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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May 21. 2020

미워할 권리, 미움받을 용기

미워하는 감정은 나는 가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좋은 게 좋은 거란 태도로 살아온 내게 그 감정은 채 싹트기도 전에 사라졌다. 그런데 누군가 밉다. 내 안의 기제가 열심히 합리화시키려 노력해도 소용없다. 이미 내 안에 뿌리 박혀 흔들림이 없다.

까짓것 미워하면 안 되나.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호들갑을 떠는지 원. 그 이면에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자박히 깔려있다. 좋은 사람이 고픈 열망. 그래서 누군가 미워하는 감정이 생기면 안 된다는 강박적인 사고. 애써 숨기려 해도 감출 수 없다. 그간 숨어서 미워했다. 티도 안 내고 내 안에만 꼭꼭 숨겨 미워했다.

최근에 미움을 글에 담아 보았다. 처음 찾아온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쪼잔한 놈. 글을 나누는 시간, 어디 책상 밑에라도 들어가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최대한 글에서 두리뭉실했음에도 숨길 수 없었다. 그런데 반응은 의외였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나도 그런 적 있어. 대단한 일도 아닌걸. 그런 감정 품었어? 귀엽네.

에구구. 잔뜩 부풀어 이제 막 터질 듯한 풍선에 공기가 스르륵 빠진 것처럼 허탈했다. 괜히 혼자 품고 끙끙댔네. 진작에 풀어버릴걸. 이제는 나팔 불고 다닐까. 용기가 샘솟았다. 털어놓으니 세상 이보다 시원할 수가 없네.

생각해보니 내가 미워한 만큼 그 사람도 나를 미워하고 있지 않을까. 나만 미워한다고 생각했지만, 은연중 나에게서 표출된  뾰족함이 그 사람을 콕콕 찌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모르긴. 그랬으면서. 내가 미워한 농도만큼 더도 덜도 말고 나도 미움을 받고 있을지도.

미워하는 것 이상으로 미움받는 것이 더 어려운 문제 같다. 이 감정도 합리화 기제를 발휘해보아도 쉽지 않다. 나는 미움받아선 안돼 하며 좋은 사람인 척 노력해보지만, 그건 오만이었다. 당장 집에서부터 그 공식은 무참히 깨져버린다. 수시로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나는 미움의 대상이다. 이제는 미움에 내성이 생길 법도 한데 잘 안된다.

감정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데.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가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다.  가장 원초적인 감정일 텐데. 나는 왜 이리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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