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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나 Feb 26. 2020

권여선 <아직 멀었다는 말>



<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문학동네, 2020 -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를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권여선이라고 말한다. 그의 단편 <이모>를 읽고 다르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행동했다. 그의 신간 소식을 들었다. 집중해서 읽고 싶어서 미루다 읽었다. 읽으면서 힘이 부쳤다. 소설가 정찬의 글을 읽기 전에 밥을 먹는다는 정희진의 말처럼 권여선의 글을 읽으면서 두 손으로 여러 번 얼굴을 감싸 속에서 올라오는 아픔과 찌릿한 감각을, 모르는 영역의 감각과 마주했다.   

   

<손톱>은 글보다 팟캐스트 라디오 문학관으로 먼저 들었다. 권여선의 글이라 반가운 맘에 들었다가 하루 종일 소설의 이야기에서, 소희에게서 벗어나지 못해서, 폐부를 찌르는 느낌에 안절부절못했다.

 

p73 이십만 원으로 한 달을…… 치약도 휴지도 생리대로 아껴 쓰고, 아침엔 우유와 시리얼, 밤엔 호빵이나 식빵, 계란 한 판 사서 한 달을 먹고, 일주일에 한 번 제일 싼 찌개용 돼지고기를 사고, 늘 두부와 콩나물, 김치를 아껴 먹고 깍두기를 담가 먹으며 친구도 못 만나고 친구도 못 만들고.

    

p73 손톱 없어도 된다. 엄마 없이도 살았고 언니 없이도 사는데 그깟 손톱 없어도 된다. 뭘, 됐다고, 안 와도 된다고,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오지 말라고. 소희는 혹에 끈끈하게 고인 약과 피와 진물을 유리에 꾹 눌러 비비고 쏜살같이 달아났다. 달면서 소희 마음속에도 흉한 혹이 돋아났다. 다신 안 와. 다신 안 온다고. 언니… 안 온다고. 언니… 그년 안 와도 된다고. 영영 오지 말라고.

    

<너머>의 N은 어머니의 병원비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임용고시를 포기하고 기간제 교사로 들어간다. 거기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만 그녀가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음을 안다. 한 달의 병원비를 위해서 그녀도 부당한 대우를 받아들일 것이다.


<친구>의 해옥과 아들은 너무 선해서, 무지해서 가장 아픈 캐릭터다. 해옥에겐 신이 있고 그분의 의지로 행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해옥은, 의심도 하지 못하는 해옥과 아들은 불합리를 인지도 못하고 받아들이면서 살 것이다. 아프다.


<희박한 마음>에 나오는 데런과 디엔는 평생 ‘겁우기’로 살았다. 동성 연인과의 동거는, 사회적 혐오와 편견의 시선은 그들을 ‘겁우기’로 만들었다.


그에 비해 <모르는 영역>과 <재>는 나이 들고 인생의 어느 시점도 지나가고, 이젠 힘을 빼야 하고, 수술해야 해야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모습. 삶을 그냥 받아들이고 충실해야 하는 순간들. 삶의 모르는 영역을 인정하는 그런 이야기.


p29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에게 왔던 것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고 영영 지울 수도 없으리라고 그는 침울하게 생각했다.


p46 해는 늘 낮달만 만나고, 그러니 해 입장에서 밤에 뜨는 달은 영영 모르는 거지.


p214 그들, 그러니까 그와 제발트는 아직 벌레가 아니고 아무리 황량한 폐허 속에서도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고 찾아낼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아직은 잿빛 세상 속에 끼워 놓을 희미한 의미의 갈피를 지니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게 비록 초록빛 소주병이나 푸른 등을 단 구급차, 붉은 무생채 가닥이나 개미처럼 움직이는 간호사의 실루엣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p221 아무 기댈 곳도 없고 아무 쥘 것도 남지 않은 이제 와서야 그는 비로소 겉돌던 세상의 틀 속에 겨우 들어앉게 된 듯한 느낌이었다. 회오리치던 그의 가르마를 누군가 단정히 잡아준 것만 같았다.

마지막이라고 해봤자 별게 없겠지만, 그래서 더 공허해질지 더 충만해질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저 공기만 가득 둥둥인 그런 상태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느끼고 싶다고 생각했다.


<전갱이의 맛>을 읽고 나만 알 수 있는, 나에게 하는 말을 만들었다. 소설이 너무 생생해서 이야기에서 떠나고 싶을 때, 어린아이처럼 두 손을 눈을 가린다. 눈에 안 보이면 잊을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외면했다 손을 떼고, 다시 돌아온다. 받아들이기 위해 마주하기 위해.

 

p241 사람이란 존재는…… 내가 지금 이걸 느낀다, 하는 걸 나에게 알려 주지 못하면 못 견디는 거지. 어떤 식으로든 내 느낌과 생각을 내게 전달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감각이나 사고 자체도 그 자리에서 질식해버리고 마는 것 같았어.

말을 못 하게 되면서 타인을 향한 말은 그럭저럭 포기가 되는데 나를 향한 말은, 그건 절대 포기가 안 되더라고.


p249 묵언의 시간 속에서는 항상 나만의 말들이 태어난다.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가장 먼저 도달하는 말들이 주는 기쁨을 알게 된 것 오로지 그의 덕분.  




 소희처럼 슬프면서 좋은 것을 봤을 때, 나는 시선을 15도 정도 떨어뜨린다. 세상은 그렇게 봐야만 보이는 진실들이 있다. 정면으로는 볼 수 없는. 시선을 틀었을 때, 얼굴을 기울었을 때에만 보이는 삶을, 자세히 보고 싶다. 거기에 맺힌 이야기를 읽고 싶다.

     

그런 권여선의 소설들을 사랑한다.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작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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