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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살 Mar 08. 2020

계절은 바람으로 느낀다

아직 봄이라고 말하긴 이를까?

당장 새순이 돋을 것 같은, 온화하고 청량한 날씨다.

구름 한 점 없무색 하늘을 보니 미세먼지는 여전히 안 좋은 것 같지만 바람은 이미 봄을 알리고 있다. 이리도 좋은 날,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엔 더 이상 '주말 가볼만한 곳', '주말 나들이 코스'는 보이지 않는다. 봄을 그저 흘려보내며 기다리는 진짜 봄.


길 따라 계절 따라 날아오는 바람 냄새는 참 묘하다.

5살 또래 친구들과 뺑뺑이를 번갈아 타던 오후, 초등학교 5학년 때 10초 만에 스치고 지나갔던 나기의 순간, 태권도장으로 향하던 저녁, 학교 앞에서 300원짜리 아이스 쿨피스를 주문해 기다리던 시간. 평소엔 생각도 못했던 아주 오래전 추억의 잔상이 불현듯 떠오른다. 보이지 않는 바람에 익숙함이 묻어있다.


오히려 일주일, 한 달, 1년 전의 하루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핸드폰 갤러리엔 예뻤던 그날의 하늘, 먹었던 그날의 음식, 갔던 그날의 장소는 들어있지만 닮은 바람이 불어온대도 그날을 떠올리진 못할 것 같다. 더 이상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가 없어진 세상처럼, 내 기억보다 핸드폰이 그날을 더 잘 추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몇 년 전 일도 생생하게 담겨 있는 스마트 세상에서 나는 어떤 글과 이야기를 그려내면 좋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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