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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콜라주 Jan 09. 2021

조선인이 쓰는 조선 이야기 (2)

사양산업 논란 - Part 1

제가 '조선산업은 사양산업이다'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대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1990년대 중반쯤이었습니다. 조선과에 이제 막 입학한 저에게는 정말 재미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아직 요트 그림자도 못 봤는데... 젠장'


그러나 걱정은 잠시, 1990년대 중반의 대학교는 정말 '놀고자 마음먹은' 학생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수많은 미팅과 엠티, 학교 축제... 학점은 최악을 달리고 있었지만 친구들도 고만고만하다는 것에 나름 위안을 얻으며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순삭' 하였습니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2학년..

2학년이면 다른 과 친구들은 보통 군대를 가는 시절입니다. 그러나 저와 학과 친구들은 군대 걱정은 뒷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병역 특례' 제도가 있었습니다. 조선과 학생은 상당 수가 이 제도를 통해 조선소에 취업을 하여 군대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선배들로부터 "예전에는 조선소간 인력 유치 경쟁이 심해서 입사를 하겠다는 확약을 하면 회사에서 장학금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는 말도 듣습니다. '졸업 전에 취업 확정, 취업하면 군대 해결'이라는, 지금 생각하면 '꿈과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조선 산업이 사양산업이다라는 논란에 대해 스스로 무감각해졌던 것 같습니다.


'사양'이란 말 그대로 정오의 태양이 서서히 기울어져 지평선이나 수평선 아래로 저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양 산업은 수요가 없어 시장이 대폭 축소 혹은 사라지거나, 시장은 그대로 있으나 국가 차원에서 산업 경쟁력을 잃어 국제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 조선 산업은 어떤 의미에서 사양산업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걸까요?

먼저 수요 및 시장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선박의 수요나 시장 자체는 당분간 사라질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일부 독자들 중 '비행기나 철도, 트럭 그리고 (오일이나 가스 같은 경우) 파이프라인 등이 선박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지 않나?'라고 문을 가지실 수 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위의 운송 수단들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선박 대비 경쟁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우선 항공과 철도 모두 선박 대비 운송단위가 너무 작습니다. 그리고 특히 육로 운송은 주요 루트마다 효율성 있는 운송 인프라(도로, 철도)를 확충해야 하는 막대한 비용 문제가 걸림돌입니다. 그리고 설사 이를 확보했다 하더라도 바다에 막히면 답이 없습니다.

철도는 한 번에 최대 컨테이너 60개를 운송할 수 있고 비행기는 중량 기준 3개 정도만 수송이 가능한 반면, 컨테이너 선박은 한 번에 최대 2만 4천 개의 컨테이너를 운송할 수 있습니다.  단위 크기는 경제성의 문제로 직결됩니다. 결국 상대적으로 작은 투자인 항만 선박을 이용한 해상 운송만큼 효율과 경제성을 가진 다른 방법은 당분간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컨테이너 화물 열차 (Railfreight.com), 세계 최대 화물기 벨루가(airbus.com), HMM(구 현대상선) 24,000 TEU 컨테이너선(HMM)

그렇다면 쟁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수요의 급격한 감소'입니다. 최근의 장기적 세계경제 침체와 자국 우선 정책,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 등 글로벌 해상 물동량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각 국가의 자급자족이 가능한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보입니다. 글로벌 해상 물동량이 드라마틱하게 줄어들기 위해서는 전 세계 주요 생산, 소비국들의 '자급자족형 경제'가 가능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원자재를 대부분 자국 안에서 구할 수 있고, 물품 가격이 비싸지더라도 무조건 자기 나라에서만 만들며, 딱 필요한 만큼만 만들고 혹 남는 건 그냥 폐기하는 그런 나라가 존재하는지 의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래서 좋든 싫든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 협력하고 교류하며 살아가야 하는 얄궂은 운명 공동체 임이 분명합니다.

국제 선박 운항 루트 이미지 (출처:  shipmap.org)

그렇다면 수요, 시장적인 측면에서 조선 산업은 앞으로도 'Rising Sun' 까지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매력이 있는 산업으로 유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결국 우리나라 조선업이 사양산업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두 번째 조건인 '시장 경쟁력' 부분을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글로벌 조선 산업의 주요 경쟁국은 한국, 중국, 일본 정도로 추릴 수 있습니다. (유럽은 크루즈선 및 군함에 특화된 별도 시장이고, 싱가포르는 해양플랜트 일부 분야에서만 소규모로 경쟁하고 있기에 논의에서 빼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각국 조선산업의 향후 경쟁 구도는 어떻게 될까요?

조산 산업의 향후 전망을 논할 때, 과거 영국에서 일본으로 그리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다시 한국에서 중국으로 주도권이 이양되고 있다고 이해하시는 독자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 '이동 원인'으로 주로 거론되는 것은 바로 '인건비 경쟁력'입니다. 가장 설득력 있고 수긍이 가는 설명입니다. 즉, 조선 산업의 주도권이 서구 유럽에서 일본으로 넘어가게 된 이유도, 일본이 한국과 중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된 결정적 원인도 바로 '인건비의 상승'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도 결국은 중국으로 조선의 주도권을 넘기게 될 거라는 논리입니다. 노동 집약적인 조선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원가 요소중 하나인 이 '인건비'에 대한 논리는 현재 절대적 진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과연 정말 그럴까요?


얼마 전 제가 들은 매우 충격적인 소식 중에 하나는 "한국 근로자의 평균 임금이 일본을 추월하였다"였습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소식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7배 이상 차이 나던 중국과 한국의 제조업 평균 임금이 이제는 3배 이내의 수준으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얘기한 '인건비 경쟁력 논리'대로라면, 한국은 이제 곧 일본에게 다시 제왕의 자리를 내주게 될지도 모릅니다. 또한 엄청난 인건비적인 강점을 가진 중국은 이미 한국과 일본을 월등한 격차로 추월하여 씨를 말려놓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수년째 중국과 한국은 점유율에서 엎치락뒤치락, 일본은 1,2위 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만년 3등의 위치에서 헤어 나오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먼저 국가의 임금 수준과 조선 산업의 인건비의 개념의 차이 즉, 인건비 계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조선 산업에서 인건비의 차이는 나라 간 임금 수준의 차이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약 10년 전 중국과 한국의 제조업 평균 임금의 차이는 약 7배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배를 짓는 인건비도 7배가 차이가 날까요? 정답은 '아니다'입니다. 배를 한 척 짓는 데 들어가는 인건비는 총 시수(생산성과 반비례)와 시수당 인건비(임금과 비례)의 곱으로 계산됩니다. 즉, 임금은 7배 작더라도 생산성 3배  실제 인건비의 차이는 약 2배 정도밖에 나지 않습니다. 어려우신가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집수리 공사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일당은 10만 원인데 5일 만에 끝내준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일당은 5만 원인데 10일 걸린다고 합니다. 두 번째 사람은 임금은 절반 가격이라 싸 보이지만 생산성이 낮아 2배의 시간이 들어가니 결국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돈(인건비)은 똑같이 들어가고 오히려 공사 기간만 2배가 되는 꼴이 됩니다. 이제 이해가 쉽게 되실 겁니다.

그런 이유로 10년 전의 중국과의 임금 수준은 7배이지만 생산성이 많이 떨어져(한국 대비 30% 수준) 인건비 약 2배 차이가 났, 현재는 중국의 임금이 많이 올라 한국과의 임금 차이가 3배까지 줄어들었지만, 생산성도 상당히 높아져 (한국 대비 약 70% 수준) 여전히 인건비 차이는 2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10년 동안 두 나라의 조선산업은 내용적으로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는데 인건비 격차는 그대로인 재미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향후 중국과 한국의 인건비 경쟁력이 어떻게 변화될까요? 아마도 아래와 같은 내용을 살펴보시면 예측이 가능하실 것 같습니다. '중국 제조업 인건비가 최근 10년 동안 2배가 넘게 올랐다는데, 앞으로 10년 동안은 얼마나 더 오를까?', '생산성은 한국 대비 70% 수준까지 따라왔다고 하는데, 10년 뒤 차이는 얼마만큼 좁혀질까?" 성질 급하신 분들은 벌써 엑셀 시트 열어서 이리저리 계산해보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요? 당연히 해보았습니다. 저의 예상은요? 글쎄요.. 나중에 기회 될 때 관련 내용을 다시 한번 나눌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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