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의 제목을 봤을 때 정말 공감 가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떡볶이라는 단어만으로 군침이 돈다.
좋아하는 뮤지션이자 작가인 요조의 <아무튼 떡볶이> 그런 마음으로 읽었다.
내 기억 속의 첫 떡볶이는 엄마가 떡국떡으로 해 주던 떡볶이. 아빠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일하러 가고 우리가 살던 두 칸짜리 집에 한 방에는 세 식구가 같이 자고 다른 방은 창고처럼 썼다. 창고방엔 외가에서 가져온 떡국떡, 강정 등이 있었다. 구정을 지나고 얼마 안 된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엄마를 기다렸다. 배가 고팠고 엄마는 떡국떡으로 떡볶이를 해 주었다. 맛있었다. 그리고 의아했다. 엄마는 떡국떡으로 이렇게 맛있는 떡볶이를 할 수 있는데, 저 떡들은 마르고 상해 가는데 왜 떡볶이를 해주지 않을까. 이렇게 빨리 만들 수 있고 맛있는데. 내가 기억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엄마 떡볶이.
4학년 때, 이제는 누구 집이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친구 집에 갔다. 그 부엌은 기억이 있다. 시멘트로 만든 아궁이에 연탄불, 거기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떡볶이를 만들었다. 까만색 옛날 프라이팬에 떡과 고춧가루와 설탕, 소금으로 맛을 낸 떡볶이. 굵은 고춧가루와 떡에서 나온 녹말로, 빨간색과 투명한 색이 묘하게 어울려져 있던 떡볶이. 모양은 허술했지만 맛있었다. 그때부터 떡볶이는 내가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가정환경이 비슷한 친구들의 집, 생계 위해 부모 둘 다 집에 없고, 학교를 마치고 시간을 보내야 하는 우리는,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나는 친구를 사귀고 그 애 집에 놀러 가면 떡볶이를 했다. 낯선 부엌들. 방 하나에 초라하게 딸린 낮고 어두운 부엌, 시멘트로 만든 아궁이. 연탄불에서 어떨 때는 냄비에, 어떨 때는 프라이팬에 떡볶이를 만들었다. 내 소울푸드 떡볶이.
한 동안 아이들을 위해 떡볶이를 만들었다. 고추장 떡볶이, 간장 떡볶이, 기름떡볶이, 거기에 어느 날은 토마토, 콩나물, 다양하게 바뀌는 새로운 재료들. 엄마 떡볶이는 맛있는데 항상 맛이 다르다는 아이들의 평가. 그렇게 평생 떡볶이를 만들고 먹었다.
나의 소울푸드 떡볶이. 한동안 나의 레시피로 떡볶이를 만들지 않았다. 사서 먹거나 소스가 따린 반조리 떡볶이만으로 만족했다. 직접 만드는 음식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던 날들.
딸의 자취방에서 생활하는 요즘. 처음으로 떡볶이를 만들었을 때처럼 맛을 풍부하게 하는 양념들이 없다. 어느 날은 수제비를 끓여 먹고 남은 수제비로 수제비 떡볶이를, 어느 날은 떡국떡으로 만든 떡볶이를 딸과 소꿉장난을 하듯이 만들어 먹는다. 들어간 것은 없지만 딸과 나는, 맛있게 먹는다. 왜 맛있지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