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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콜라주 Jan 09. 2021

조선인이 쓰는 조선 이야기 (3)

사양산업 논란 - Part 2

(전편에 이어)


"그런데 이러나저러나 결국 인건비가 2배 차이 나니깐 결국 한국의 원가가 더 높다는 것이고 그러니 중국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 아니냐?" 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이 부분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의 선박 제조 원가에서 직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선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강 약 20% 정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중국이 인건비가 절반밖에 안된다고 하면 전체 원가 기준으로 약 10% 정도의 경쟁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간과하면 안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 배와 중국 배의 가격 차이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이지만, 결국 경영의 성과는 이윤이고 배의 가격에서 원가를 빼어 계산됩니다. 그러므로 동일한 배 가격일 때 원가가 적게 들어간다면 경쟁력이 있는 것이지만, 싸게 만들어서 싸게 팔린다면 그 '낮은 원가'가 경쟁력이 될 수 없습니다.

이 가격 차이는 얼마 정도가 될까요? 이도 시황에 따라 선종에 따라 제각각이긴 하지만 한국 배는 시황이 나쁠 때는 약 5%, 좋을 때는 약 10% 정도의 프리미엄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선주들이 중국배와 한국배의 가격 차이를 그 정도 인정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런 프리미엄을 받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중고 선박 가격의 프리미엄을 반영한 것입니다. 배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성능은 한국배나 중국배가 큰 차이가 없으나 중고선을 거래하는 시점에는 확연히 다르다고 합니다. 중국 선박 대비 내구성이나 성능 유지 측면에서 차이가 나고 이는 고스란히 잔존 가치 즉, 중고 선가에 반영됩니다.

결국 중국 배 10% 정도 싸게 만들지만 선가도 그 정도 싸니 원가 경쟁력은 크게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독자들께서 요즘 조선업계가 어렵고 그 이유가 선가가 낮아 이윤이 안 나기 때문이다라는 것을 한 번쯤은 들으셨을 겁니다. 그때 상상의 나래가 펼쳐집니다. "으이그, 그러니깐 한국은 인건비가 높아서 안된다니까? 그래도 중국은 싸게 만드니깐 남겠지만 말야..." 그러나, 실상은 앞서 제가 말씀드린 이유로 한국 조선 산업이 어려우면 중국도 어렵습니다. 즉, 한국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하고 있다면 중국도 손해 보는 장사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한중일 조선 업계가 너나 구분 없이 정말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라고 보시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80년대 후반, 일본은 후발 주자인 한국의 공세가 거세지고 인건비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 분하였습니다. 그래서 특유의 노련하고 똑똑한 근성을 발휘하여 이 치명적인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는 기발한 방법을 고안해냅니다. 이른바 '표준 선박 대량생산 작전'이 그것입니다. 일본인 특유의 강점인 엄청난 품질 관리능력과, 생산성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전략입니다. 선주들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킬만한 정말 '잘빠진 표준 선박'을, 마치 자동차 생산을 하듯 라인 생산으로 쭉쭉 뽑아내는 그런 기막힌 콘셉트이었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 획기적이었습니다. 가장 좋은 스펙의 배를 가장 빠른 납기에, 무결점 품질로 심지어는 한국과 비슷한 가격으로 생산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일본에서 2번째로 큰 조선소 JMU(Japan Marine United) (출처 : JMU)

그런데 위의 스토리는 결국 해피엔딩이었을까요? 그렇지 못했습니다. 단점 극복을 위해 취했던 선택이 나중에 치명적인 '장점의 훼손'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원가절감을 위한 표준선 정책을 시행하면서 많은 고정비를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현장에서는 반복 생산으로 도면은 거의 필요가 없을 정도로 효율이 극대화되었고, 많은 비용이 절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주들의 '세세한 요구사항'은 '표준선 반복 생산'이라는 명목으로 거절되기 일쑤였고, 설비도 표준선에 최적화 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선종을 위한 확장이나 변경이 필요 없었습니다. 세월이 지나자, 조선소에는 새로운 설계 및 엔지니링을 위한 인력들도 거의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엔지니어링 수요가 줄어들었으니 고정비를 늘리는 신규 인력도 충원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현상이 장기화 되자 전국 대학교의 조선과 학생들의 취업문이 좁아지고 조선과에 진학을 하지 않습니다. 결국 일본 조선 산업의 중흥의 상징이었던 동경대학교의 조선해양공학과는 1998년 '조선(Naval Architecture)'이라는 이름을 지우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조선 산업의 사양'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스로 근원적인 경쟁력을 잃어 가는 길. 한번 훼손된 경쟁력을 복구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일본은 뒤늦게 패착을 자각하고 최근 들어 조선 엔지니어들을 재육성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엔저 정책과 장기 불황으로 낮아진 임금을 무기로 다시 한번 조선에서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습니다만 그 길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보통 조선 산업의 경쟁력을 논할 때 원가 경쟁력보다는 제품의 성능, 납기 및 품질 관리능력, 그리고 설계, 생산 기술력을 먼저 얘기합니다. 왜 그럴까요?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답이 보입니다.

선박을 주문한 고객, 즉 선주는 목적이 화물 운송이기 때문에 사업 비용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연료비의 절감, 즉 연비 성능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습니다. 요새는 환경규제까지 포함하여 사업 운영 리스크가 더욱 커졌습니다. 그래서 사양서에 나와있는 성능은 당연히 만족해야 하고 그 능을 되도록이면 길게 유지하는 신뢰성 있는 제품이 필요합니다. 또한 선박은 기성품을 사는 게 아닌 주문제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화물 특성과 주요 루트 및 항구 조건최적화되도록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조선소, 그렇게 맞춰줄 수 있는 엔지니어링 능력을 가진 조선소를 선호하게됩니다. 그리고 주문 선박은 최소 2년이 지나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약속된 기간 안에 배를 못 받으면 화주(운송할 화물의 주인) 혹은 용선주(내 배를 빌려 쓸 손님)와의 계약이 깨지거나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운송하는 화물 종류가 가스나 오일, 화학제품 같은 것이라면 배의 결함이나 기능상의 오류로 화물이 유출되는 경우 재앙이 됩니다. 선주는 천문학적인 보상의 위험에 빠지며,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낙인이 찍혀 더 이상 사업을 영위하지 못하게 될 수도 습니다. 그러니, 선주들은 되도록 기존 거래를 통해 수년간 검증된 기술과 제작 경험, 능력을 갖춘 조선 선호하는 보수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런 보수적인 선주들은 오랜 거래를 통해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리고 발주 시 조선소의 기본 역량, 즉 성능, 품질, 납기관리 능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게 됩니다. 아직은 한국의 조선소들이 이런 부분에서 경쟁국 대비 나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배 가격이 싸고 안 싸고는 이런 기본적인 조건이 만족된 후에 비교 검토되는 두 번째 조건입니다.


현재는 극심한 '발주량 부족'과 '낮은 선가'의 상황으로 조선소들이 극한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원가 절감'이 다른 경쟁 요소를 압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만 힘든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원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더 중요한 근원적인 경쟁력이 훼손되면 안 된다'는 원칙 정도는 있어야 하겠습니다. 거북이가 토끼와의 경주에서 이기기 위해 "무게를 줄이자!"라고 생각하여 등껍질을 떼 버려서야 되겠습니까? 물에서 싸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조선 산업에서 경쟁력의 변화는 사실 '기 이동의 결과'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경쟁력의 차이 때문에 기회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기회의 이동(변화) 때문에 경쟁력의 차이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즉, 영국에서 일본으로 조선산업의 패권이 넘어간 것은 '일본이 경쟁력이 좋아짐으로 인해 기회가 일본에 넘어간 것' 이 아닙니다. 바로 '영국이 제조업을 포기하고 기술 및 금융에 집중하기로 한 것'일본이 경쟁력을 갖추게 된 기회가 된 것입니다. 또한 한국이 경쟁력이 좋아서 일본을 제치고 조선 강국이 된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일본의 오판과 패착으로 인한 '기회 이동'이 한국 경쟁력을 갖추게  원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떨까요? 한국의 어떤 국가적인 정책의 변화나 한국 조선업계의 오판, 그리고 패착이 중국 등 후발국게 기회가 될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은 이미 진행된 '한국 중소 조선소의 몰락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국 중소 조선소의 몰락'에 대한 내용은 시리즈 중간에서 상세히 다뤄 볼 예정입니다.  


제 이야기를 자연스레 따라오시다 보면, '흠 그래, 조선산업은 일단 사양 산업은 아니란 얘기네. 그리고 당분간 한중일 경쟁 체제인데, 일본은 많이 뒤떨어졌고, 중국하고 경쟁에서는 현재 장점을 지킨다면 당분간은 승산이 있겠단 얘기 구먼?' 이라고 서둘러 결론을 내신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불길한 느낌이 머리를 스칩니다.


'아냐 아냐, 사양산업은 결국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인데, 중국하고의 싸움은 잘 버틴다고 해도, 그 뒤로 인도, 남미, 베트남, 미얀마.. 신흥국 들이 줄줄이 달려들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하라고? 에이 깜빡 속을 뻔했네!"

 

다음 편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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