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마, 내일은 내일의 내가 해낼 거야.
두려움을 극복하는 나만의 문장
작년 이 맘 때쯤이었다. 회사 본부로 발령 났다. 아이러니하게 그날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더는 돌이킬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 가야만 했다.
사실 5년 전에도 본부 생활을 경험했다. 아침 8시까지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하는 살인적인 일상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갔다. 2년간 근무한 끝에 승진은 했지만, 그 대가는 고지혈증 약봉지였다. 다시는 본부 생활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일선 기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3년간, 우연히 글을 만났고 다시 젊음을 마주한 듯 세찬 설렘 속에 지냈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저 구름처럼 흘러가는 내 삶이 글을 통해 반짝거렸다. 아. 정말 좋다. 글에 대한 욕심으로 글 쓰기 수업도 수강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브런치라는 글 쓰는 공간도 알게 되었다. 내 주제에 과연 할 수 있을까. 몇 번의 주저 끝에 그간 써온 글을 정리해서 작가 신청을 하였다.
익숙했던, 아니 지우고 싶은 연락처가 핸드폰에 떴다. 본부 인사 담당자였다. 예산 파트에 자리가 났으니 와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마음속으로는 아니야를 외쳤지만,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연락을 끊었다. 그 뒤로 수도 없이 흔들리는 '나'를 발견했다. 글과 함께하는 지금이 너무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왜 이리 갈대처럼 흔들릴까. 아닌 척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욕망이 득실댔다. 정신 차려 실배야. 숫자만 보면 어지러움증이 찾아오는 사람이 무슨 예산업무라니. 직장 생활 13년 동안 돈과 관련된 일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두려움, 욕망, 갈등이 한데 어우러져 복잡했다. 결국 나는 욕망을 선택했다.
본부 발령 문서를 확인하는 날과 동시에 찾아온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 또다시 감정은 혼란 속에 빠졌다. 내가 글을 계속 쓸 수 있을까. 맡은 업무는 잘 해낼 수 있을 까. 며칠간은 잠도 잘 이룰 수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글에 그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본부 생활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별 보고 출근하고, 별 보고 퇴근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처음 보는 숫자의 압박은 나를 코너로 몰아세웠다. 반복되는 실수는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마치 처음 입사한 신규 직원이 된 듯 어리바리했다. 그런 중에도 글을 썼다. 시간이 부족했다. 궁여지책으로 출근길 지하철에서 쓰기 시작했다. 글은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그저 쓰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근근이 하루하루를 버텼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불안한 마음에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이면 돌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길을 나섰다. 갑작스레 코로나 19가 발생했다. 수시로 예산 파악이 이루어졌다. 남는 예산은 조정할 모양이었다. 그러다 큰 사고가 터졌다. 일이 안 되려니 총괄 담당자와 의사소통이 잘못되어 예상보다 더 많은 예산이 남는 것으로 보고했다. 일은 일파만파로 커져 나중에 직원 월급도 못주는 상황이 되었다. 모든 화살은 나에게로 향했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냥 이대로 사라져 버렸으면.
살면서 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맞이했었던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찾아온 걸까. 수없이 반문해보아도 소용없었다. 결국 부족한 내 잘못이었다. 어떡하던지 마음을 추스르고 이겨내야 했다. 나는 이 마음을 고스란히 글에 적었다. 많은 글 벗들이 찾아와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그중에서도 글 하나가 내 가슴에 콕 박혔다.
'실배님. 걱정 마세요. 내일은 내일의 내가 다 알아서 할 거예요. 힘내시고요.'
그 글을 읽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힘이 났다. 그래. 내일의 내가 다해낼 수 있어. 그때부터 정신 차리고 일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찾아보니 방법이 있었다. 다행히 예산을 재조정할 기회를 얻었고, 연말에 급여를 주지 못할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 다행이었다.
최근에 업무 조정으로 한 사람 몫의 일이 고스란히 넘어왔다. 이제 겨우 맡은 업무에 익숙해졌는데 당혹스러웠다. 며칠간 멍한 상태로 보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일선 기관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순 없었다. 그때 문득 그 글이 다시 떠올랐다. 내일의 내가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1년간도 버텨냈는데 못하겠어. 한 번 해보자. 구겨진 얼굴을 펴고 차근히 업무 인수를 받았다.
조만간 일 폭탄으로 미칠 듯 바쁠 것이다. 해결해야 할 수많은 난제로 골 머리도 썩을 것 같다. 하긴 여태껏 그래 왔다. 저 산만 넘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넘고 나면 더 큰 산이 기다린다. 그럴 때마다 떠올려 힘을 얻을 인생 글이 생겼다.
'걱정 마. 내일은 내일의 내가 해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