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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un 27. 2020

1997년 어느 늦은 밤

주저하다 실패한 사랑

대학교 2학년 학기 초였다. 그날도 대학교 후문 옆 시장에서 대학 동기 몇 명과 고 갈비에 막걸리 한잔하며 개똥철학을 쏟아내고 있었다. 가게 안은 10평 남짓 되었을까. 동그란 테이블에 팔이 닿을 듯 좁다란 공간에서 고기 굽는 자욱한 연기와 여러 음식 냄새가 한 데 어우러져 머리가 혼미했다. 잠시 화장실을 가려는 찰나에 한 무리의 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같은 과 4학년 선배들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화장실을 갔다 돌아오니. 어느새 동기들과 선배들은 합석하고 있었다. 나는 쭈뼛대며 구석 자리에 앉았다. 그때였다. 누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처음 보는 여자 선배였다.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된 것은 2년 휴학 후 이번 학기에 복학했다는 것이다.
 
작고 마른 체구. 유난히 뽀얀 피부에 단발머리. 커다랗고 동그란 안경이 조막만 한 얼굴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러나 야리야리 한 외모와 달리 톡톡 튀는 목소리로 밝음을 한껏 뽐냈다. 그 선배의 주도하에 분위기는 달빛처럼 환하게 물들었다. 술자리는 밤 11시가 다 되어 끝났고. 우연히 집이 같은 방향인 것을 알게 된 그 선배와 나는 마지막 버스를 놓칠까 봐 서둘러 버스 정거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막차를 간신히 탔다. 둘은 버스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버스 안은 건하게 취해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아저씨, 뒷모습만으로도 사랑이 꿈틀거리는 연인, 온몸 가득 피곤함이 덕지덕지 붙은 재수생이 묘하게 어우러졌다. 좀 전의 왁자지껄함은 사라지고. 가벼운 침묵이 잠시 흐른 뒤 선배가 “음악 들을래?” 하며 불쑥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내 한쪽 귀에 꽂아 주었다. 잔잔한 피아노 반주로 노래는 시작되었다. 우는 듯 내지르는 가수의 애잔한 목소리가 귀를 넘어 온몸 구석구석 퍼졌다. “1994년 어느  늦은 밤”이란 멘트로 끝나버린 마지막은 짙은 여운을 주었다. 슬며시 선배를 쳐다보니 눈을 감고 있었다. 발그레한 뺨이 버스 조명을 받아 유난히도 붉게 빛났다. 창문 너머 찾아온 바람에 머리카락은 세차게 물결치고 있었다. 취한 탓일까, 노래 탓일까. 버스를 먼저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내내 선배가 떠올랐다.
 
그 뒤로도 몇 번 술자리에서 그 선배와 마주쳤다. 어느덧 선배라는 호칭은 자연스레 누나로 바뀌었다. 술자리가 파하면 우리는 늘 집으로 가는 버스를 함께 탔다. 때로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둘만 가기도 했다. 버스 안은 우리의 콘서트장이었다. 우리는 이어폰 한쪽을 나란히 낀 채 장혜진 노래를 들었다. 노래가 끝나면 선배는 조잘대며 장혜진이란 가수를 알려 주곤 했다. 데뷔한 지 이미 6년이 넘었고 발라드 가수로 이미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덕분에 그녀의 대표곡인 “키 작은 하늘”, “꿈의 대화”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음반 가게에 가서 선배가 추천해준 장혜진 3집을 샀다. “1994년 어느 늦은 밤” 외에도 “내게로”, “사랑이란 그 이름만으로도” 등 허스키한 목소리에서 나오는 애절한 발라드에 푹 빠져들었다. 언제부턴가 나에게 장혜진은 선배 없이도 찾아 듣는 가수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점점 자주 만났다. 한 창 취업 준비로 바빴던 선배를 따라 학교 도서관을 다녔다. 나도 마침 그때 편입 준비를 할 때여서 공부를 해야 했다. 친했던 동기들에게도 명분이 생겼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자연스레 함께 도서관을 갔다. 가끔 같은 과 사람들과 마주치기도 했지만, 그냥 친한 누나 동생 사이로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 당시 내가 기다리던 시간이 있었다. 해가 어둑해질 무렵. 잠시 쉰다는 명분 아래 우리는 도서관 앞 테라스로 향했다. 도서관은 학교 건물 중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테라스 앞에 펼쳐진 어둑한 그림을 감상했다. 대학 너머 주택가에서는 자그만 빛이 뽀얗게 새어 나왔다. 선배와 나는 테라스에 놓인 벤치에 앉아. 그 빛을 바라보며 장혜진 3집의 한 면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머물다 돌아갔다. 나는 선배로 향하는 나의 눈을 감을 수 없었다.
 
1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선배는 나에게 부천 국제영화제를 보러 가자고 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던 우리는 함께 영화도 보고 식사도 하며 즐겁게 보냈다.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 될지는 몰랐다. 영화제를 간 날은 하필 동기 종강 모임이 있었고. 나는 선배와 영화제를 가느라 다른 핑계를 댔었다. 나중에 동기들과 술을 먹다가 취한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선배와 영화제 간 사실을 말해 버렸다. 그 소문은 삽시간에 과에 퍼졌다. 그날 이후로 후배, 동기, 선배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보기 시작했다. 선배와 사귀냐는 동기들의 집요한 질문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나는 한사코 아니라고 했다. 나는 애써 속으로 ‘아무 사이도 아닌데 뭐. 어때.’라며 괜찮은 척했지만. 조금씩 신경이 쓰였다. 그 뒤론 선배와 있는 자리를 의도적으로 피하게 되었다. 나보다 4살이나 많은 선배가 부담스러웠을까. 아니면 선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실치 않아서였을까. 지금도 그 감정을 또렷이 그려낼 수 없다. 가끔 마주치는 선배의 눈빛에서 어떤 말이 느껴졌으나 외면했다. 묘하게도 장혜진의 음악도 선배와의 거리만큼 나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2학기가 마치고. 나는 편입에 실패하고 군대 입대 날짜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방에 있던 나를 누나가 불렀다.
 
“야. 전화받아봐. 학교 선배라는데?”
 
누나는 뭔가 수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전화기를 건넸다.
 
“민수야. 나야. 은영 누나. 오랜만이네.”
 
선배 특유의 스타카토 같은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다가왔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옆에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누나의 감시를 피해 서둘러 전화기가 있던 서재 방으로 들어갔다. 선배는 졸업과 동시에 회사에 취업했다고 했다. 그리고 우연히 나의 동기에게 내가 군대 간다는 소식을 들어 연락한 것이었다. 잘 다녀오라는 선배의 말에. 한번 얼굴 보자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그냥 입속에서 머물렀다. 그렇게 선배와의 짧은 전화 통화는 끝이 났다. 나는 그다음 해 초에 군대에 갔고. 선배를 더는 보지 못했다. 시간은 기억을 도려내듯이 선배도 점차 내 기억 속에서 점차 희미해져 갔다.
 
그 뒤로 가끔 TV에서나 라디오에서 장혜진 노래가 나오면 문득 잊었던 그 선배가 떠오른 곤 했다. ‘잘 지내고 있을까. 결혼은 했겠지. 그때 내가 용기를 냈으면 어땠을까. 군대 가기 전 한 번 보자고 했더라면.’ 과거는 되돌릴 수 없기에 무수한 가정을 만들어 낸다.
 
1997년 어느 늦은 밤. 선배도 장혜진도 불쑥 다가와 미처 피지 못한 꽃처럼 그렇게 시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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