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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콜라주 Jan 09. 2021

조선인이 쓰는 조선 이야기 (1)

(서문) 조선인, 징비록을 꿈꾸다

저는 '조선인'입니다.


'조선인' 하면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을 비하하여 일컫던 '센진'이란 말이나 국 동포를 이르는 '조선족'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저는  평범한 40대의 대한민국 남성입니다. 의 글에서 '조선인'은 조선해양공학 (Shipbuilding & Ocean Engineering) 전공했거나, 조선해양 산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조선 산업은 타 산업 대비 상대적으로 일반인들의 관심이 적고 정보가 한정적인 산업 분야입니다. 제가 업무로 산업 관련 검색을 해보면 원하는 정보를 정말 찾기 힘듭니다. 간헐적으로 뉴스에 나오는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 식'의 심지어는 오류가 제법 보이는 정보들을 접하게 됩니다. 

제가 대학교 다니던 90년대에는 조선산업에 대한 일반인의 무관심이 더했습니다. 어디 가서 "조선과를 다녀요" 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신기하네 조선 왕조를 따로 공부하는 과가 있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무지하기로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고3 때 진학 상담 선생님과 면담을 할 때 처음 조선해양공학과의 이름을 들었습니다. "너 거기 가면 학기 중엔 열심히 공부하고 여름에는 바다에 가서 스쿠버 하고, 요트도 타는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바다의 무한한 해양 자원들을 연구하는 그런 멋진 과라서 쾌활한 너의 성격에 딱 맞을 거야."라고 즐거운 표정으로 저에게 설명하시던 선생님 얼굴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조차 어렵지만 그 때는 인터넷조차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종*학원이나 대*학원에서 나온 예상 합격 점수표 기준으로 학생의 예상 점수에 맞춰 학과를 추천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의 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일인데도 제와는 전혀 다른 (해양학과 + 해양레저학과 중간쯤?) 설명을 들으며 "어쨌거나 공대면 됐지 뭐" 하며 진학을 결정하였습니다. 정보 부족이 만연했던 시절의 웃지 못할 해프닝입니다.

어쨌든, 저는 그렇게 운명적(?)으로 '조선인'이 되습니다. 벌써 20년이 훌쩍 넘어 30년가까운 추억이니 세월은 언제나 저의 생각보다 저만치 앞서 달려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보통의 조선공학 전공 학생이나 직장인들과는 조금 다른 커리어 패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니어 시절에는 지도 교수님 및 선후배들과 그 당시 유행하던 기술벤처기업도 설립해 보았습니다. IT 개발자로 대형 조선소의 PI(Process Innovation) 프로젝트도 참여해 봤습니다. 중국 현지에서 운영되는 국 조선소에 근무 경은 그야말로 '레어템'입니다. 그리고 처럼 공학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으나 연구소나 기술 쪽이 아닌 전략, 영업, 기획 등 경영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분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이것 말고도 사실 저에겐 비장의 무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실패의 경험'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특이한 커리어 덕에 2000년대 중후반 일순간 무너져 간 국내외의 여러 조선소들 몰락 과정을 까운 거리에서 경험할 수 있었니다. 그것은 저에게는 매우 아픈 기억입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다면?'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아쉬움이 큽니다. 그러나 그 경험 현재의 저에게 크고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조선 산업계의 구석구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조선해양 산업 전반에 대한 경쟁력과 위협요소, 본질적 가치와 거시적 전망 등에 대한 나름의 차별화된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국 조선업계의 어려움은 아직 현재 진행형입니다. 2010년 들어, 여러가지 이유로 일순 쇠락한 중소형 조선소와는 달리 국내의 빅 3 대형 조선소는 유가의 고공행진과 해양플랜트 호황으로 오히려 몸집을 거의 2배로 늘려가며 승승장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투기에 가까운 과도한 해양 물량이 시장에 쏟아지던 2010년 대 중반, 영원히 고공행진을 할 것 같았던 유가는 세계 경기 침체 및 미국의 셰일 혁명 등으로 폭락을 합니다. 이는 가뜩이나 급격한 몸집 불리기로 몸살을 겪고 있었던 조선소에 재앙이 되었습니다.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조선 3사는 해양 플랜트 분야에서 천문학적 손실을 보며 추락하였습니다. 그리고 유가 및 전 세계적인 친환경 에너지 전환으로 완전히 식어버린 해양플랜트 시장 세계 경기 침체, COVID-19 등으로 하릴없이 지연되고 있는 조선 시장의 회복을 기다리며 오늘도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한국 Big3 현대, 대우, 삼성 조선소 (출처: 각 조선소)

과연 한국의 조선 산업은 끝난 걸까요? 혹자가 얘기하듯 ‘좀비 산업’이지만 그래도 많은 고용효과가 있으니 국가가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끝까지 끌고 나가는 것이 필요할까요? 적자가 계속된다던데, 만일 가장 많은 선박을 시장에 내놓는 한국이 공급을 조절하면 선가를 올려서 금방 적자를 면할 수 있는 걸까요? 그리고 앞으로 세계적인 환경규제 추세 및 LNG 호황으로 한국 조선산업이 결국 화려하게 부활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경직된 노동정책 및 인건비 증가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후발 국가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수순을 가게 될까요? 


앞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내용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기자나 산업 애널리스트 등 '비조선인'이 쓴 조선 이야기에 의구심이 드셨던 분 들, 혹은 조선인이 썼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 너뻔한 이야기에 식상함이 있으셨던 분들, 그리고 저처럼 '조선인'이 돼 보고자 하는 독자 분들을 저의 시리즈에 초대합니다.


첫 번째 주제는 저희 산업계의 오랜 논쟁 거리인 '사양산업 논란'에 대한 주제를 다뤄 보고자 합니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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