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살 Aug 25. 2019

[한편보고서 4] 리얼리티하이(Reality High)

진실성이 결여된 SNS의 세계

자신의 깊이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다.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는 듯 '은따'의 삶을 고수하던 대니(네스타 쿠퍼)는 변하기로 마음먹는다. 촌티는 벗어내고 갖고 있던 늘씬한 기럭지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러자 생전 처음으로 학교에서 주목을 받게 되고 오랜 짝사랑 캐머런(키스 파워스)과 사귀기까지 한다.


하지만 인생사 산 넘어 산이라더니 동화 속 영원한 왕자와 공주는 없었다. 전교생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자존심이 상해버린 대니의 오랜 앙숙이자 캐머런의 전 여자친구 알렉사 메디나(알리시아 산스)는 자신의 파워 유튜버 힘을 이용해 몹쓸 계략을 꾸민다. 대니, 제발 넘어가지 말아 줘..

바람과는 달리 대니는 아주 제대로 넘어갔다.

대니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은 채 구름 같은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뭔가 찜찜하긴 하지만 그들 속에서 똑같이 행동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더 찝찝해져 버린 대니. 아빠의 신용카드로 400달러를 긁더니 유튜브 스타 키드 잉크의 파티에 가느라 절친 패트릭과의 약속은 아주 완벽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 무리 안에 들어가서 보이지 않는 거"라는 패트릭(제이크 보렐리)의 채찍은 지당하다. 정말 그 속으로 들어가고 나면 말 그대로 뵈는 게 없다. 자기 할 일을 똑 부러지게 하던,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 준 오랜 짝사랑의 사랑을 얻게 된 그 시점에도 대니는 결국 또래집단에 현혹되고 말았다. 그렇게 알렉사와 가까워지는 듯했으나 알렉사에게 진심이란 게 있을 리 만무.

악마의 편집으로 대니를 '비참하고 멍청한 스토커'로 만들어버린 알렉사. 그런데 어쩐지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조차 "이번엔 네가 심했다"며 알렉사에게 실망한다. 그 누구도 승자는 없는 듯 알렉사와 대니는 다른 모습의 외톨이가 되어버렸다. 익숙했던 원래의 '은따' 모습으로 돌아온 대니는 알렉사의 스토커로 낙인찍혀 SNS상에서 난도질을 당하게 되고, 모든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계정을 삭제하고자 마음먹는다. 그때, 대니는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계정 삭제 버튼 대신 생방송 녹화 버튼을 누른다.


그리곤 고백한다. 좋아하지도 않는 애들의 환심을 사보려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이제는 내게 가장 중요한 일에만 집중하며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겠다고 말이다. 대니가 진심을 고백한 순간, 푸른 결말이 보였다.

진실성이 결여된 SNS의 세계. 그곳은 현실보다 화려하고 잔혹했다. 그저 보여지는 것만이 다인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보다 지독히, 철저히 자랑하고 내세워야 했다.

모태 스타일 것 같던 알렉사는 그저 도넛이 맘껏 먹고 싶은 자격지심 가득한 소녀였고 대니에게 쏟아진 비난과 조롱 또한 진심이 담긴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알렉사의 유튜브명이자 영화의 제목인 '리얼리티 하이'는 그 자체가 반어였다. SNS 현혹된 삶엔 애초에 리얼리티란 없었으니까.


서로 상처 주고, 상처 받고, 이겨내고, 성장한 그들의 현실만이 진짜였다.

지난해, 중국의 한 여학생이 고층 백화점에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여학생은 자신의 자살시도를 막으려던 구급대원의 손을 겨우 붙잡고 있던 상황. 거리에서 그 모습을 본 행인들은 "왜 아직 안 뛰어내리냐. 겁먹었냐"며 "빨리 뛰어내리라"고 재촉했고 그 여학생은 결국 구급대원의 손을 놓아버렸다. 그 여학생은 2년 전 담임선생님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한 후 우울증을 앓아왔다. 스스로 선택한 죽음임에도 가해자가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나도 나를 잘 알지 못하겠는 이 인생에서 남의 삶과 선택을 쉽게 비웃고 떠들고 힐난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인터넷상에서 보여지고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모든 것들을 의심해야 한다. 여론에 휩쓸리지 말고 어른으로서 바로 봐야 한다. 타인의 어제를 모르면서 오늘 무조건 욕부터 뱉고 보는 악마 같은 모습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지나가는 모든 것들의 행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편보고서 3] 대학로 연극, 뷰티풀 라이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