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는 안 되겠다. 딸을 불러 식탁에 마주했다. 둘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잠시 뜸을 들인 뒤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딸이 아내에 대한 접근 금지령을 내린 후부터 내내 신경이 많이 쓰였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라치면 어느새 나타나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아내와 상의할 일이 있어도 딸의 눈치를 보는 내가 보였다. 물론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이쯤 해서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딸에게 하나씩 설명을 했다. 아빠이기 전에 엄마와 부부 사이이고, 사랑하기 때문에 대화도 하고 손도 잡을 수 있다. 요즘 너로 인해 아빠가 그런 자연스러운 관계에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네가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아빠가 00 이가 엄마 좋아하는 것을 막으면 어떻겠냐. 아빠는 엄마, 00이, 오빠 모두를 사랑한다. 아빠는 앞으로 00이 눈치 안 보고 아빠 마음이 가는 데로 해야겠다.
내 이야기를 듣는 딸의 눈이 붉어지면서 이내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 모습에 순간 마음이 약해졌다. 안돼. 이건 반드시 짚고 가야 될 부분이야. 풀린 얼굴을 다시 부여잡았다. 아내도 내 옆에 앉아. 내가 설명한 부분에 대해 다시 주지 시켰다.
엄마의 말이 끝난 뒤 딸은 달도 뚫을 강력한 레이저를 나에게 쏘았다. 두렵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딸은 한참을 훌쩍이다 말했다.
"나도....., 나도....., 노력하는데 잘 안 돼. 내 마음이 그런데 어떻게....."
딸도 노력하고 있었구나. 내가 스트레스받는 만큼 딸도 똑같이 그랬구나. 내 생각만 했네. 미안하지만 미안함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흔들댔다.
일단 딸이 감정을 모두 쏟아낼 때까지 기다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눈물이 잦아들었다. 아내와 나는 아무 말 없이 딸을 번갈아 안아주었다.
딸을 씻으러 보낸 뒤 아내와 이야기 나누었다. 아내는 최근에 둘이 자주 다툰 모습을 보인 것이 아이를 불안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했다. 둘이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자고 다짐했다. 아내는 나에게 딸과 좀 더 시간을 가졌으면 했다. 코로나로 인해 밖에 나갈 일도 친구 만날 일도 없어서 그 에너지가 모두 아내에게 향한 것 같다고 했다. 주말이라도 둘이 시간을 많이 보내서 아빠에게 분산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내 말이 백번 옳았다. 딸의 마음이 나에게도 향할 수 있도록 내가 시간을 더 많이 보내야겠다.
조금 일찍 퇴근한 어제. 씻고 테이블에 아이들과 앉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딸이 스멀스멀 다가오다니 귓속말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