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나 Jan 20. 2020

여행의 이유

& 이향규 <후아유>

 김영하의 <여행을 이유>를 읽으면서 책장을 덮었다 폈다 반복했다. 과거가 떠올라서 글을 쓰다 다시 책을 펴고 읽고 덮고를. 

 김영하 작가가 [알쓸신잡]에 나와서 더 유명해지고(그는 원래 유명한 작가였지만. 난 그의 팟캐스트 팬이었다), 그의 책도 더 많이 읽히면서 반대로 난 그의 책을 사지도 읽지 않았다. 베스터셀러를 사지 않는다는 나만의 고집으로. 잘 안 팔리는 책을 사고, 읽고 싶은 베스터셀러는 도서관에서 빌려 본다는 고집으로.  그리고 <여행의 이유>는 도서관에선 항상 대출 중이었고 솔직히 제목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행에서도 즐기지 못하는 나란 인간을 인지하고 인정한 후론 여행을 가기보다는 혼자서 책을 읽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고 일을 줄이면서 여행을 갈 여유 자금이 없기도 했다. 책을 읽고 당장 여행이 가고 싶으면 어쩌냐란 쓸데없는 걱정도 하면서. 그러다 작은 도서관에서 꼽혀 있는 책을 보고 말았다. '빌리기 힘든 책인데', 덥석 뽑아서 대출했다. 




p196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디에 있더라도 내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p197 인간은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과 대면한다. (중략) 어린 날의 나도 마음속 깊이 안정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흔희 크레용으로 그리는 바로 그런 집, 박공지붕에 굴뚝과 마당이 있는 그런 집에서 오래오래 살면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며 이런저런 일을 같이 겪는 삶. 내가 어디에 사는지, 누구 집 자식인지를 모두가 아는 동네에서, 나도 그들을 그만큼 알면서 성장하는 삶. 그러나 나의 삶은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딴에는 최선을 다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투쟁했을 것이다.

p199 여행 역시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움직이지만 이주나 피난과는 다르다. 여행은 자기 결정으로 한다. 자기 결정은 통제력과 관련이 있다. 여행은 이주와 달리 전 과정을 계획하고 이를 통제할 수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나야 하는 이주자와 자기 결정에 따라 여행하는 자가 보는 풍경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것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주자는 일상을 살아가는 반면 여행자는 정제된 환상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주와 여행의 관계는 현실과 소설의 관계와 같다.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을 이유>을 읽으면서 여행에서 이사로 생각이 이어져 나갔다. 결혼생활 동안 잦은 이사를, 같은 지역이 아닌 타 지역으로 이사를  한 그때의 나와 아이들의 대한 생각이. 그리고 2년 전에 이향규의 <후아유>를 읽고 썼던 글이 떠올랐다. 



후아유 < 이향규 지음,  창비교육, 2018 >


 어울리지 못하는 공간에 머무르는 것, 남이 말 걸어 주기를 기다리는 것, 다른 엄마들끼리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 늘 책의 첫 페이지만 읽는 것, 그래서 서글픈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날마다 플레이그룹을 찾았다. < 후아유 p91 >     


 첫째 아이는 초등학교를 대구에서 입학해서 전라도에서 다시 대구로, 경기도를 거쳐 중학교를 다시 대구에서, 고등학교는 이 지역에서 입학했다. 그동안 둘째 아이도 초등학교를 지역을 넘나들면서 3번을 전학해야 했다. 첫째 아이는 전라도, 경기도에서는 대구 사투리를 쓰는 아이였고, 경상도에선 서울말을 쓰는 아이였다. 경기도권에서 말을 배운 둘째 아이는 경상도에서 서울말을 쓰는 아이였다. 억양은 두 아이를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구별되게 했다. 그런 구별과 시선을 마음은 잊은 듯해도 몸이 기억하는지 첫째 아이는 새로운 아이들과 섞여야 하는 3월만 되면 특별한 이유도 없이 힘들어했다. 


첫째 아이는 한참 또래관계가 중요한 시기인 초등학교 5학년 때 경기도로 전학을 갔다. 창제 시간에 종이접기부를 하겠다고 말하면서 “종이 접기요”라고 말했는데 대구 사투리 억양 때문에 반 아이들이 웃었고 더구나 아무도 첫째 아이랑 종이접기부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집에 와서 속상해하면서 울던 딸을 잊을 수가 없다. 같이 울면서 “엄마가 어떻게든 도와줄게”라는 말밖에 할 수 없던 나도. 대구에서 친구 사귀는 것을 힘들어하던 둘째 아이에 대해 담임선생님과 상담할 때 ‘서울말을 쓰니 아이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이에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 몰랐다. 나에게도 여러 번의 이사는 힘든 일이었다. 더구나 교실에서 많은 시간을 타인과 있어야 했던 아이들에게는 더욱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이사를 하고 나면 내가 빨리 적응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이 빨리 적응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필요하다고 하는 학부모 봉사활동은 다 참여하고 근처 도서관에 다니고 박물관에서 체험을 하며 그 지역과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놀이터에 나가서 무리 지어 있는 엄마들에게 말도 걸어 보고 학교 모임은 꼭 참여하고 엄마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그러나 이미 그들만의 관계가 다 형성되어 있는, 아쉬울 게 없는 엄마들 무리에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들 아빠는 이사한 곳에서 자기가 속한 사회적 공간이 있는 사람이었고 항상 바빴고 삼사일 만에 집에 와서 자고 다시 출근해야만 했다.     

 

 4년 전, 이 지역으로 이사 왔을 때는 여러 번의 이사와 다시 이사 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어떤 일은 하면 할수록 스킬이 늘어서 잘하는 게 아니라 두려워지는 일이 있다. 이사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그런 일이었다. 그리고 언제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지, 아이들 아빠는 무언가 안 맞으면 또 지역을 바꿔가며 직장을 옮길 것인지, 아이들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나에 대한 것, 무엇 하나도 계획을 세우거나 미래를 생각할 수 없었다.


 주위에 아이를 같이 키우는 든든한 이웃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웠다. 아이들도 같이 자라고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이 필요했다. 그러나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경기도에서 다시 아이들 아빠가 타 지역으로 직장을 옮겼을 때 나는 경기도에서 아이들과 있겠다고 했다. 그때 전남편은 내가 변했다고, 아이들만 생각한다고, 이혼하자고 했다. 결혼생활 동안 가장 힘든 시간들이었다. 아이들 아빠는 230km를 운전해서 가서 기다려도 나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때 나는 미친 여자 같이 방황했고 그 사람으로 인해 존재했던 내 존재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경기도에서 혼자 이사를 결정하고 이삿짐센터 직원이 이삿짐을 싸는 걸 보고 아파트 주인과 전세금을 정리하고 아이들 둘을 차 뒤에 태우고 밤 9시가 넘어 대구로 내려오면서 지나와야 했던 그 고속도로는 내 인생에서 가장 쓸쓸한 고속도로였고 그 밤은 깜깜한 고속도로처럼  막막한 밤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것에 계획하지 말자, 욕심내지 말자, 그냥 살자.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런 시간들도 나를 바꾸지는 못했나 보다. 3년 후에 결국은 전남편과 헤어지게 되었으니.    

  

 새로운 지역에서 나는 둥글게 손을 잡고 있는 사람들 속으로 어떻게든 그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원을 기웃거리는 사람이었다. 그 손들을 끊고 들어 갈 수는 없어서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이 잡은 손 사이의 공간으로 들어가 보려는 기웃거리고 어떻게든 섞여 보려고 노력하는 삶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어떤 집단에도 들어가지 못한 경계에 있던 사람이었다. 지금도 나는 경계에서 방황하고 있다. 

(2018년 6월 10일에 쓴 글)     



 <여행을 이유>의 제목 때문에 읽지 않았는데(제목 때문에 읽은 분들도 많겠지만), 김영하 작가의 글을 좋아할 수밖에 없구나 하고 다시 느낀 책이었다. 또 책을 읽으면서 소환된 기억으로 2년 전에 쓴 글을 읽으면서 변한 나를 알게 된다. 아직도 경계에서 방황하고 있지만 올해는 경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혼자가 편하다고, 혼자가 좋다고 생각하던 못난 나에서, 누군가가 손 내밀어주기만을 기다리던 나에서,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흔다섯 살의 이혼녀, 달리는 사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으로 나를 드러내고 이런 삶도 있다고, 나처럼 경계에서 주저하는 이들의 손을 잡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튼, 비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