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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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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un 21. 2020

하정우가 왜 걷는지 이제야 알겠네.

걷기란 두려움을 이기고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힘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내 엉덩이는 들썩인다. 발은 슬리퍼에서 등산화로 갈아 신은 지 이미 오래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오늘은 날이 선선하니 둘레길이 좋겠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워 계단으로 뛰어 내려간다. 누가 내 뒷모습으로 보았다면 며칠 굶은 사람인 줄 알겠다.     


사실 걷기는 나에게 뒷방 늙은이 신세였다. 운동은 모름지기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야 제맛이라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늘 뛰어다녔다. 한 창 사춘기로 마음이 널뛰면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헉헉대는 거친 숨소리 속으로 불덩이가 모두 사그라들었다. 20대는 헬스에 빠졌다. 무거운 쇳덩이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불안한 미래를 안위했다. 마무리는 러닝머신이 부숴 저라 뛰었다. 땀방울이 내 몸 곳곳을 타고 내리는 느낌이 좋았다. 30대 초반 직장에 들어가서는 축구에 빠졌다. 격렬하게 살과 살이 부딪히며 둥근 공을 항해 미친 듯이 달렸다. 넘어지고, 살이 찢어지고, 시퍼렇게 멍이 들어도 훈장처럼 여겼다. 마흔에 가까워져서는 구기 운동은 그만두었다. 머리는 뛰고 있는데, 몸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몇 번 주변 동료를 다치게 할 뻔한 뒤로 안 되겠다 싶었다. 이제 운동은 끝났구나 하며 시무룩할 때, 친한 형이 마라톤을 권했다. 고작 10km였지만, 준비과정은 한 달 정도 걸렸다. 그저 뛰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첫 대회에 출전해서 수많은 인파 속에 있으면서 다시 젊음을 마주한 듯 설렜다. 그 뒤로도 일 년에 두세 번은 꼬박 마라톤에 참여했다. 이렇듯 나에게 운동은 격렬함이었다. 걷기는 어딘가를 가기 위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작년 7월 본부에 발령 났다. 예상은 했지만, 생활은 상상 이상으로 퍽퍽했다. 일은 익숙지 않은데 당장 처리할 일이 쏟아졌다. 그 부담감에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만든 것은 경직된 사무실 분위기였다. 다들 일에 치여, 옆에 누구 하나 고꾸라져도 모를 만큼 바빴다. 나는 사람 고픈 사람인데 어쩌지. 이 삭막한 분위기를 버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 주 일요일에 가족들과 서점에 갔다. 책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널따란 책장 사이에 자리 잡고 이 책, 저 책을 탐닉했다. 그때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걷는 사람, 하정우’였다. 표지를 보니 작가는 내가 아는 영화배우 하정우였다. 영화를 끊임없는 찍는 사람이 언제 글을 썼을까 하며 책을 펼쳤다. 처음부터 걷기로 시작된 이야기는 끝까지 걷기로 끝났다. 해외 로케이션 하러 가서도 걷는 동선을 짜고, 걷기 위해 저녁에 사람들도 잘 만나지 않고, 걷는 여행을 떠나는 모습에 놀랐다. 이 사람 뭐야. 걷는 것이 무엇이라고 이렇게까지 집착하지. 그저 무언가를 해소할 존재 정도로만 추측할 뿐이었다. 책을 다 읽고도, 여운이 오래 남았다. 문득 걷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가끔 어떤 생각에는 이유를 붙이지 못할 때가 있다. 걸으면 답을 찾을 수 있으려나.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서 점심이 되자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스마트 워치를 차고 핸드폰에 연결했다. 목적지는 없었다. 회사 후문을 나서 1차선 도로를 따라 걸었다. 곳곳에 높이 솟은 나무가 그늘이 되어 주었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 촉감이 좋았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니 익숙한 공간이 다르게 다가왔다. 이곳에 이런 나무가 있었네. 아. 저런 건물도 있었구나. 길을 건너서 좌측 도로 옆길을 가보니 조그만 개울도 있었다.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모습을 보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도로 끝, 우측에는 좁은 골목길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가보니 맙소사 산과 이어져 있었다. 푹신한 흙을 밟고, 새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그저 바쁘게만 오갔던 곳은 그 나름의 생명을 곱게 간직하고 있었다. 왜 그간 보지 못했을까. 한 시간이 두 시간처럼 느리게 흘렀다. 그 속도에 나도 발을 맞추었다. 몸이 이완되면서 마음도 따라 풀렸다. 내 어깨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삶의 무게가 하나씩 떨어졌다. ‘아. 좋다.’란 말이 내 입에서 툭 하고 나왔다. 발길 닿는 데로 걷다 보니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천천히 사무실로 향했다.      


발바닥이 욱신거렸다. 땀은 셔츠를 흠뻑 적셨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만 보를 조금 넘었다. 몸의 찝찝함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마음이 상쾌했다. 오후에도 여전히 정신없었지만, 전과 다른 무언가가 나를 감쌌다. 그날부터 매일 점심때마다 걸었다. 일이 생기면, 저녁을 먹은 후라도 걸었다. 딱히 얼마나 걷겠다는 기준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꼬박꼬박 만 보를 넘겼다. 다리에는 근육이 붙었고, 어지간해선 발바닥이 아프지 않았다. 살도 3kg이나 빠졌다. 늘 달고 다녔던 뱃살 일부와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내가 걷는 것을 알게 된 동료 몇 명은 올해부터 함께 걷기 시작했다. 그들과 자연스레 속마음도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걷는다고 해서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할 것 같지는 않다. 회사는 여전히 험난할 것이고, 집에서는 아내와 아이들과 지지고 볶을 것이다. 장애물이 다가오면 그저 걸으며 생각하고, 털어내는 수밖에. ‘걷는 사람, 하정우’란 책이 주는 메시지가 이런 것이 아닐까. 걷기란 어떤 마법 같은 존재가 아니라 내가 나를 돌아보고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 내가 걷는 길 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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