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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콜라주 Feb 09. 2021

조선인이 쓰는 조선 이야기 (11)

Big3, 매직 넘버를 찾아서

2000년대 초반, 대학원생이었던 저는 운이 좋게도 한 대형 조선의 '비즈니스 프로세스 혁신', PI(Process Innovation) 프로젝트 참여게 되었습니다. 지도 교수님의 평소 지론인 "현장에서 배우라"라는 학풍과, 새로운 것에 뛰어드는걸 좋아하는 저의 성격, 그리고 언제나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뜻밖의 기회'가 만난 결과였습니다. 그렇게 선배의 대타로 들어간 프로젝트에서 저는 조선소의 전체적인 밸류 체인과 업무, 특히 그 중심의 한 축을 이루는 생산 계획 프로세스를 생생하게 익히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제 머릿속에는 조선 산업에 대한 어떠한 '모델'과 같은 이미지가 자리 잡았습니다. "아, 조선소는 이런 곳이고, 조선소 사람들은 이렇구나!"

얼마 후 저는 다시, 또 다른 대형 조선소의 PI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초짜가 아닌 '경력자의 자격으로서'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조선 산업에 대한 이해가 높다고 생각하고 들어간 프로젝트에서 저는 예상치 못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 조선소의 업무 프로세스와 시스템, 그리고 담당자의 요구사항이 앞서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정부 과제로 다른 Big3 조선소의 전사 프로세스를 분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역시나! 그곳도 앞서 두 조선소와는 '또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저는 한국의 조선소들이 각각 저마다의 독특하고 고유한 특성에 따라 차별화된 장점을 키우며 경쟁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히, 각 회사마다 '기업 문화와 업무 스타일의 차이가 크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러한 어렴풋한 '의심'은 이후 '확신'으로 바뀌게 됩니다.


대학원 졸업 후 조선 기술 벤처회사에 합류하게 된 저는, 컨설팅 프로젝트로 어느 신생 조선소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즈음 회사의 독특한 시장 포지셔닝과 경쟁력, 그리고 인품이 좋으신 오너의 매력에 이끌려 그 조선소에 전격적으로 입사를 하게 됩니다. 회사에는 신생 회사답게 다른 조선소에서 리크루팅 한 패기 넘치는 기술, 관리 인력들이 모여 단기간에 조선소를 정상 궤도에 올리기 위해 매일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업무를 하다 보면 항상 끊이지 않고 이런 종류의 토론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하면 문제가 있을 텐데? 이거 OO 표준을 써야 하지 않아요?", "우리 회사에서는 이렇게 안 했는데? 이것은 OO조선소가 하던 방식으로 바꿉시다!"

대형 3사뿐 아니라 중소형 조선소에서도 실무에 능한 인재라면 가리지 않고 뽑았던 탓(?)에 회사는 상당 기간 동안 이러한 표준과 업무 방식, 시스템을 셋업 하는데 많은 노력과 합의가 필요했습니다. 리더십 스타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임원이나 팀장이 어느 조선소에서 온 분이냐에 따라 독특한 그 회사만의 특징이 표출되었습니다. 세간에 Big3는 '결속과 추진력의 리더십', '관리와 성과중심의 리더십', '자발성과 융화의 리더십'의 특징으로 나뉜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전혀 틀린 이야기는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서로가 복잡하게 얽힌 업무에서 이러한 다양한 리더십의 발현은 종종 난감한 상황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서로 다른 성공 경험', 그리고 문제의 '원인 분석과 해법'이 각기 다른 상황에서 이른바 '합'을 맞춰 나가는 과정은 정말 고통스럽기까지 한 과정이었습니다. 또한 경영진이 바뀔 때마다 '출신 조선소'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경영 스타일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각 조선소에는 정말 다른 '업무 스타일'과 '관리 방식'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가깝고도 먼 이웃들인 것 같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숫자 3은 '안정성'이나 '완전함'을 이야기할 때 많이 언급되는 수입니다. 다양한 철학적, 종교적 해석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 외로운 '1'이나, 치열한 경쟁이 연상되는 '2'를 빼고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이고 안심되는 숫자'라서 그렇지 않까 생각해봅니다.

조선 산업에서는 숫자 3은 어떨까요? 다른 건 몰라도 '세 회사 간의 경쟁'이 적어도 우리나라 조선 산업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는 데는 크게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회사의 문화나 업무 추진 방식, 관리 방법은 많이 다릅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가 되려는 목표는 같았고, 치열한 경쟁 덕분에 세 회사는 결국 국외의 경쟁자가 따라오지 못할 만한 수준까지 기술 격차를 벌리는 데 성공을 하였기 때문이죠.

그러나 지금 현재 한국의 조선 산업은 '기술력 격차'와는 조금 결이 다른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시장 장기 불황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조선과 해양 활황기에 키워놓은 '설비의 능력의 과다'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조선소마다 극심한 만성 저부하를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정비 과다에 의한 적자폭 확대'의 원인이 되어 그렇지 않아도 장기불황으로 어려운 조선소의 경영상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조선 산업은 저마다 해양 산업에서 천문학적 손실을 보며 국민과 국가로부터 "스스로 해결할 경영 능력이 있는 것인가?"라는 '이유 있는 의심'을 받고 있니다. 지금 당장 무언가 근원적 조치를 하지 않으면 국제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불안이 확산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앞서 시리즈에서 말씀드린 대로, 저는 그 심증과 불안에 대 무조건적인 동의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 세계 조선 산업이 한국과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그 상황에서 국내 공급 능력만 조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조선 수퍼사이클과 해양 활황기에 크게 늘려놓은 각 사의 공급 능력을 향후 시장 전망 및 규모에 맞춰 합리적인 방법과 수준으로 '조정'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한 회사를 없애라'와 같이 정작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자학적 대책'이 아니라면 말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국책은행과 대한민국 No.1 조선 그룹의 주도로 한국 조선 산업을 Big2로 재편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통합이 이미 끝났다고 알고 계시는 독자들이 있는데, EU를 포함한 경쟁국의 '기업결합 심사'과정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결합하는 두 회사가 세계 1위, 2위 조선 기업이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들의 '반독점(Anti-trust)' 심사과정이 필요합니다. 현재 쟁점은 한국의 가장 큰 고객이자 이해 당사자인 유럽 연합(EU)의 심사 결과입니다. '한국 Big 2의 기업결합의 결과로 EU의 해운 및 기자재 업체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는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만일 피해가 없다고 판단된다면 '무조건 승인', 있다고 판단된다면 독과점을 완화시킬 보완 조치(Remedy)를 요구하는 형태로 심사가 마무리될 것으로 봅니다. 심사가 늦어지고 있으나 올해 안에는 어떻게든 결론이 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기업 결합이 완료되면, 그 결과는 아마도 1970년대 초반부터 본격 시작된 약 50년의 한국 조선 산업 역사상 가장 큰 구조의 변화가 될 것입니다. 한국 1, 2위이자 세계 1, 2위인 두 조선소의 결합으로 수주 잔량, 생산 능력 기준 가장 큰 Super Big 1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일부 언론에서 '20년에 진행된 중국 양대 조선소의 기업결합을 '매출 90조 원 대의 세계 최대 조선 기업의 탄생'으로 소개한 것을 보신 분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만일 그 기사를 보셨다면 "뭔 소리냐, 통합한 중국 조선소가 젤 크다던데..."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사실 90조 원이라면 우리나라 Big 3의 역대 최대 매출 총 약 1.5배에 가까운 엄청난 규모의 매출입니다. 그러나 외신에서 보도한 중국 통합 조선 그룹의 매출 규모는 정확한 팩트에 근거한 내용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중국은 한국과 달리 증시에 상장된 회사를 제외하고는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회계 결산을 투명하게 외부에 공개하는 의무가 없습니다. 그래서 국영기업 전체의 규모는 알 수가 없고 일부 상장된 자회사의 규모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도 직업상 조사를 통해 중국 주요 국영 조선소의 '실제적 총매출 규모'를 파악해 보고자 수차례 노력을 해보았지만 결국 실패를 하였습니다. 혹시나 "내부인은 알 수 있지 않을까?"싶어 정보 수집을 시도하였지만 "나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라는 허무한 답만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소위 '90조 원 매출 규모의 비밀'에 대해 이렇게 추측합니다. 20개가 넘는 조선소들 포함 150여 개에 달하는 모든 자회사, 손자회사의 매출을 '내부 거래 정리 없이' 중복 집계한 것이 아닐까?라고 말이죠. 중국의 조선 그룹은 국영기업의 특성상 주요 사업 항목 외에도 조선소 및 주변 인프라 건설을 위한 토목회사, 건설회사 등 비주력 사업을 포함한 수많은 자회사, 손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매출이 내부 거래를 통해 발생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Big 2 체계가 완성이 되면 공급 조정 문제가 바로 해결이 될까요? 아마 Big 2 체계가 되더라도 '공급 능력의 합리적 조절'은 여전한 숙제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해법이 있을까요? 세계가 하나의 시장인 상황에서 경쟁국 혹은 후발 신규 국가들에게 '결정적 기회의 이동'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각 조선소의 '현재 고통'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 걸까요? 이를 위해서는 대형 조선소들의 국내 경쟁을 유지하면서 '초과된 공급 능력을 조절'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많은 다양한 해법이 있겠지만 저에게는 두 가지 정도의 방법이 떠오릅니다.


하나의 방법은 각 조선소의 잉여 설비를 '대형 선박 신조(New Building)'가 아닌 다른 용도로 돌리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공급 용량 조절을 위해서, 플로팅 도크와 같은 '이동과 분리가 가능한 설비'를 '깔끔하게' 해외에 매각 처리하는 것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각 조선소마다 설비 및 공법의 특징은 그 조선소만의 '고유 경쟁력'의 영역입니다. 어떤 조선소는 도크 위주의 생산 방식으로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조선소는 플로팅 도크와 해상 크레인을 이용한 초대형 블록 공법을 이용해 경쟁력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팔 수 있다'는 이유로 그 설비를 매각해 버린다면 '삼손의 머리털'을 뽑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 설비를 해외에 매각하면 전 세계 공급 용량은 그대로인데 우리 것만 줄이는 패착이 될 수 있고, 경쟁국이 이런 '검증된 설비'를 확보하여 경쟁력을 단숨에 높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조선소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잉여 설비는 대부분 '해양 플랜트' 관련 고정 설비들입니다.

그러므로 어차피 잉여 설비의 해외 매각이 불가하다면, 향후 세계 환경 규제 등 '에너지 대전환'의 기조에서 친환경 기술을 선도할 수 있는 유망한 사업 분야로 설비의 '용도를 옮기는 것'이 상책이 될 수 있습니다. '대형 선박의 친환경 개조'의 영역이 생각납니다. 또한, '중소 조선소의 일순간 몰락'으로 중국에 의도치 않게 빼앗겨버린 중소형 종들이 있습니다. 그 중 대형 조선소 건조 시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친환경 고부가가치 분야가 그 후보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상 풍력사업 등 기존의 해양플랜트 사업 역량을 활용한 신규 그린에너지 사업 분야도 대안으로 검토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BWTS, Scrubber 설치 등의 친환경 선박 개조를 전문으로 하는 싱가포르의 케펠 야드 (출처 : Keppel Offshore & Marine Ltd)

두 번째 방법은 공급 능력을 '물리적'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줄이는 방법입니다. 즉, 각 조선소별로 시장에서 이미 증명된 '실력(실적)'을 기반으로 이미 우위에 있는 조선소의 강점을 더욱 강화시켜 불필요한 경쟁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오랜 실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입니다. 어떤 조선소가 시장 점유율에서 특정한 선종에 장기간 강점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조선소의 설비, 원가 경쟁력, 축적된 기술력 심지어는 '문화' 측면에서 다른 회사와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선종에 대해 각 조선소를 특화시키는 것입니다. 즉, 3개 조선소 중 1개를 물리적으로 없애는 방법이 아니라, 각 조선소별로 각각 장점이 증명된 상위 선종의 시장 점유율을 더욱 높이는 방법을 취하는 것입니다. 경쟁력이 이미 있는 조선소가 하위 조선소와의 격차를 더욱 벌려 해당 선종 시장에서 '논리적'으로 1개의 조선소를 없애는 방법입니다.

국제 시장에서 철저하게 금지된 '담합'이라는 행위를 하지 않고서 어떻게 이것을 할 수 있냐고요? 조선소의 치열한 경쟁 체제를 유지하되, 해당 선종에 경쟁력이 있는 상위 조선소의 장점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정책을 가져가는 것이 아이디어의 핵심입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개별 조선소는 현재 경쟁력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는 선종에 집중하여 초격차 전략을 시행해야 합니다. 기술을 선도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해당 선종의 차별화된 설비와 인력을 필사적으로 유지, 육성해야 합니다. 또한 해당 선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야드의 잉여 설비를 적극적으로 용도 변경하여, R&D 인프라 및 공급망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해야 합니다.

또한 국가도 이와 같은 기조에서의 정책적 지원과 규제책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근책으로는 먼저 각 조선소 권역(지역)에 특화된 선종이 발전할 수 있도록 특화 인력 양성 및 관련 후방 클러스터 육성 등의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수출신용기관(ECA)에서 조선소의 특화 선종을 발주하는 선주에 한정하여 금융 지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채찍은 특정 선종에 대해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조선소가 시장을 교란할 마음을 '함부로' 품지 못하도록 하는 제약 정도가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RG 발급에 차등을 두는 것입니다. 국책 은행이나 수출신용기관에서 RG 발급  선종 경쟁력 관련 '상대적' 심사 기준을 제정하여 하위 조선소에 대한 RG 발급을 제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또한 RG 한도 및 수수료율 측면에서 상위 조선소와 차등을 두는 정책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각 조선소가 이미 강점을 가지고 있는 특정 선종, 선형에 특화되어 발전된다면, 자연스럽게 공급이 조정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두 번째 방법은 통합이 된 후의 조선 그룹 안에서도 비슷한 방안이 검토가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룹 하부 조선소간의 치열한 경쟁 체제를 통해 개별 조선소의 고유 경쟁력과 장점이 유지되고, 고객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중국 국영 조선 그룹들은 회사의 특성상 하나의 중앙 조직에서 제품 설계 및 R&D를 수행하여 '표준 선박'을 만들고 이를 하부 조선소에 뿌려 단순히 생산을 하게 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부 수십 개에 달하는 개별 조선소마다의 차별화를 추진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인재들이 개별 조선소보다는 중앙 조직에 관심이 많고 상해, 북경 등 대도시를 떠나기도 꺼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별 조선소마다의 장점을 살리거나 단점을 보완하는 연구나 기술개발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생산성 개선이라든지 관리의 고도화가 어렵고, 고객의 다양한 요구사항도 들어주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중국 조선소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는 이유'이며, 한국 조선소와의 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조선 산업의 '공급 조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하나 더 고민해 볼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국제 시장 경쟁에서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의 해결입니다. 국내 대형 조선소의 공급 조절 문제가 앞서 말씀드린 사항들을 고려하여 잘 해결된다 하더라도, 한국 조선 산업이 가진 근본적인 핸디캡이 보완되지 않는다면 언제고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리다시피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인 중국은 국영 조선소가 메인일 뿐 아니라 강력한 선박 리스금융 회사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은 대부분 해운업과 수직 계열화되어있으며 종합 상사 및 금융권의 지원을 바탕으로 조선소를 끌어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경쟁 상대가 아니긴 하지만 싱가포르도, 주요 조선소의 지분의 약 50%를 국부펀드가 소유하고 있는 독특한 구조의 지원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싱가포르 조선 산업은 일부 분야에 한해 싼 외국인 노동력을 '국제 시장가'로 고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특혜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한국에서 중국과 같은 지원을 받기는 어렵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일본이나 싱가포르 모델은 중장기적으로 한번 벤치마킹을 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싱가포르 모델은, 민영화 기조는 유지하되 조선소에 일정 부분 국책 투자기관이 투자를 하고 대주주로서 경영진과 기업에 대한 적극적 감시자의 역할을 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입니다. 국가적 산업을 지키면서 경영적 리스크를 방지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조선 산업은 세계 경제의 부침, 에너지 사용량 증감, 환율의 변화 등 변화하는 국제 경제 상황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인 만큼 안정적 운영 기조가 필요한 산업입니다. 흑자가 많이 나는 상황에서도 무분별한 사업 확장보다는 불황기를 대비하는 경영이 필요하고, 불황일 때는 반대로 원가보다 낮아진 시장가임에도 불구하고 수주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산업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소는 적어도 RG 걱정은 하지 않고 영업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책 투자기관이 조선소의 주주 역할을 하면서 이러한 안정적 운영에 일조를 하고 리스크 방지를 위해 공익적인 감시체계를 가동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신, 조선소는 고용, 지역사회 동반 발전 등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적정 수준의 배당 정책을 시행하여 투자자인 국민에게 보답하는 정책을 시행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윈윈 체계를 만들면 국제 시장에서의 한국 조선소의 경쟁력도 당연히 지금보다 훨씬 강화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저는 한국 조선 산업의 미래가 여러분들이 지켜보시는 향후 몇 년 간의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해당사자들인 '조선인'의 노력뿐 아니라 이 글을 보시는 일반 독자분들의 이해와 지지가 큰 힘이 되어 앞으로의 한국 조선산업의 긍정적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음 편은 여태까지의 '과거를 반추'해보는 시리즈와 달리 조선 산업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해보고자 합니다. 한국 조선 산업 미래 모습은 어떨까요? 전 세계적 메가 트렌드인 '환경 문제 해결 이슈'와 '에너지 대전환'의 큰 파도가 몰려오는데 한국 조선 산업은 그 파도에 부서지는 모래성이 될까요? 아니면, 파도를 즐기는 써퍼가 될 수 있을까요? 다음 편도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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