린 것이었고, 이쯤이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한참 남아 있기도 하다. 그건 아마 인간이 ‘영향받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계획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처럼 우리는 계획을 정복하고 계획에 짓눌리는 끝없는 오차 범위 내에서 살아가고 있다. 반복을 전제로 둔다면, 불가측이란 화약은 폭탄이 될 수도, 불꽃이 되어 한바탕 놀아볼 수도 있다.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온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굴러간다. 모든 것은 죽고, 모든 것은 다시 꽃 피어난다. 존재의 세월은 영원히 흘러간다. 모든 것은 꺾이고, 모든 것은 새로 이어진다. ㅡ 존재의 바퀴는 영원히 자신에게 충실하다. 모든 순간에 존재는 시작한다. 모든 여기를 중심으로 저기라는 공이 회전한다.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 영원의 오솔길은 굽어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