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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un 19. 2020

내일이 안 오는 약이 있을까요?

잠자리에 들기 전 주문처럼 외우는 문장이 있다. '내일이 안 오는 약이 있었으면.' 그러나 눈을 뜨면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온다. 젠장. 이미 자석처럼 붙어버린 이불을 간신히 떼어내고 짱돌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씻으러 간다.


직장생활 14년 차. 이제는 회사 가는 일이  쉬는 처럼 느껴질 만도 한데, 여전히 낯설고 힘들다. 승진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이끌려 본부 생활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었다. 매일 별 보고 출근해서, 별 보고 퇴근한다. 출퇴근 시간을 합쳐서 거의 14시간을 회사에서 보낸다. 집에 오면 피골이 상접한 아내와 아이들을 잠시 만나고 곧바로 잠자리에 든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런 가시밭길 택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후회를 해보지만 소용없다.


회사는 매일매일 전쟁터 같다.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수시로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심장이 덜컹거린다. 하나 일을 끝내면, 다른 일이 찾아오고, 그 일을 마치면 새로운 일이 기다린다. 그래도 어찌어찌 마무리하는 걸 보면 신기하다.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고된 삶 속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것은 글쓰기이다. 글 쓰는 시간만큼은 한없이 자유롭다.  안에 무언가를 채우다 보면, 그래도 하나 정도는 즐거운 일을 발견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스쳐 지나갈 일상이 글 속에서는 살아 숨 쉰다. 시간적 여유가 많았던 1년 전에 비해 오히려 지금이 글에 대한 마음이 간절하다.


글 쓸 시간이 부족해서 출퇴근 시간을 활용하곤 있지만, 핸드폰만 있으면 어디서든 글 쓰는 공간이 되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사람들은 이런 나를 신기해하기도, 이상하게 보기도 한다. 뭐 그리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냐고 대 놓고 말하기도 한다. 얼마 전 빅터 프랭클린의 '죽음의 수용소'를 읽은 적이 있다. 삶과 죽음이 바로 눈 앞에서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순간, 그가 견딜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하나가 살아야 할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비할바는 아니지만, 나 역시도 글쓰기를 통해 그 의미를 발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회사에서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소위 말해서 버틸 뿐이다. 그저 힘들 땐 힘든 데로, 기쁠 땐 기쁜데로 글에 담아 풀어낼 수밖에.


어제도 아들과 나란히 누워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 내일이 안 오는 약이 있을까?"

"그래? 나도 있으면 좋겠다."

"왜?"

"학원 가기 싫어서. 학원 가기 정말 싫다."


너도 나랑 마음이 똑같구나. 그렇게 둘이 일어날 수 없는 마법을 꿈꾸며 서서히 잠이 들었다. 


근데 진짜 내일이 안 오는 약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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