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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콜라주 Feb 02. 2021

조선인이 쓰는 조선 이야기 (9)

해양사업의 축복은 왜 저주가 되었나 - Part1

조금 무거운 주제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바로 '해양 플랜트 사업'의 이야기입니다. 현재 한국 조선 산업이 최정상에서 바닥으로 미끄러진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세간에는 이미 많은 분석이 넘치지만, 이번 기회에 저의 시각으로 다시 한번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해양 플랜트 사업은 한국 조선 산업의 미래를 위해 한번쯤은 꼭 다시 한번 들여다봐야 할 '아픈 손가락'입니다.


저는 전 직장에서의 아쉬운 기억을 뒤로하고 한 대형 조선소에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사 빌딩의 회의실서 경력 소개 프레젠테이션 및 대면 면접을 보았습니다. 별도로 외국인 직원이 진행하는 영어 면접도 했습니다. 저를 상대하는 직원들 모두 얼굴에 자부심과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그리고 좋은 빌딩 안의 근사한 회의실과 사무 집기들을 보니 회사의 재정상태가 얼마나 좋은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수년간 생존과 수주를 위한 전쟁터와 같은 회사에서 지내왔던 저에게 그곳은 마치 '신세계'와 같았습니다.

입사가 결정되고 조선소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학생 때 이후로 오랜만에 다시 찾아간 조선소는 제가 십여 년 전 '익숙히 봐왔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야드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기존에 있었던 드라이 도크 외에도 플로팅 도크, 그리고 해양 프로젝트를 위해 지어진 거대한 육상 건조 설비까지... 거짓말 보태 거의 규모가 두 배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소의 배후 주거 단지는 거의 '천지개벽'을 한 것 같았습니다. 예전에 해장국과 김밥 따위를 팔던 작은 가게가 몇 개, 이름이 낯선 지방 브랜드 아파트 몇 동이 서있던 '시골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그 곳이 전국구 톱 브랜드 아파트를 포함 10여 개가 넘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는 '미니 신도시'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가족과 살 집을 구해야 했던 저는 아파트 매매 및 전세 가격을 조사해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였습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심지어 물량도 귀하여 겨우 몇 군데를 돌아보고 서둘러 계약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것이지만, 이곳에는 수년 전부터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한국의 톱티어 아파트 브랜드들이 분양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구당 수천만 원에 달하는 분양권 프리미엄이 거래 시장을 과열시키고 있었습니다. 거래 제한도 없었던 시절인지라, 직원들은 분양권을 사거나 분양된 아파트 거래를 통해 짭짤한 부가 소득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아예 아파트를 몇 채 사서 렌털 사업에 뛰어든 분들도 있었습니다. 인테리어 및 기본 가구를 구비하고 월세를 내놓으면 그 당시 이 지역에 거주가 필요했던 수천 명에 달하는 주문주(선주) 감독관들과 엔지니어링 회사의 외국인들이 들어와 고가의 렌트비를 지불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조선소에서 고용하는 임시 직공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됨에 따라 이들이 머물 숙소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소 주변의 수많은 원룸촌이 이 수요를 충족시켰습니다. 이때 조선소의 직원들 중에서 원룸 주택을 짓거나 매입하여 임대를 놓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연봉 외에도 한 달에 수백만 원씩의 부가 수입을 올렸다고 합니다. 또한 이렇게 조선소에 취업한 상주 인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니, 먹고 마시는 장사도 불야성을 이룹니다. 그야말로 '길거리의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니는' 조선소의 상황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조선소의 사업이 선박 사업 중심에서 설비와 인력이 막대하게 소요되는 해양플랜트 사업 중심으로 옮겨가게 되면서 발생한 결과였습니다.

                 

앞서 시리즈에서 소개한 대로 2000년대는 중국을 위시하여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신흥 시장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저금리 정책 등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의 경제 부양 정책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경제의 규모가 커지던 시대였습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에너지 수요의 급증을 불러오게 됩니다.

그러나, 공급 시장의 사정은 달랐습니다. 911 테러로 촉발된 2003년 중동 전쟁 이후 OPEC의 에너지 시장에 대한 지배력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여유 생산능력이 부족했던 중동의 오일 부국들은 수급을 조정하며 막대한 이익을 올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급에 문제가 생길 지정학적, 정치적 요인들이 발생했습니다. 주요 산유국에서는 '자원민족주의'가 대두되었습니다. 게다가 중동은 이란의 핵문제와 터키와 쿠르드족의 충돌로, 아프리카는 나이지리아의 정치 불안으로, 남미는 미국과 베네수엘라와의 갈등으로 공급의 불안요소를 가중시켰습니다. 이런 불균형적 상황에 의해 유가는 계속 상승 행진을 하다가 2008년 7월에는 배럴당 140.70달러라는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게 됩니다. 세계 금융 위기로 일시적으로 조정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유가는 2014년까지 배럴당 100불 내외를 유지하며 장기간 고공 행진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에너지 소비국들의 불안은 가중되었고, 세계 주요국들의 '에너지 안보 정책'에는 비상이 걸립니다.

그러나 세계 주요국 및 에너지 메이저 업체들은 이미 7~80년대의 '오일 쇼크' 상황에서의 성공적 경험이 있었습니다. 유가의 폭등과 경제 침체의 문제를 '새로운 에너지 자원'의 발굴로 해결했던 경험입니다. 그들은 즉시 '모범 답안'을 펼쳐 행동에 들어갑니다. 이런 각국의 뜨거운 열기에 '세계의 돈줄'들이 기름을 붓습니다. 중동 국가들이 고유가로 벌어들인 막대한 오일 머니, 그리고 금융 위기 이후 갈 곳이 없었던 전 세계의 투기 자본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심해 에너지 개발 시장'이 고속 성장을 넘어 과열의 양상으로 치닫게 됩니다.


조선의 수퍼사이클이 금융 위기에 이은 경제 침체로 급격한 내리막길을 보이고 있었을 때, '해양 에너지 개발 붐'은 한국의 대형 조선소들에게는 정말 '신이 내린 동아줄'과 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대규모의 설비 투자'가 '급작스런 시장의 축소'를 만나면 정말 엄청난 골칫거리가 됩니다. 특히 조선 산업에서의 설비 투자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갑니다. 게다가 한번 늘린 설비 및 인력을 단시간에 다시 줄이기는 매우 어려운 특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도크, 안벽 등 고정 건조 설비는 따로 분리해 매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설비에 일단 투자를 한 이상 감가상각 기간 동안 매출과 이익을 냄으로써 그 투자비를 '뽑아 먹는' 수밖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습니다.


해양 플랜트는 종류가 다양하지만 크게 시추 장비 (Drilling Equipment)와 생산 설비 (Production Facility)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시추 장비는 말 그대로 해양 유전이나 가스전을 탐사하거나 오일, 가스를 뽑아내기 위해 해저 바닥에 구멍을 뚫어 시추 파이프를 유정이나 가스정까지 밀어 넣는 역할을 하는 장비입니다. 생산 설비는 이렇게 시추한 유전이나 가스전에서 오일이나 가스를 뽑아내어 불순물을 정제하고 분리하여 저장 또는 운반선에 하역(Off-loading) 해주는 설비입니다. (해양 플랜트 종류 및 기능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잘 설명되어있는 삼성중공업의 블로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blog.samsungshi.com/317)

시추 장비 종류 (출처: jobonship.org)
심해 생산 설비 종류 (출처: researchgate.net)

고유가로 인한 '추가 에너지 확보 경쟁'에서의 타깃은 기존의 경제성이나 기술적 한계 때문에 작업하기 어려웠던 심해(Deep-sea) 혹은 극한의 해상 환경 (Harsh-environment)의 개발이었다. 가깝고 수심이 낮은 근해라면 이런 시추 장비나 생산 설비의 '하부'를 고정식 구조물 형태로 만듭니다. 그러나 깊은 바다의 경우에서는 하부가 보통 '선박 혹은 부유체'의 형태를 가지게 됩니다. 또한 일부 생산 설비시추된 오일과 가스를 임시적으로 저장하는 기능을 가져야 합니다. 저장은 일반적인 탱커와 가스선이 가진 기본 기능 중 하나니다. 즉, 심해용 해양 플랜트는 기존의 선박 사업과도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사업이었습니다.


제가 대형 조선소에 입사하였던 시점은 해양플랜트 시장이 정점에 이른 시점이었습니다.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요? 해지기 직전의 노을도 가장 아름다운 법입니다. 회사의 매출은 불과 몇 년 전과 비교 해 거의 2배가 되어있었습니다. 매출 10조를 훌쩍 넘기고 20조를 꿈꾸는 큰 회사!

선박 사업에서 매출 규모가 가장 큰 선박은 단연 LNG선입니다. 현재 대형 LNG선의 경우 대략 2000억 정도로 거래가 됩니다. 이 LNG선을 1년에 약 15척 지으면 약 3조의 매출이 됩니다. 여기에 약 1500억 원 정도 하는 메가 컨테이너를 10척 지으면 1.5조, 여기에 또 약 1000억 원 정도 하는 VLCC를 10척 지으면 약 1조 원... 이렇게 고부가가치 선박만 골라서 35척 정도 지으면 1년에 올릴 수 있는 매출은 약 5.5조 원 정도가 됩니다. 여기에 LPG선이나 셔틀 탱커와 같은 중형이지만 선가가 높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4~5척 더 짓는다 해도 조선소에서 선박 사업만 가지고 1년에 6조 매출 이상을 하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해양 플랜트 사업은 다릅니다. 스펙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보통 시추 장비 중 드릴십 같은 경우가 1기당 약 5천억 원 정도입니다. 심해 개발용 대형 생산 설비인 FPSO나 FLNG는 프로젝트당 통상 1조 원이 넘고 큰 프로젝트의 경우는 약 2~3조 원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1년에 시추 장비 몇 기와 대형 생산 설비 몇 개 프로젝트만 동시에 진행하더라도 해양 사업의 규모가 조선 사업 전체 매출 규모를 넘어서게 됩니다. 즉, 조선소의 매출이 10조 원이 넘어가는 것은 일도 아니게 됩니다. 한국의 대형 조선소들은 이렇게 해양 플랜트 사업의 붐을 타고 매출 규모 면이나 인력 운영 규모상으로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몸집'을 가지게 됩니다.

 

(좌) 세계 최대 규모 FPSO "에지나" (우) 세계 최대 FLNG "프렐류드" 각각의 가격이 3조 3천억 원, 2조 8000억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출처: 삼성중공업)

그러나, 이렇게 잘 나가던 수많은 '심해 에너지 자원개발' 사업들은 뜻밖의 강력한 암초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미국의 '셰일 가스 혁명'이 그것입니다


혁명의 사전적 의미는 "이전의 관습,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입니다. 2010년대 중반,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이런 '혁명적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미국이 사우디와 러시아를 누르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된 것입니다. 그것도 타국의 에너지 자원을 빼앗거나 사들여서 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자국 영토 내 '경제성이 없던' 자원을 혁신적 기술을 이용하여 '환골탈태' 시킨 성과이니 혁명이란 단어가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천연가스 광구보다 더 깊은 곳에 위치하고 수평적으로 분산되어 있어 경제적 가치가 없었던 '셰일 가스'였습니다. 이를 '수평 시추' 및 '수압 파쇄'라는 혁신적 공법을 이용하여 비교적 낮은 원가에 확보할 방법을 개발한 것입니다. 이로써 미국은 자국에서 약 100년을 사용해도 다 쓸 수 없는 새로운 에너지 자원을 확보합니다. 그리고 '최대 소비국'이 아닌 '최대 산유국'으로서 세계 에너지 시장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이 셰일 가스 혁명에는 '장기 고유가 시황'이 결정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유가가 낮은 시절에는 셰일 가스를 개발하는데 필요한 기술과 개발 사업에 '돈'을 댈 투자자가 없었습니다. 또한 미국도 자국 내 비싼 자원을 개발하기보다는 OPEC나 다른 산유국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에너지 자원을 사서 소비 및 비축하는 것이 국가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수급의 불안으로 각국의 '에너지 안보'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되는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미국의 '셰일 가스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환경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미국의 셰일 광구 및 개발 현황 (2015년, 출처: U.S. Department of Energy)

미국의 이러한 변화를 다른 산유국들이 환영했을까요? 당연히 아니겠지요. 그중 누가 가장 마음이 불편했을까요? 네, 아무래도 직전까지 '에너지 안보 협력'을 매개로 미국과 엄청 친하게 지내왔던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장 그랬을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도 가장 큰 친구이자 고객이었던 미국이 가장 위험한 경쟁자가 되었으니깐요.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수장인 OPEC는 극한의 결정을 합니다. 바로 '미국의 혁명'을 무산시키기 위한 '치킨 게임'에 돌입한 것입니다. OPEC는 전 세계에 오일 공급을 엄청나게 늘려 유가 하락을 주도합니다. 아직까지는 생산성이 낮아 배럴 당 60~70불 선에 머물고 있는 셰일 가스의 '원가적 한계'를 공략한 것입니다. 유가를 끌어내려 미국 셰일 산업계를 '고사'시키려는 의도였습니다. 에너지 주도권을 두고 벌어진 강대국 간의 이 '위험한 게임'은 금융 위기 이후 장기 침체의 길로 들어선 세계 경기와 만나, 유가의 급격한 하락 및 장기 저유가의 상황을 만들어 냅니다. 한국 대형 조선소의 '고난의 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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