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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살 Sep 22. 2019

사서 캠핑하는 이유

"즐거우니까 기꺼이 한다"

꼬박 열흘을 앓았다. 처음엔 온몸을 두드려 맞은 듯한 몸살과 체기로 증세가 시작됐다. 연휴에 가족과의 캠핑이 계획되어 있었기에 아프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약국에서 약도 사 먹고 소금 가글, 찜질 등 민간요법을 시도했다. 웬만하면 병원은 가지 않은 상태에서 회복하고 싶었다. 엄마는 동생 자취방에, 아빤 퇴근 후 약속으로 홀로 텅 빈 집에서 이리저리 백방으로 자가치료를 해보던 나는 결국 침대 위로 앓아누웠다.

혼자일 때 아프면 서럽다는 게 정설이라는 확인사살, 기대지도 않는 하늘에 토로하는 무심함, 우리 자매 상태 때문에 기대 반 걱정 반인 엄마, 망치고 싶지 않은 숯불 바비큐 파티, 2박 3일간의 일정. 과제와 일의 연장.

온갖 잡념들로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연휴 바로 전날 서울에 나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간만의 이른 외출 때문에 바뀐 낮밤과 정신을 부여잡고 하루를 보냈다. 몸살은 꽤 괜찮아졌지만 속이 계속 좋지 않았다. 동생도 장염에 걸려 고생하는 중인데 나까지 아프면 모처럼 찾아온 연휴를 앓다가 끝낼 것만 같았다.

어찌 됐든 디데이는 왔고, 우리는 즐겨 찾는 캠핑장으로 떠났다. 떠나기 전, 장염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해 연휴에 문 여는 병원을 찾아 어린이들과 함께 진료를 받았다. 몸살기는 없어져서 다행이었지만 대신 화장실을 10분마다 들락거렸다. 내 속은 궂었고 초가을의 하늘은 정말 맑고 예뻤다.

캠핑에서의 일상은 삼시세끼를 찍는 것처럼 휴식과 밥 해 먹기의 연속이다. 우린 우리만의 울타리 속에서 즐겁고 여유로웠다. 가성비 좋은 호텔에서의 숙박, 돈 깨나 들여서 하는 호캉스, 그도 아니면 안락한 집. 이 모든 것들을 제쳐두고 사서 캠핑을 하는 이유는 자연 가장 가까이에 가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계가 아닌 하늘빛으로 시간을 짐작하고, 얼마나 유지될지 모르는 아이스박스에 음식들의 운명을 맡긴다. 생선이라도 굽는 날엔 기가 막히게 고양이가 집들이를 온다. 괜히 별을 세보고 달 모양이 예쁘다며 사진을 찍어댄다. 숨을 더 깊게 들이쉬고 정적을 즐긴다. 그러다 보면 하릴없이 바쁘기만 하던 세속적인 삶이 어느 정도 정돈됨을 느낀다.

갈 때마다 짐을 챙기고 푸는 게 정말 귀찮기도 하지만(텐트 치고 걷는 건 아빠와 동생 몫, 음식이나 짐 준비는 엄마가 거의 도맡아 한다. 내가 하는 거라곤 그저 잡일 거들기, 캠핑장 예약, 장 볼 때 찬조 정도) 구색을 다 갖췄으니 열심히 본전은 뽑아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생겼다. 캠핑을 가장 사랑하는 엄마는 "즐거우니까 기꺼이 한다"고 했다.

내 장비 욕심의 원천지인 아빠. 이번엔 타프를 필요로 했고 며칠 뒤 20kg의 타프가 차 트렁크에 실리게 되었다. 정말 이러다간 나와 동생이 늘 우려하는 '우리 자리가 없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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