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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콜라주 May 09. 2021

가족은 왜 싸우는가?

싸워서 가족인가? 가족이니까 싸우나?

필자는 중년의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제법 쿨내나는 성격을 가졌다. 사회생활을 할 때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에 그다지 거슬리는 경우가 없다. 성격이 유별난 사람을 보면 '어릴 때 뭔 일을 겪었나? 아님 무슨 사연이 있겠지..' 싶어 넘기는 편이고, 그 모습 중에 장점이 하나라도 보이면 오히려 그것을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조금 멀리하는 사람들과도 대체로 잘 지내는 편이고, 요즘  'MZ세대와의 소통'이 문제라는 둥, '90년대생이 몰려온다'며 야단을 떠는 게 그렇게 크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퇴근 후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마치 집에 들어오는 현관문이 클라크 켄트가 드나들던 공중전화 부스인 것처럼 변신을 한다. 히어로는 아니다. 입에는 '잔소리 기관총'을 장착하고, 가슴팍에는 언제 폭발할지 모를 '분노 수류탄'을 대롱대롱 매달고 있는 꼰대 빌런으로의 변신.


아, 쫌! 왜 이런 거까지 뭐라 그래, 아빠랑은 정말 얘기가 안 통해!!!

아니 여보,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요! 갑자기 그렇게 크게 화를 내면 어떡해!!


요즈음 가족으로부터 종종 듣는 피드백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의 잔소리와 화냄은 대부분 가족 간의 다툼의 상황에서 시작이 되었다. 아이들 간의 싸움, 사춘기에 접어든 첫째의 행동에 대한 불만, 아내의 말다툼 등등.


왜! 가족은 이렇게 끊임없이 다투는가? 또 왜! 나는 타인에게 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크기의 분노를 가족들에게 쉽게 표출하는가? 그리고 왜! 나는 밖에서는 신경도 안쓸 작은 일로 가족에게 잔소리를 하는가?


언뜻 '나만 그러나? 다들 그러지 않나?'라고 생각하고 넘기려다가도, 막상 '왜 그렇지?'라고 생각하면 딱히 손에 잡히는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 오묘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와잉놀이'가 필요한 순간.


자료를 조사해 보았다.


몇 분 되지 않아 아래와 같은 글을 발견하였다. '형제자매간의 지속적 싸움'의 이유를 설명한 내용이다.

프로이트는 틀렸고 셰익스피어가 옳았다.

‘태어나면서부터 형제자매는 부모의 애정을 향한 끊임없는 갈등에 사로잡힌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은 학자들과 부모들 모두에게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이론은 완벽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형제자매간의 경쟁은 부모의 사랑을 둘러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보다는 '리어왕 이야기'에 더 가깝다.

영국과 미국의 선도적인 학자들로 구성된 한 연구진은 콜로라도 지역의 형제자매 108쌍에게 정확히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물었다.

부모의 사랑은 맨 꼴찌를 차지했다. 겨우 9%가 부모의 사랑을 말다툼이나 경쟁의 원인으로 꼽았다. 아이들이 서로 싸우는 가장 보편적인 이유는 고너릴과 리건이 파멸당한 이유와 같았다. 즉 성 안의 장난감을 나눠 가지는 문제였다. 큰 아이의 78%, 작은 아이의 75%가 물리적인 소유물을 나누는 문제 혹은 소유권을 주장하는 문제로 대부분의 싸움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포 브론슨 & 애쉴리 메리먼 의 "양육쇼크" 중에서]

바로 이해가 되는 이유이다. 가족은 한정된 공간을 공유하며 한정된 자원을 함께 소비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니 '공간과 소유물'을 나누는 문제로 인한 갈등이 생기기 쉽다. 형제자매뿐 아니라 가족 전체로 확장해보아도 크게 무리될 것이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공간을 공유하고 한정된 자원을 사용하는 관계가 과연 가족밖에 없을까? 간단히 생각해보아도 24시간 중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직장 동료들이 있다. 그렇다면, 가족 못지않게 동료들과도 그런 비슷한 갈등이 존재해야 하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상한데? 뭔가 다른 결정적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사만다 펀치 박사가 지적하듯이 형제자매 관계는 어떤 일이 생겨도 내일 또 볼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별다른 장려책이 없다. 이들은 평생 함께 살아야 하는 종신형 선고를 받은 죄수와 같아서 좋은 행동을 했다고 해서 특별히 감형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굳이 변화할 동기가 없는 것이다.  

[포 브론슨 & 애쉴리 메리먼 의 "양육쇼크" 중에서]

또 다른 글에서도 비슷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는 강력한 유대관계가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공격을 해도 관계가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의 경우에는 간접적으로 또는 수동적으로 공격성을 부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즉,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보라 사우스 리차드슨 교수의 연구를 소개한 사이언스타임즈의 관련기사 ]


즉, '관계가 쉽게 안 깨질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어차피 평생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공격적인 분노와 짜증을 쉽게 표출하고 상황을 좋게 만드려고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참 난감한 결론이다. 가족이 싸우는 결정적인 이유는 결국, '가족이기 때문에'이었다.


한편, 분내고 싸우는 것과 별개로 잔소리라는 또 다른 장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실 나는, 요즘 들어 부쩍 아이들에게 잔소리가 많아진 이유를 이미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만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이전의 내가 알았더라면..."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녀를 보면 내 모습이 보인다.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어느덧 십대에 접어든 자녀들의 모습은 참으로 신기하게도 내 장점, 단점 그리고 아내의 장점, 단점이 복합적으로 발현되고 있었다. 어쩔 때는 정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아니, 이게 버릇이 아니고, 유전이라고?'


이것을 깨달은 시점부터 부쩍 잔소리가 늘었다. 마치 '30년 전 나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의 글귀 하나하나를 뜯어 내 우리 아이들에게 부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계속 그렇게 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걸?", "그거 너무 신경 쓰지 마라, 그런 거 다 소용없어", "그거 말고 이런 걸 좀 하렴"...



원인을 알고 나니 길이 어렴풋이 보인다.


먼저, 가족 간에는 항상 공간과 물질을 공유하고 나누어야 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필요할 때' 만나 '네 것도 내 것도 아닌 공간'에서 '각자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타인과의 관계와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친구가 좋고 가족이 짜증 나는 게 아니라, 친구도 가족이 되면 짜증 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내가 어떻게 해도 가족 간의 관계는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 굉장히 취약한 가정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은 단지 '혈연관계' 뿐일 것이다. 가족이란 관계는 서로 벗어날 수 없는 공간적, 시간적 폐쇄성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 상처를 주거나 정도를 벗어나는 일이 반복되어 쌓이게 되면 가족 구성원 누군가에게 가정은 바로 '지옥'이 될 수 있다. '밖에서 안 되는 일'이라면 '안에서도 안 되는 것'이다.


리차드슨 교수의 연구팀이 밝힌 '일상적인 공격성'에 대한 아래의 이야기는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연구팀은 이러한 공격은 모두 대체로 잘 아는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밝혔다.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상대는 우리가 대체로 잘 아는 사람이며, 결국 우리가 두려움을 느껴야 할 상대는 낯선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관계가 유지될 것이라는 '막연한 안심'으로 가족들에게 쏟아내는 분노와 화는 멈춰야 하겠다. 사랑하는 자녀를 마치 쇠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감형 없는 종신형'을 받고 살아가는 죄수처럼 만들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내 밥그릇을 호시탐탐 노리는 또 다른 종신형 죄수를 증오하며, 전혀 바뀔 가능성이 없는 간수들이 지겹도록 떠드는 똑같은 지적을 견디며 오로지 탈옥을 꿈꾸는 죄수...


나에게 쓰는 편지도 정확한 주소로 보내야겠다. 비슷해 보이는 엉뚱한 사람에게 부치지 말고. "도대체 누가 자꾸 이런 편지를 부치는 거야? 왜 이런 얘기를 나한테 하는 거냐고!!!"


오늘의 이 작은 깨달음으로 꼰대 빌런이 더 이상 우리 집에 나타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현관문을 미닫이로 바꿔야 하나?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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