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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나 Jan 14. 2020

아무튼, 비건

- 육식의 성정치

 

p42 어떤 문제를 자각했을 때 “최소한 나라도 저 문제에 기여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다소 소심하게나마 변화를 믿는 사람들. 내가 매일 세 번 밥상에서, 식당에서, 마트에서 던지는 한 표 한 표가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아는, 그래서 최소한 내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공헌하는 습관은 관두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아무튼, 비건, 김한민, 위고, 2018. , 2018. 이하 동일)


p51 자신을 규정짓는 것에 연연할 필요는 없지만, 규정을 모두 벗어던지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쉬운 길이다. 좋게 보면 자유롭고 유연해 보일지 몰라도, 흔해빠진 무원칙의 편의주의이기도 하다. 나는 나름의 절도가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최소한으로 지키고자 하는 선이 있어야 때때로 나를 돌아보고 점검하는 것도 가능하다.


p59 그 행복은 신체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진실을 보고 깨닫고, 내가 추구하는 가치들과 나의 일상이 일치되어 거슬림 없이 살 수 있다는 것, 하루 세 끼에 죄의식이나 찜찜함이 없다는 것, 최소한 의식적/직접적으로는 타자의 고통에 기여하고 있지 않음을 아는 것, 음식에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알게 된 것, 이것들이 주는 매일의 보람과 기쁨, 깨끗한 느낌은 결코 작지 않다.


p106 “공장식 축산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 중 하나”라는 유발 하라리의 생각에 동감하는 지식인도 적지 않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지식인조차 축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자각이 없는 건, 문제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무식하거나 근시안적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함의는 환경과 동물권뿐만 아니라 빈곤, 인권, 노동권 등 환경 정의의 문제에까지 미치는데 말이다.


p149 오히려 고통의 전후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가올 일을 예측하지 못하는 동물들이 인간보다 더 심한 고통을 느낀다는 시각도 있다.     



 

 딸이 고3 때, 학교에서 먹는 급식을 제외하고 윤리적 채식(페스코 베지테리언 pesco-vegetarian)을 하겠다고 했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고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많은 딸이었다. 고기를 좋아하고 야채를 싫어하던 딸이 채식을 생활에서 실천하겠다는 것이 좀 놀라웠다. 내 기준에서 번거로운 딸의 선택을 받아들이면서도 같이 식사를 하기엔 불편한 점이 많았다. 외식을 하려고 해도 갈 식당이 마땅치 않았고 집에서 해 먹는 식사도 고기를 제외하니 두부, 생선, 고구마, 계란 위주의 단조로운 식단이 되었다. 아니 고기가 없어서 단조롭다는 편견이 드는 식단이었다. 그냥 고기 대신 계란을 많이 먹는 식단이었다. 그런 딸을 보면서 채식은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육식 위주의 음식문화 속에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고 대인관계를 맺는지로 확대되는 것 같았다. 채식을 한다고 알리면 당연히 부딪치게 되는 편견들. 단순히 채식이 아니라 복잡한 사회 관계도와 얽혀 있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대학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화장품이며 가방, 옷을 사려고 해도 부딪치는 것이 많았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을 사려고 하니 선택의 폭은 좁아지고 가격을 올라갔다. 가죽 아닌 지갑이 있냐고 백화점 직원에게 물으니 동네 팬시점에 가서 지갑을 사라고 했다. 딸이랑 같이 밥을 먹고 쇼핑을 하면서 불편했다. 불편을 선택하는 딸이 나에겐 불만이고 불편했다. 딸은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타인에게 채식을 알리고 실천하기가 까다로운 사람으로 낙인찍히기가 두렵다면서 채식을 포기했다. 그렇게 나도 채식 생활에서 멀어졌다.     









그러다 작년에 <육식의 성정치>를 읽었다


p193 가부장제에 관한 페미니스트적 해석을 통해 우리는 고기 이야기에서 동물이 맞닥트린 상황이 전통적 가부장제에서 여성이 직면한 상황하고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육식의 성정치, 캐럴 제이 애덤스, 이매진, 2018)          


 




 <육식의 성정치>을 읽고 채식을, 혼자 먹는 식사는 채식을 실천했다(클로짓 closet 비건). 계란도 제한했다. 그러나 밖에서, 회식자리에서 외식에서는 음식을 제한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말할 용기도 없었고 괜히 까다로운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싫었다. 그렇게 느슨한, 기준이 불분명한 채식을 하니, 점점 아무거나 먹고 있었다. 채식을 잘 실천하면 몸도 가볍고 화장실에 가서도 기분이 좋았다. 전 날, 고기를 먹은 날에는 몸도 무겁고 화장실에 가면 힘들었다. 그리고 의식하고 있는데 실천하지 못하니 좌책감만 커져갔다.      



 2020년에 선물로 받은 <아무튼, 비건>을 읽고 내가 가진 의문을 많이 해소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준을 세웠다. 이제부터 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vegetarian)이다. 닭고기를 포함한 육류는 먹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에게 알리고 타인과 먹는 식사에서도 고기는 먹지 않는다. 외식 상황에서는 어패류는 허용한다. 난류도. 하지만 집에서는 어류도 제한한다. 계란을 의식적으로 먹지는 않지만 함유된 음식들이 많으니 계란은 허용한다. 이렇게 기준을 정하고 실천하기로 했다.


 아들은 만나서 이제부터 엄마는 채식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점심으로 나는 청국장을 아들은 뚝배기 불고기를 먹었다.  정기 러닝에 나가서 지인에게 채식을 알렸다. 지인에게 채식 결심에 대해 말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의식하고 뒤따라 나온 말. “내가 채식하는 것이 미안할 일은 아니지.” 그런데도 미안하다는 말이 자동으로 나오는 나를 점검했다. 앞으로 배려해 주는 사람과의 식사에서는 선택지가 많이 좁아질 것이다. 나를 배려하는 사람과는 그런 식사를 할 것이고 아닌 장소에서는 내가 알아서 골라서 먹어야 할 것이다.


p144 성차별, 인종차별, 종차별 모두 피지배 대상은 달라도, 억압을 작동시키는 원리가 섬뜩할 정도로 닮았다. 그래서 최초의 인종차별 철폐 주의자 중 많은 이들이 동물보호주의자였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육식의 성정치>의 저자 캐럴 아담스에게 “페미니즘이 이론이라면 채식주의는 실천이다. (아무튼, 비건, 김한민, 위고,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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