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어머니의 나라> & 영화<안토니아스 라인>

by 재나

<어머니의 나라>를 읽으면서 영화<안토니아스 라인>이 겹쳐졌다.


영화<안토니아스 라인>는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속에 영화평론이 실린 것을 보고 영화를 보게 되었다.


모계사회에 대한 묘사와 영상미, 개성 있는 캐릭터들에 의해 매혹당한 영화였다.


p91 나는 여성들의 세상에서 환영받은 여성이라는 점에서, 스스로가 진정으로 수용되는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여성이 중심이 된 이 세계에서는 누구도 내가 혼자서 즐겁게 돌아다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쒀인들은 여남을 불문하고 강인한 여성의 존재에 익숙해져 있다. 모두 자기 집에서 그런 여성을 보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쒀 친구들 역시 여성을 기리는 이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것을 내가 얼마나 편안하게 느끼는지 알고 있는 듯하다. 모쒀인들과 나 사이에는 서로가 같은 마음이라는 이해가 형성되어 있다. (어머니의 나라, 추 와이홍 지음, 이민경 옮김, 흐름, 2018, 발췌 이하 동일)

p167 모쒀 여인은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이들의 자신감은 공격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고,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 자신감이다.

<어머니의 나라>는 중국에서 모계사회를 이어가고 있는 모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쒀족은 여자를 중심으로 가족을 이루고 결혼이라는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이 임신하고 출산한 아이들이 가족 구성원이 된다. 세이세이라고 연애와 비슷한 관계를 가지지만 서로를 독점하지는 않는다.

여성을 환대하는 모쒀족 일원으로 여성은 자신감 있고 당당하다. 자신의 존재를 수용해주는 사회에서 자란 사람들이어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문자가 없는 모쒀족 사회에도 중국 의무교육에 의해 만다린어를 젊은 세대들은 습득하게 되어 남성 가부장제의 언어 속의 관계어를 통해, 그리고 관광산업으로 인한 자본이 유입되면서 모쒀 사회도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p187 여성은 상대에게서 나와 상관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자질을 찾아내는 방식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상대와 일시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면 더더욱 그랬다. 여성들이 남성의 외모만 따진다면 나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는, 기존 사회에 만연한 인식과는 대조적으로 모쒀 여성들은 미모와 건장함을 모든 것보다 우선에 놓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기꺼이 입증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p235 모계 혈통의 계보가 이어지는 사회에서는 아이를 만드는 데 일조한 남성이 누구인지는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p256 성적 쾌락은 자연스럽고 좋은 것인데, 사회는 인구의 절반에게는 그것을 즐길 자유를 허하고 나머지 절반에게서는 빼앗으려 든다. 그래서는 안 된다.




마들렌 고리스 감독의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는 4대에 걸친 모계 가족의 삶을 그린 페미니즘적 서사 드라마라고 소개되어 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안토니아는 딸 다니엘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남성적, 종교적, 권위적인 마을에서 안토니아는 스스로를 지키면서 살아간다. “우리 아들에게 엄마가 필요해”라고 청혼하는 이웃 남자에게 자신은 아들이 필요 없다고 말하고 그들 가족과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 유대를 시작한다.

아이가 갖고 싶다는 딸을 위해 도시로 나가서 딸의 임신을 돕는다. 딸 다니엘에게 아버지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아이란 것이 중요할 뿐. 그리고 다니엘은 딸 테레사의 담임선생과 사랑에 빠진다.(자연스럽게 동성애가 묘사된다).


테레사는 어릴 때부터 신의 존재를 고민하는 신동으로 굽은 손가락(은둔학자, 철학자)과 정신적 교류를 나눈다. 테레사는 남자 친구와의 사이에서 사라를 낳고 결혼은 거부하지만 같이 살아간다. 영화는 사라의 내레이션으로 전개된다.

이 영화에는 흥미로운 장면들이 많다.


서로 다른 종교 때문에 사랑할 수 없었던 마돈나와 목사는 죽어서 안토니아에 의해 같은 무덤에 묻힌다.


안토니아가 씨를 뿌리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여성이 아이를 잉태하듯 자연에 씨를 뿌리는 여성의 이미지. 남녀가 어울려 농사를 짓고 보수하는 일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자가 주방 일을 하고 남자가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여자와 남자가 같이 농사를 짓는 장면이 묘사된다. 여기에선 남녀 역할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커플의 섹스 장면들이 축제처럼 묘사된다.


테레사가 임신한 것을 알고 출산을 고민할 때, 모두들 그녀의 결정을 기다려 준다.( 굽은 손가락은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아이에게 못쓸 짓이라면서 출산을 끝까지 반대한다. 테레사의 결정을 기다려 준다는 것은 여성이 낙태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런 고민 속에서 출생한 아이는 환영받는 아이이다.)

영화 속에 녹아있는 많은 이야기들, 종교, 동성애, 출산, 결혼제도, 가족 내 성폭력, 미성년 성폭력, 철학, 탄생과 죽음, 생성과 소멸. 나의 능력으론 글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안토니아가 사라에게 하는 말


“완전히 죽는 것은 없단다. 항상 무언가는 남기게 되어있지. 또 새로운 것이 생겨나기도 하고 그렇게 생명이 시작되지.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모르고 왜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왜요?”


“생명체는 살아가길 원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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