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수록작 장은진의 [울어본다]를 읽고
장은진의 [울어본다]에서 여자는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물고 냉장고 옆에 이불을 펴고 눕는다. 여자는 유년기 때 얼음을 만들어 내는 냉장고가 너무 신비스러웠다. 친구 집에 놀려 갔다가 맛 본 얼음의 맛을 잊을 수 없었다. 여자에게 얼음은 여름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겨울에 처마 끝에 달린 고드름, 추위에 떨면서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드디어 집에 냉장고가 생겼지만 그 냉장고는 냉동실이 고장 난, 얼음을 만들어 낼 수 없는 냉장고였다. 여자의 엄마는 공장으로 일을 하러 나가기 시작하고 첫 월급으로 냉장고를 샀다. 그리고 큰 냉장고가 어울리지 않는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 가기 위해 야근을 하다가 안전사고로 죽게 된다. 여자에게 냉장고는 어머니와 같았다. 여자가 독립했을 때 아버지는 원룸에 어울리지 않는 큰 냉장고를 선물한다. 그렇게 어머니의 냉장고가 아닌 여자의 냉장고가 생겼다. 그렇게 냉장고가 내는 소리는 여자와 같이 우는 소리 같다.
발췌 p260
< 밤이 되면 여자는 자주 외롭다고 느낀다. 가끔은 ‘외롭다’가 ‘괴롭다’로 바뀐다. 고독은 입구만 있고 출구는 없는 것 같다. 그러니 버틸 용기가 없다면 되도록 물을 열고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1976년생인 작가 장은진, 그녀의 소설을 처음 접했다. 그리고 내 유년기의 냉장고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6학년 여름이 되었을 때, 학교 친구들은 물통에 물을 얼려왔다. 나는 1L가 넘을 것 같은 커다란 물통에 보리차를 얼려 온 친구가 참 부러웠다. 그때까지 우리 단칸방엔 냉장고가 없었다. 나도 얼린 물이 든 물통을 가지고 가서 쉬는 시간마다 먹고 싶었다. 그때, 주인 할머니 집엔 냉장고가 있었고 할머니는 거기에 내 조그만 물통을 넣어서 얼리게 해 주셨다. 그렇게 얼린 물통을 들고 학교에 간 날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쉬는 시간에 자랑스럽게 물통을 꺼내서 먹던 얼음물, 그러나 맛있게 먹는 척했지만, 처음 산 물통을 세제를 넣고 씻고 깨끗이 헹구지 않아서인지 물에서는 주방세제 맛이 났다. 그래도 난 표시 내지 않고 그 물을 아주 맛있게 먹는 척, 아니 마셨다. 그렇게 주인 할머니의 냉장고를 빌려 쓰다가 드디어 우리 단칸방에도 냉장고가 생겼다. 그 작은 냉장고는 거의 20년 동안, 나와 아버지와 같이 했다.
커다란 양문형 냉장고와 스탠드 김치 냉장고를 가지고 살던 나는 다시 작은 냉장고로 돌아왔다.
자기 마음대로 야채와 과일을 얼리는 변덕스러운 내 냉장고. 그 냉장고 안에서 술을 꺼내 폭음을 하고 소설처럼 냉장고 문을 연 채로 음식을 꺼내서 폭식을 하기도 했다. 차가운 어묵을 입에 넣고 씹고 맛살과 굽지 않은 햄을 우적우적 씹으면서 술을 마시던 기간이 있었다.
별거 3년을 하고, 드디어 지난 6월 말에 법원에 이혼 서류를 접수했다. 만나서 상담을 받지도 이혼을 해주지도 않는 그였다. 드디어 이혼 서류를 접수하고 이제 10월 말이면 난 서류상으로도 이혼녀가 된다. 이혼 서류를 넣고 집에 온 날, 난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 딸이랑 집을 나와서, 월세 20만 원짜리 좁은 집에서 자립을 시작했다. 그가 조금만 내 말을 들어준다면, 그가 했던 폭력과 폭언에 대해 미안하다고 해 준다면 난 그에게 돌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말을 다르게 했을 수도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3년 전 나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난 버려도 아깝지 않을 가장 저렴한 냉장고( 이 냉장고는 지금도 얼리지 말아야 할 야채와 과일을 얼리고 있다.그러나 물병을 눕혀서 냉장고 벽에 붙여 두면 절묘하게 얼음 반, 물 반을 만들어낸다 )와 중국산 6kg짜리 세탁기를 샀다. 플라스틱 판 위에 올린 접이식 매트리스, 그렇게 3년을 잠시 머무는 간이역 같은 공간에서 살았다. 그동안 더 넓은 전셋집으로 이사도 했지만 내 물건은 버려도 아깝지 않은 것뿐이다. 그 물건들에서 3년 전의 내 마음이, 어쩌면 이혼을 완료하기 전까지 계속되고 있는 내 마음이 느껴진다.
술을 자제하고 집에서 채식을 하고 있는 요즘 나도 내 냉장고도 다이어트 중이다. 내 냉장고 안에는 사과, 양배추, 오이, 곤약면, 아몬드 브리즈, 그리고 찐 옥수수, 고구마 정도가 들어 있다. 그리고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끓여서 식힌 옥수수차도.
버려도 아깝지 않던 냉장고였지만 이제는 너무 뜨거워지면 걱정되는 내 냉장고. 그리고 망가져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던, 아니 망가지고 싶었던 나도 이제 걱정해 주고 있다. 아껴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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