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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콜라주 Feb 16. 2021

조선인이 쓰는 조선 이야기 (12)

미래의 조선인

이번 편은 '조선 산업의 미래 이야기'입니다. 앞서 무거운 주제를 3편이나 연속으로 보시느라 수고하신 독자님들을 위해 오늘은 조금 가볍고 흥미로운 분위기로 이야기를 드려볼까 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제는, '미래 조선인들이' 그들의 일상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소설로 그 내용을 구성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야기 하나) 영업 담당 임원 A 씨의 일기


내일은 아마존이 발주한 48,000 TEU급 무인 컨테이너선의 계약식이 있는 날이다. 아마존은 요즘 사세가 예전만 같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첨단 기술을 주도하고 있는 인도의 국영 빅 테크 기업과 아프리카 연합(AU)의 5세대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에서 출혈 경쟁을 하고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아마존은 '전통 산업의 강호'답게 엄청난 규모의 투자와 오프라인 물류 네트워크 혁신으로 경영 위기의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내일 서명하는 선박은 이를 위한 아마존의 첫 번째 자체 선대(Fleet) 이자, '3번째' 은퇴 번복을 한 베이조스 의장이 투자를 직접 진두지휘한 세계 최대 규모 암모니아 추진 컨테이너 선박이다. 그러니 언론의 관심도 엄청 큰거 같다.

이 배에 탑재되는 AI Captain의 이름은 'Silver'이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고전 '보물섬'에 나오는 '악당 해적 선장'의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사뭇 궁금하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보물을 차지하겠다는 뜻일까? 심지어 다리가 잘릴지라도..?) 그리고 이 컨테이너 선박에는 신개념 하역 기술이 적용된다. KIVA-BOX가 바로 그것이다. 20년 전 아마존 물류 혁신을 이끌었던 KIVA 로봇의 박스십(컨테이너선) 버전이다. 이 KIVA-BOX 개발에 우리 회사도 일부 참여하였는데, 기본 개념은 작년에 이미 CES에서 우리 사장님과 아마존의 CEO가 공동 발표를 해서 잘 알려져 있다. 하역 부두 운송 장비인 Straddle AGV(무인운반차)에 KIVA의 컴팩트한 장점을 결합한 형태라고 보면 된다.

KIVA-BOX는 몇 톤이나 나가는 컨테이너 박스를 '부착하고' 30도 이상의 경사면을 오르내릴 수 있다. 또한 무인 트레일러에 컨테이너 박스를 상하차 시킬 수 있는 '다리 벌려 올리기(Straddle & Lifting)' 기능도 가지고 있다. 컨테이너 선박이 하역 부두에 도착하면, 일반 컨테이너 박스들은 하역 부두의 크레인을 이용해 하나하나 운반 AGV에 내려 보관장소로 이동한다. 그러나 이 KIVA-BOX를 이용해 하역하는 Special-A구역의 컨테이너들은 선박 측면의 사이드 램프를 내려 이 KIVA-BOX 로봇들을 이용하여 줄줄이 부두에 내린 후 미리 대기해 놓은 '아마존 전용 특별 배송 트레일러'에 바로 옮겨 싣는다. 아마존 특별 배송 트레일러는 '사후 통관' 서비스를 미리 신청해 놓고, 검역 엑스레이 게이트만 통과하면 하역부두에서 바로 지하로 연결된 '낮고 좁은' 무인 배송 전용 고속도로를 이용해 목표 배송지까지 즉시 운송이 된다. 다른 컨테이너 대비 최소 3일 이상 빨리 배송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이 '특별 직배송' 서비스는 전체 화물에서 약 10% 정도밖에 안되고 비용도 다른 화물에 비해 2~3배 정도 비싸다. 그런데 요즈음 수요가 급증하는 양자 컴퓨터의 '원자 소자' 등 빠른 배송이 생명인 물품의 특별 배송 분야에서 계속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존에서는 다음 컨테이너 시리즈에서는 Special-A 구역을 2배로 늘리고 사이드 램프도 하나 더 달아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을 해왔다. 단, 선박 가격은 그대로 하고... 아 정말 징한 놈들이다. 마침 우리 회사에서 3세대 암모니아 연료 엔진을 신규 국내 업체와 개발 중인데, 설계에서는 이걸 쓰면 원가도 줄일 수 있고 엔진룸 공간이 줄어 큰 비용 증가 없이 구획 추가가 가능할 것 같다고 한다. 아마존이 이걸 처음으로 써준다면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 있다고 협상을 해봐야겠다.

아무튼 이렇게 전 세계가 주목하는 큰 행사인데 아마존의 실용적 경영 기조를 존중하기 위해 계약 서명식이 온라인으로 진행돼서 아쉽긴 하다. 그래도 온라인 서명식은 오히려 전 세계 언론에서 동시접속 취재가 가능하다. 또 요새는 홀로그램 AR 기술이 일상화되어서 사람이 정말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 오프라인 미팅과 큰 차이가 없긴 하다. 같이 차도 마시고 서명본 교환도 실제처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햅틱 장갑을 끼면 악수하는 느낌까지 생생하니 정말 실제로 만나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는 세상이 되긴 하였다.


(이야기 둘)  설계원 B 씨의 일기


오늘 간만에 전체 회의인데, 회의 참석 대상 인원 모두 가능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후 5시라 오랜만에 특근 등록을 하고 회의 플랫폼에 접속하여 대기 중이다. 다른 회사는 1년 내내 팀원 얼굴 한 번도 안 보는 곳도 많다던데, 우리 쪽 업계는 아직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이렇게 VR로 모여 전체 회의를 해야지만 일이 되는 분위기다. 그래도 전 세계에서 흩어져 일하는 동료들 얼굴을 가끔은 봐야 소속감이 생기는 부분도 있으니 좋은 면도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기사에서 다른 산업 분야에 비해 조선 산업이 직원 이직률이 낮은 이유가 이런 대면 업무 환경이 직원에게 만족감을 높여주기 때문이라는 내용을 본 것 같다.

오래전 내가 주니어였던 시절에는 회의를 할 때 보안 문제 때문에 자료를 보려면 회사 안에 특정 장소 안에 모여서 이중망 관리를 하는 서버에 로그인도 두세 번 하고 해야 겨우 자료 접근이 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예 로컬에 저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진 지 오래이다. 또한 UHD 홀로그램으로 띄운 자료도 상세 자료는 회사에서 지급한 Crypto-Glass를 착용한 후 안경이 내 생체 인증 정보를 스캔 한 이후에나 볼 수 있으니 과거의 보안 이슈는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아주 가끔 생체 정보 해킹과 정교한 가짜 홀로그램 기술을 통해 회의 정보 일부가 외부에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전 세계 어디에서도 수 초안에 호선의 설계 자료 전체를 띄워 회의를 할 수 있으니 '효율이 리스크를 압도한다'라는 말이 여기에 딱 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요새 회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집중하는 분야는 전 세계적으로 주문이 많은 부유식 '에너지 자립 플랫폼'이다. 최근 3년 동안은 회사 매출에서 무인 선박이나 스마트 함정보다 이 쪽의 매출 규모가 급성장하고 있다. 10년 전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들은 지역 자립형 클린 에너지 수급 방안을 국가 에너지 기본 정책으로 채택하고 있다. 특히 클린 에너지 자원을 국내 각 지역의 분산된 플랫폼에서 자체적으로 생산을 하되, 남거나 부족한 에너지를 근처의 다른 플랫폼과 교환하여 전체적인 균형을 가져가는 것이 핵심 개념이다. 이 플랫폼의 주요 설비는 최근 인기인 '2중 날개-로터 결합형' 풍력 발전기와 '3중 롤러블' 태양광 패널의 콤비네이션으로 된 '솔라윈드 (Solar-wind) 모듈'이다. 이 모듈은 대도시 연근해에 규모에 따라 여러 개가 병렬 설치되어 '솔라윈드 팜'을 이루며 해저 케이블을 통해 도시에 기본 전력을 공급한다. 잉여 전력은 솔라윈드 팜에 붙어있는 수소 FPSO로 보내 수소를 생산하여 저장한다. FPSO에는, 솔라윈드 모듈의 에너지 생산량이 줄어들면 저장된 수소를 이용해 다시 전기를 생산하여 주 전력 공급라인에 전기를 공급하는 대용량 ESS(Energy Storage System)와 비상 발전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그리고 인근 에너지 플랫폼과 수소 저장량 정보를 공유하고 무인 수소 셔틀 선박을 이용해 안전 재고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수소를 교환할 수 있는 시스템을 옵션으로 제공한다.

이 '에너지 자립 플랫폼'은 각 선진국들의 해안에 있는 부유한 도시들과 자립형 관광 도시들을 중심으로 먼저 보급이 되어가고 있다. 기존에는 에너지 생산 설비들을 도시 근교의 산비탈이나 바닷가 간척지 등 육상에 많이 설치했었다. 그런데 주거 시설에 인접한 에너지 시설에 대한 혐오 문제가 점점 커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 대형 산불, 그리고 해안 지역에의 지진과 쓰나미가 피해가 속출하면서 산비탈이나 바닷가 간척지에 설치되었던 풍력, 태양광 시설이 주기적으로 소실이 되는 문제가 부각이 되었다. 또한, 최근 풍력과 태양열 발전 효율이 혁신적으로 증가한 이후로 '대량 잉여 에너지' 재분배를 위해 대용량 수소 혹은 암모니아 운반이 필요해졌다. 이에 선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부유식 에너지 플랫폼이 점차 각광을 받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아직도 신흥국들은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전통적인 에너지 자원 및 발전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부유식 LNG-CCUS 복합 발전소와 잠수식 원전이 있다. 이러한 설비는 기술 및 효율성이 이미 검증되었고 지역 간 이동 서비스가 가능하다. 게다가 일정 기간 사용 후에는 다시 저개발 국가에 매각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고정식 육상 설비에 비해 인기가 많다. LNG-CCUS 복합 발전소는 우리 회사에서 10년 전에 처음 개발하여 히트를 친 제품이다. 기존 친환경 브릿지 솔루션으로 많이 팔렸던 부유식 LNG 복합발전소에 카본 캡처 플랜트인 CCUS를 결합하여 Net Carbon-Zero를 실현하는 개념인데 아직까지도 시장에서 꾸준히 각광을 받고 있다. 또 전통적 인기 제품이었지만 슈퍼 허리케인 대응 리스크로 일부 국가에서 사용이 제한되었던 부유식 원전이 있다. 평소에는 물 위에서 부유식으로 운영되다가 비상 상황 시 일정 수심 바닥에 가라앉혀 고정하는 '수중 피항' 기능을 갖춘 '잠수식 원전'으로 개선되면서 이제는 안정성 측면에서 거의 완벽한 제품으로 인정받아가고 있다.

오늘은 부유식 에너지 자립 플랫폼의 핵심 설비인 '수소 FPSO'의 차세대 화물창 최적화 문제로 회의를 하는 거다. 이 분야는 오래전 우리나라 가스공사가 '대한민국 국부펀드'와 손을 잡고 인수한 GTT라는 회사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프랑스에 있는 설계 3팀이 빨리 접속을 해야 회의를 시작할 텐데...


(이야기 셋) 용접 컨트롤러 C 씨의 일기


어제는 오랜만에 게임을 너무 늦게까지 했더니 아직까지도 온몸이 뻐근하다. 둘째와 미뤄놨던 일전을 치르던 날이었는데 토털 스코어 3:2... 어제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정말 겨우겨우 이긴 것 같다. 우리 딸은 학교에서도 이름난 모범학생인 만큼 특히 게임 과목 그중에서도 멀티 컨트롤에 재능이 있어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매년 발표되는 유망 전문 직종 Top 10에 이 '로봇 컨트롤러'가 항상 들어가 있고 본인도 이 길이 싫지 않은 눈치이니, 딸이 재능을 잘 살려 유능한 로봇 컨트롤러가 되어 안정적 삶을 살면 좋겠다.

출근하기 위해 몸 상태를 스캔해보니 '옐로 레벨'.. 헉.. 이러면 오늘 용접 로봇을 5개 돌리는 건 무리다. 잘못해서 무리했다가는 그간 쌓아왔던 '알파 코인'을 잃어 연말에 보너스를 못 받을 수 있다. 어차피 이번 주까지 해야 하는 '최소 물량' 500m 정도는 나 같은 A급 컨트롤러는 3일이면 끝낼 분량이니 무리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나저나 어제 인사 시스템 'H-Best'에서 현장 매니저를 해볼 생각이 없냐는 초대 메시지가 왔다. 그간의 실적이나 나이 등을 종합해 최적의 경력 관리를 해주니 'H-Best'의 추천이 신뢰가 간다. 하지만 현장 매니저는 현장을 수시로 오르내려야 하고, 긴급 문제 해결 및 안전 상태 등을 관리해야 하는 일이라 시간을 내 맘대로 쓰지 못해 내 적성하고는 잘 맞지 않는다. 그래도 현장 매니저는 보수가 안정적이고 회사에서 이것저것 개인을 위한 투자도 해준다고 하니 좀 더 나이가 들면 현장 매니저로 전환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배 한 척에 20명 남짓한 자리라 경쟁이 좀 심하긴 하겠지..

어쨌건 오늘도 작업 시작이다. 현장은 24시간 돌아가는 분산된 작업 스케줄로 조정되어 있어 그다지 붐비지 않는다. 용접 로봇 컨트롤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본 업무는 현장 확인 및 로봇 세팅이다. 하루 3번, 수리 스테이션에서 검사 로봇과 자동수리 컨베이어를 통해 소모품 교체와 영점 조정을 마친 용접 로봇들이, 사내 무인 배송 시스템을 이용해 작업 현장 가까운 보급소에 미리 배달되어 있다. 무게가 5Kg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무리해서 몇 개를 동시에 옮기면 이를 감지한 'SHE 시스템'에서 바로 경고장이 날아오니 스켈레톤 로봇을 입는 것은 필수이다. 작업 환경을 확인하고 작업 물량을 육안으로 살핀 뒤 로봇들을 최대한 수작업 이동이 발생하지 않는 최적 지점에 놓고 유틸리티 라인을 연결하면 세팅 끝이다. 마그네틱+압착 궤도 바퀴를 가진 로봇은 철판 위를 이탈 없이 이동하면서 안정적으로 용접을 수행을 한다. 로봇 몸체가 납작하고 용접 봉이 작아 웬만한 파이프, 철의장, 전장 라인의 간섭을 회피하며 작업을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작업자 손이 안 들어가서 구조물 위치 조정을 하기도 했다는데, 이제는 거의 그런 제약이 없어 설계 작업이 엄청 심플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 회사에서 이 용접 로봇의 완전 자동화를 추구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완전한 지적 판단과 문제 해결이 가능한 Series-A 형 로봇은 S/W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 단점이 있다. 게다가 밀폐 공간이 많고 작은 워킹홀이나 해치를 통해 격자형 철 구조물을 수시로 넘나들어야 하는 조선업에서, 이러한 물리적 극복능력까지 더한 Plus 모델은 하드웨어 가격까지 3배나 비싸서 도저히 쓸 수가 없다. 무엇보다 안전 규약 때문에 유틸리티 라인을 연결하는 최종 확인 작업은 어차피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지라 효율이 너무 떨어졌다. 그래서 조선소의 자동화 로봇은 다른 분야와는 달리 사람과 공조하여 특정 밀폐 구역 안에서의 한정적인 작업에 최적인 Series-B 형 로봇이 정답이 된 것 같다.

로봇 위치 세팅이 끝나면 워크 오더 등록 및 작업 구역 입력을 통해 로봇이 작업에 필요한 정보를 내려받도록 한다. 초기 분석을 위해 시간이 좀 필요하므로 그 사이에 나는 현장 바로 옆에 있는 용접 분소 건물로 간다. 현장 보호복 및 안전 장구를 락커룸에서 벗어 놓고 편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는다. 초보들은 현장에서 로봇을 살펴야 하는 일이 많아 휴대용 컨트롤러를 사용하여 현장 근처에서 작업을 한다. 그러나 나처럼 숙련된 용접 컨트롤러들은 이렇게 떨어진 사무실에서도 충분히 작업이 가능하다.

용접일이라는 것이 의자에 앉아서 장시간 해야 하는 업무인 만큼, 회사는 특별히 A급 컨트롤러들에게 고급형 의자와 헤드셋, 그리고 용접 로봇 컨트롤용 스틱&보드를 S사의 제품으로 새로 지급해주었다. 기존 M사 것보다는 조금 빡빡하고 컨트롤이 내 맘대로 안 되는 느낌은 있지만, 그래도 새로운 의자와 헤드셋이 주는 안락감이 금방 기분을 좋게 해 준다. 자.. 로그인하고 용접 로봇들과 연결, 헤드셋과 모니터를 통해 로봇이 정위치에 있는지 확인한다. 오늘 작업 분량은 OOOO호선의 A 구역의 평판, 필렛 용접 20개 라인이다. 로봇에는 기본 설계 도면, WPS(용접 절차 시방서)와 최근 QM로봇이 평가한 근처 용접라인의 검사 결과 및 습도, 온도, 바람 등 용접 환경 관련 계측 조건이 이미 로딩되어 있다. 로봇은 나에게 오늘 작업 방법을 브리핑한다. 모니터에는 로봇에 연결된 카메라 및 구역에 설치된 비전 시스템을 이용해 만들어진 실물 용접선 화면이 뜬다. 실물 용접선 화면에 로봇이 초기 세팅한 작업 방법이 AR로 덧입혀져 표기되어 있다. 나는 이 가상의 용접 라인 상에 타임 라인 절점을 지정하고 구간마다 각각 로봇이 작업해야 하는 작업 방법과 시간을 다시 세팅해 준다. A급 용접 컨트롤러로서 각종 기술 자격증까지 보유한 자의 유려한 컨트롤 실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직접 매뉴얼 컨트롤로 섬세한 용접 작업을 해야 하는 구간은 별도 마크로 표시하고 알람을 설정해 둔다. 어제는 컨트롤 스틱과 현장 로봇 사이에 잠깐 랙이 발생해서 매뉴얼 용접 작업 시 불량이 생겼다. 세팅 값을 조금 조정해놔야겠다. 자.. 1번 로봇 작업 시작, 한 20분 정도는 자동모드로 진행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또 문제가 있다면 센서가 모니터링해주겠지.. 다음은 2번 로봇 세팅... 어? 용접 라인 세팅하다 보니 앞을 가로막고 있는 파이프 라인이 보인다. 이거 짜증 나는구먼! 저 높이면 로봇이 못 들어가지.. 아까 현장에서 분명히 못 봤는데...? 이따가 현장 매니저의 도움을 얻어 로봇을 옮겨야겠구만... 예약 시스템에 미리 등록을 해놓는다. 에이, 순서가 엄청 밀려서 대기 시간이 생기게 생겼네, 내가 직접 가야겠다. 현장 매니저 확인을 거쳐 설계에다가 시수 페널티 접수를 한다. 도대체 이렇게 용접선을 따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생산성 떨어지게 시리... 그러니깐 AI 자동 설계 너무 의존하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내가 몇 번이나 얘기했었는데, 설계도 참 고집이 세단 말이야.

오늘은 몸 컨디션이 안 좋은 데다가 컨트롤 장비도 다 새로운 거라 어색하고, 간섭 라인까지 있어 30분이 지나서야 겨우 3대의 기본 세팅이 끝났다. 휴우... 일단 조금 있다가 최초 진행 용접 사진 표본 검사해서 불량 체크한 뒤 이상 없으면 커피나 한잔 하러 가야겠다. 이번 블록은 할당된 QM 비파괴검사 로봇과 선급 드론이 선주 요구사항과 선급 룰에 대한 적용 알고리즘을 엄청 심하게 걸어놔서 검사가 까다롭다고 하던데, 실수 없이 해놔야 일찍 끝나고 집에 갈 수 있다. 그래도 나 같은 A급 컨트롤러는 오늘 분량 정도면 6시간이면 다 끝낼 수 있다. 작업 마친 용접 로봇은 유료 수거 서비스 신청해 놓고, 오후에는 아들놈 온라인 수업 끝나면 오랜만에 바다낚시나 한번 가야겠다. 낚시가 또 용접 컨트롤 훈련에는 최고지!


독자님들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제가 쓰긴 했지만, 저도 위의 소설이 현실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라함 링컨은 국가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대중들에게 이런 명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create it.)"


조선 산업의 미래도 어쩌면 '조선인'들의 머리와 마음속에 이미 작은 씨앗들로 움트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씨앗을 '과거의 성공과 실패'라는 배양액으로 싹을 틔워 현실의 토양에 옮겨 심은 뒤 '조선 산업의 미래'라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나무로 키워나갈 사람도 바로 다름 아닌 '조선인'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선인들이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담담히 정리하고 산업의 미래 비전을 세워가는데 이 시리즈가 작게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또한 공감해 주셨던 모든 독자분들이 그 비전의 후원자이자 파트너가 되어주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번 편이 제가 준비한 '조선인 시리즈'의 마지막입니다. 그간 시리즈에 보내주신 뜻밖의 많은 성원과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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