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끝자락, 엄마와 차박 중 맞이했던 또 하루의 '새' 해를 보며 바랐다.
'나도 떠오르고 싶다.'
그로부터 3일 뒤 한중 영상번역가 합격 메일을 받았다.
망설이고 고민만 하다 '안 하면 0'이라는 것만 생각하며 지원했던 곳이었다.
생애 첫 한중 번역 지원에서 합격이란 글자를 받아 들다니... 얼떨떨했다.
번역가 지망생의 4주는 금의 기운이 턱없이 부족해
OTT 기업 통상 근무를 지원했다가 면접까지 그럴듯하게 봤던 게 불과 1주 전이었다.
결론적으로 그 회사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일에 적응하느라 한동안은 번역 공고에 지원할 생각을 하지 못했겠지.
샘플 테스트의 기회도 얻지 못했을 거고.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꼼짝없이 타임코드만 찍다 하루가 다 갔을 것이다.
말라서 부스러지던 통장 잔고에는 다달이 벌이 꼬였겠지만.
계약과 동시에 바로 첫 작업을 맡았고 그렇게 어느 때보다 결연했던 과제를, 제출했다. 제출했다.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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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두 달이 훌쩍 지났다.
이제야 한 자 적어 보는 지금까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해피도 없고 엔딩도 없다. (적어도 아직은)
꿈에 그리던 집 앞을 서성이며 그려 보기만 했던 현관문 너머의 세상은
넉넉지 않고 때론 너저분하더라도
따뜻한 활기로 진동할 줄 알았는데,
아무도, 아무런 옵션도 없는 방 한 칸, 딱 그뿐이었다. (어쩌면 캡슐호텔일지도?)
가방을 끌러 화장실에 칫솔도 갖다 놓고
잘 때 입을 편한 옷도 꺼내 놓고
가볼 만한 곳도 알아봐 놓고
핸드폰도 만땅으로 충전해 뒀는데
창밖은 뇌우에 정전인 듯했다. 가끔 해가 났지만 빨래가 마를 만큼은 아니었다.
덜컥 겁이 났다.
중한 번역은 입구도 찾지 못할까 봐,
찾더라도 또 같은 방일까 봐,
이대로 여행이 끝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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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희망의 필터를 갈아 끼웠던 지망생의 셀카는
초췌하기 그지없는 거울을 보는 순간 한차례 금이 갔다.
그래서 매일 불안을 과식했고
걱정을 게웠다.
아수라 백작처럼 비관에 낙관도 찍었다가 낙관에 비관도 찍었다.
지금껏 먹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불안을 삼켜야 할 것만 같아 속이 울렁거렸다.
해가 지면 자신이 있었다가 해가 뜨면 사라졌다.
팔자에 헤메스는 없이 헤매기만 하는 내가 너무 볼품없었다.
그야말로 널뛰기였다.
손놓고 방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다리가 저리더니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아차 싶었다.
저린 다리로 일어나려면 잠깐은 까무러치겠지만,
이대로 일어나지 않으면 굳게 꼬인 다리를 풀 수조차 없을지도 몰라.
또 생각했다.
그날의 태양에 너무 많은 걸 기대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날의 바람에 너무 오래 붙잡혀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죄다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그래서 적기로 했다. 번역문이 아니면 다른 문에다가라도,
적을 게 없으면 찾기로.
적어도 그렇게 공백만은 없애기로 했다.
자꾸 그리지만 말고 쓰기로 했다. 어디든 더 자주, 가볍게 오가기로 했다.
집을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돌아오기 위한 여행처럼,
시도 때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