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 들기 전 주문처럼 외우는 문장이 있다. '내일이 안 오는 약이 있었으면.' 그러나 눈을 뜨면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온다. 젠장. 이미 자석처럼 붙어버린 이불을 간신히 떼어내고 짱돌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씻으러 간다.
직장생활 14년 차. 이제는 회사 가는 일이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질 만도 한데, 여전히 낯설고 힘들다. 승진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이끌려 본부 생활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었다. 매일 별 보고 출근해서, 별 보고 퇴근한다. 출퇴근 시간을 합쳐서 거의 14시간을 회사에서 보낸다. 집에 오면 피골이 상접한 아내와 아이들을 잠시 만나고 곧바로 잠자리에 든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런 가시밭길 택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후회를 해보지만 소용없다.
회사는 매일매일 전쟁터 같다.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수시로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심장이 덜컹거린다. 하나 일을 끝내면, 다른 일이 찾아오고, 그 일을 마치면 새로운 일이 기다린다. 그래도 어찌어찌 마무리하는 걸 보면 신기하다.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고된 삶 속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것은 글쓰기이다. 글 쓰는 시간만큼은 한없이 자유롭다. 글 안에 무언가를 채우다 보면, 그래도 하나 정도는 즐거운 일을 발견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스쳐 지나갈 일상이 글 속에서는 살아 숨 쉰다. 시간적 여유가 많았던 1년 전에 비해 오히려 지금이 글에 대한 마음이 간절하다.
글 쓸 시간이 부족해서 출퇴근 시간을 활용하곤 있지만, 핸드폰만 있으면 어디서든 글 쓰는 공간이 되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사람들은 이런 나를 신기해하기도, 이상하게 보기도 한다. 뭐 그리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냐고 대 놓고 말하기도 한다. 얼마 전 빅터 프랭클린의 '죽음의 수용소'를 읽은 적이 있다. 삶과 죽음이 바로 눈 앞에서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순간, 그가 견딜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하나가 살아야 할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비할바는 아니지만, 나 역시도 글쓰기를 통해 그 의미를 발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회사에서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소위 말해서 버틸 뿐이다. 그저 힘들 땐 힘든 데로, 기쁠 땐 기쁜데로 글에 담아 풀어낼 수밖에.
어제도 아들과 나란히 누워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 내일이 안 오는 약이 있을까?"
"그래? 나도 있으면 좋겠다."
"왜?"
"학원 가기 싫어서. 학원 가기 정말 싫다."
너도 나랑 마음이 똑같구나. 그렇게 둘이 일어날 수 없는 마법을 꿈꾸며 서서히 잠이 들었다.
근데 진짜 내일이 안 오는 약은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