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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이링크 Jun 06. 2019

슈퍼밴드와 티밍 Teaming

요즘 유일하게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JTBC의 ‘슈퍼밴드’다. 원래 음악 프로그램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이질적인 악기로 매번 참가자가 새로운 팀을 구성하는 운영방식(애자일 조직), 참가자들이 만들어낸 음악, 참가자들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삶을 연주한다는 느낌), 그리고 참가자 간의 케미가 매회 감동적이다.


이런 점들로 인해 음악 프로그램인데, 조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각 팀의 성공과 실패는 실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자이로처럼 대중성에 대한 뛰어난 통찰로 인해 어떤 악조건에 처해도 승리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케빈 오나 하현상처럼 선곡에 따라, 상대팀에 따라, 팀원 구성에 따라 승패가 달라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이나우처럼 내리 졌는데도 불구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는 사람도 있고, 안성진처럼 보컬로서의 가창력 자체는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약하지만 독보적인 아이디어로 승리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조직에서도 그렇다. 전천후 스타 플레이어가 아니라고 해서 가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계속 성과가 나지 않을 때 직무가 안 맞거나 조직이 맞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아직 때를 못 만나 성과를 못 냈을 뿐 잠재력은 인정받고 있을 수도 있다. 객관적 조건이 다소 약하더라도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성과를 낼 수도 있다. 그래서 장기적 관점에서 성공을 위해서는 실력과 운을 종합해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둘째, 화합이 중요하다.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평 중 하나는 팀원 중 일부만 부각되어서 아쉽다거나 누구하나 빠짐 없이 팀원 각자가 다 돋보였다는 점이었다.


학교 조별과제나 직장의 팀들은 여전히 구성원 중 목소리 크거나 우수한 일부가 집단의 성과를 견인하는 경우가 많지만, 갈수록 화합과 협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구글이 실제 팀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성공하는 팀의 특징 중 하나로 ‘구성원간 발언의 비중이 동일하다’는 점이 있었다. (https://blog.naver.com/businessinsight/221064389803). 슈퍼밴드에서는 이 점의 중요성이 잘 드러난다.  


세째, 혁신이 중요하다.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평 중 또 하나로 '예상한 수준이어서 아쉽다', '원곡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해서' 또는 '이 전 라운드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서' 좋았다는 점이 있다(나는 예상한 수준도 충분히 멋지고 몇 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좋았다). 그러니까 점진적 개선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거다.


조직에서도 창의와 혁신은 늘 중요했다. 하도 강조해서 식상해질 정도로, 또 그 탓에 기존의 것이하찮아 질 정도로. 슈퍼밴드에서는 참가자들이 매 회 원곡을 환상적으로 편곡하는 데서, 또 ‘뭐 어쩌라고?’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전히 다른’ 것을 요구하는 심사평에서 혁신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리더십에 대해서도 참 여러가지를 느끼게 하는데, 특히 8회에서의 케빈오와 아일이 여운이 남는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Giver로서의 태도였다.


케빈오는 자이로팀을 상대로 지목한 이유 중 하나로 ‘늘 마지막에 뽑혀서 팀원을 고를 기회가 적었기에 다양한 팀원선택의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아일은 하현상을 팀원으로 선택한 이유로 하현상을 이기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고, 선곡도 하현상에 맞춰서 했다. 참가자 모두에게 이 경쟁은 미래와 자존심을 건 절실한 도전일텐데, 이 상황에서 ‘나’를 넘어서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게 너무 대견스럽다. 둘은 외모도 멋지고 이쁘지만 그 마음도 정말 멋지고 이뻤다.


조직에서 이런 리더가 얼마나 될까? 조직에는 자신의 성과를 위해 부하나 동료를 이용하려는 taker, 또는 자신에만 집중하고 타인은 안중에도 없는 나르시시스트가 우글우글하다. 진성/진정성 리더십 authentic leadership, 서번트 리더십 servant leadership 등 타인을 배려하는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들은 많지만, 현실 리더는 이런 경우가 별로 없다. 또, 요즘 젊은이들은 개인주의적 또는 이기적이라고들 하는데, 이런 젊은이들을 보아서 참 흐믓하다.   


이들의 ‘탁월성 지향’도 참 멋지다.   


케빈오는 자이로팀을 상대로 지목한 또 다른 이유로 ‘저번 대결에서 너무 잘하는 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강팀과 붙으면 나도 더 잘 준비하게 될것 같다’고 했다. 아일은 이나우팀을 상대로 지목한 이유로 이전 라운드에서 3:2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는데 이 번에는 확실히 이기고 싶어서라고 했다(나는 어벙한 듯 깊이 있는, 묘한 매력이 있는 이나우가 승팀이 되는 걸 보고 싶다ㅠㅠ).


이들은 단순히 이겨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것만 생각하는 게 아니다. 그랬다면 좀 더 만만한 팀 또는 이전 라운드와 다른 팀을 선택했겠지. 한데 좀 더 탁월한 승리를 원했기 때문에 가장 강팀을 선택했고, 이전 경쟁에서 탁월함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같은 팀을 다시 선택하지 않았을까.


조직에서의 시스템이나 제도 도입과 같은 목표를 예를 들자면, 케빈오의 선택은 연내 도입까지만목표로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 도입 효과까지를 목표로 하는 것에 빗댈 수 있다. 아일의 선택은, 이미 연내 도입을 달성한 후 다음 해에는 새로운 제도나 시스템 도입을 목표로 해도 관행에 어긋나지 않는데, 굳이 지난 번에 도입한 시스템이나 제도와 관련한 부작용 감소를 목표로 하는 것에 빗댈 수 있다. 이런 태도는 타인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서 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에 가치를 둘 때 발현되는 것이다. 멋지다!


마지막으로 케빈오의 취약성 공개가 울림을 준다. 


그는 자이로팀에 패한 후 ‘미안한 것도 있고, 창피한 것도 있더라. 그런데 스스로에게 많이 화난 것 같다’고 했다. 패배 소감에 ‘미안하다’는 말은 단골로 등장한다. 하지만 ‘창피하고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는 말은, 실제로는 적잖이 이런 감정을 느꼈겠지만 좀처럼 입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무대에서 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말을 하는 건 전혀 멋있어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케빈오는 자신의 취약한 감정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드러냈다.


리더십이나 조직문화 관련 글들을 보면 취약점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 자신의 취약점을 인정하고 솔직히 드러내는 리더,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취약점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리더는 조직에 ‘심리적 안전감’을 장착시킨다. 심리적 안전감은 이전에 비해 훨씬 더 불확실한 시대에 조직의 창의성, 혁신, 발전을 촉진하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취약점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것이 머리로는 동의하지만, 실제로는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와 같아서, 리더는 부하가 못 따라온다고 하고, 부하는 리더가 솔선수범을 보이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케빈오를 통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슈퍼밴드에서 팀을 구성하고 서로 협업하고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조직심리학이나 조직행동론에서 다루는 티밍 teaming과 통하는 점이 상당히 많다. 아래는 하버드 경영대 교수인 Amy Edmondson의 TED 강연이다.

https://www.ted.com/talks/amy_edmondson_how_to_turn_a_group_of_strangers_into_a_team?language=ko#t-6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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