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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콜라주 Jan 27. 2021

조선인이 쓰는 조선 이야기 (7)

중소조선소의 몰락, 그 뒷이야기 - Part1

세기말의 불안과 혼란,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기대가 공존하며 시작 2000년대는 미국의 911 테러와 곧이어 터진 중동전쟁  초대형 악재들우울한 출발을 합니다. 그러나 세계 경제는 오히려 최고의 호황을 누리게 되는데, 침체를 우려한 미국의 적극적인 경기 부양 '90년대에 이어 지속된 중국의 고속 성장 등의 영향 때문입니다. 이 결과로 해운과 조선 산업은 앞으로는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은 수퍼사이클을 마주하게 됩니다. 해운 물동량 급증에 선박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각국의 조선소에는 주문이 넘쳤습니다. 이 수혜는 앞서 시리즈에서 말씀드린 대로 공격적인 설비와 인프라 투자를 감행한 한국과, 후발 주자로서 신규 조선 설비를 대폭 늘려 놓았던 중국에게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이때 한국의 중소형 조선소의 공급 설비도 급속도로 늘어났습니다. 신생 중소 조선소들이 여기저기에서 생겼고 그들도 역시 호황의 물결을 타고 시장에서 순조롭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수퍼사이클'은 그 이름이 가진 의미처럼 오를 때만큼이나 가파른 내리막길을 만들며 조선 산업을 위협하게 됩니다.


2007년 4월, 이름도 생소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합니다. 미국의 2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업체인 ‘뉴센추리 파이낸셜’이 파산을 신청한 것입니다. 저는 이 당시 강 건너 불구경하듯 '그러려니'하고 뉴스를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해를 넘긴 2008년에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9월 6일, 미국 재무부는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양대 국책 모기지 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국유화하며 총 2000억 달러 규모의 공적 자금을 투입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1주일 뒤, 세계 3대 투자은행이었던 리먼 브라더스를 구제하지 않고 그대로 파산시키기로 결정을 합니다. 이 파장은 미국의 금융권을 넘어 미국의 '모기지 채권'에 약 1조 달러 이상을 투자한 각국 중앙정부의 리스크로 퍼져나가 '세계 금융 위기'로 발전이 됩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미국 일간지 지면 (출처: internationalism.org)

2000년대 미국에서는 금리가 낮고 집값이 대세 상승하였습니다. 거기에 신용이 낮아 정상 대출이 어려운 사람들까지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대출 프로그램을 이용해 집을 살 수 있게 되면서 주택 시장이 과열되었습니다. 부실화 가능성이 있어 위험한 상황인데도 미국의 금융 회사들은 '이 빚을 지렛대'로 돈을 벌고자 하였습니다. 금융 회사들은 이 엄청난 규모의 모기지 채권을 증권화하여 시중에 유통을 시킵니다. 또한 그에 더해 '부실화 가능성'이라는 리스크에 투자하는 파생 상품도 만들어 폭탄 돌리기를 시작합니다. 거대한 규모의 채권이 가진 실제 가치에 더해 미래에 벌어질 '가능성'과 '리스크'라는 환상적 재료를 섞어 엄청난 규모의 '금융 버블'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게다가 세계 각국이 이 '거대한 버블 만들기'에 동참하였습니다. 미국 신용 평가사들의 '안정적'이라는 평가와 '미국이 보장할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금리가 인상되고 경기 하강으로 집 값이 하락세로 전환이 되자 신용도 낮은 개인의 부실이 현실이 됩니다. 그리곤 이 '작은 부실'은 전 세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부실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세계의 금융 시스템을 마비시키게 됩니다.

금융 위기는 그 당시 자유주의 경제학 신봉자(시카고학파)들이 주류였던 미국 금융권의 부조리와 그들이 '금융 공학'을 이용해 만든 '파생 상품'의 폐해를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도대체 한국 조선소와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뭔 상관이길래 이렇게 긴 서두를 뽑았냐는 독자님들의 마음속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나 이 '금융위기'와 금융위기를 일으킨 주범인 '파생상품'은 모두 한국 중소 조선소의 몰락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한국 중소 조선소의 몰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저는 두 가지 결정적인 방아쇠(Trigger)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키코(KIKO : Knock In Knok Out), 두 번째는 선수금 환급보증(RG : Refund Guarantee)입니다.


먼저 첫 번째 방아쇠인 키코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키코는 기업의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한 '환 헷지형 통화옵션계약'의 이름입니다. 네, 키코는 ‘금융 공학’을 이용하여 만든 ‘파생 상품’입니다. 앞서 시리즈를 보신 독자들은 IMF 당시 조선업계가 얼마나 꿀맛 같은 환차익을 보았던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의 조선업계는, 거꾸로 달러당 1200원대에서 계속 점진적으로 하락하여 900원대에 이른 환율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원화 가치 상승에 의한 환율의 추가 하락은 조선소로서는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환율 하락 리스크 방지를 위해 적극적인 환 헷지 정책을 가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키코입니다.

사실 키코는 일반적인 환헷지 옵션 상품과는 매우 다른 상품이었습니다. 즉, 일정 범위의 계약 환율 범위 내에서는 이익을 볼 수 있으나 범위를 벗어나면 기업의 일방적 손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설계된 상품이었던 것입니다. 먼저 환율 하락 상황에서는 일정 범위의 환율에서만 헷징이 가능하고 약정 환율의 하한을 한번이라도 넘어갈 경우 계약 자체가 무효(Knock-out)가 되어 환율 하락에 대한 손실을 기업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습니다. 환율 상승시에는 더욱 심각한데, 계약된 환율 범위의 상한을 넘어가는 상황(Knock-in)에서는 계약금액의 '몇 배(계약에 따라 2~5배)'를 시중 환율(높은 금액)로 사서 약정 환율(낮은 금액)로 팔아야 해서 손실이 더욱 급격히 증가하였습니다. 보통 대기업들은 이런 상품의 위험성을 검토할 수 있는 조직과 내부 규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오너와 재무담당 임원 등 몇 명의 신중하지 못한 의사결정이 쉽게 작동을 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게다가 이 키코는 수주에 필수적인 'RG' 발급 주거래 은행들이 적극 권한 상품이었습니다. 그리고 ‘계약 범위를 벗어난 환율은 수년간 패턴을 볼 때 '절대 발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중소 조선소들은 위험성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수수료가 없는 신통한 헷지 상품'이라 포장된 키코계약하게 됩니다. 심지어 일부 중소 조선소는 욕심을 내 필요 이상의 '오버 지'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실제 가입 초반에는 정상 계약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환율 덕분에 일부 이익을 얻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금융위기는 달러 당 8~900원대에서 횡보하던 원-달러 환율을 1500원대까지 수직 상승시켰습니다. 그리고 이후 상당 기간 동안 1300원~1600원을 오가는 '환율 고공행진'의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즉, ‘절대 발생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 버린 것입니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당시의 손해는 723개의 수출 중소기업에서 약 3조 3000억 원의 규모였던 것으로 추정이 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외환을 가장 많이 취급하는 수출기업이 어디일까요? 네, 이 피해 금액의 상당액이 중소 조선소에서 발생하였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2019년의 모 일간지의 기사에 의하면, 금감원의 공식 발표와는 달리 재무제표에 반영된 15개 중소형 조선소의 2008년 이후 3개년 키코 손실 추정액만 6조 7천억 원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국 주요 중소조선소의 매출액 대비 KIKO 손실규모 (출처: 한겨레 신문)

그 당시 제가 근무하고 있었던 조선소를 포함한 거의 모든 중소 조선소들이 키코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피해 금액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수퍼사이클의 정점에서 수주를 한창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조선소가 환 헷징을 주로 키코로 했다면 엄청난 피해 금액이 발생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소 조선소들은 단순히 환차손을 조금 덜 보기 위해 가입했던 금융 상품으로 인해 십수 년이 지나도 갚지 못할 엄청난 빚을 지게 됩니다. 이 빚으로 조선소는 신용도가 급격히 떨어졌고 자체 자금 조달이 불가해져 은행 관리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빚은 불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고비 때마다 번번이 조선소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중소 조선소들의 회생의 기회를 꺾어버리는 결정적 원인이 됩니다.
'그래도 거래 은행들은 막대한 이익이 났을 테니 국가가 중재해서 대책을 세우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들은 바, "우리나라 은행들은 파생상품 거래로 수수료만 챙겼지 대부분의 이익은 아마도 국내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니 정말 분통이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만약에 중소 조선소들이 그 당시 키코를 가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금융위기 때 갑자기 오른 환율 덕분에, IMF 때의 대형 조선소들처럼 르네상스를 구가할 수 있었을까요?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이지만, 적어도 오늘날처럼 이렇게 처참하게 전멸의 길을 걷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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