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 한가운데서 만난 낯선 그녀
2시간 쇼핑이 가능한 거구나
나를 돌아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봄 햇살이 가득했다. 벌써 두 시간째.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린 체 침대, 식탁, 책장 속을 열심히 헤엄치고 있었다.
이사 날짜는 10월 중순으로 잡혔다. 아직 두 달여의 시간이 남았지만, 아내 마음은 몹시 분주했다. 새로 이사 갈 집을 어떻게 꾸밀지 내내 고민했다. 자연스레 우리의 대화는 아이들에서 이사로 옮겨갔다. 아내는 이번 참에 모든 걸 새롭게 바꾸고 싶어 했다. 화이트 톤의 근사한 외관과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 심플하고 고급스러운 내관을 추구했다. 물론 채워질 물건들도 새 것이어야 했다.
사실 이사 갈 집을 처음 보고 크게 수리할 것은 없겠다 싶었다. 10여 년이 다 된 아파트이긴 해도 워낙 깨끗하게 잘 써서 도배, 장판 정도만 교체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슬쩍 아내에게 이야기를 꺼냈다가 냉랭한 기운을 감지하고는 멈췄다. 이미 아내의 머릿속은 모든 결정이 끝난 후였다.
이제 막 결혼을 앞둔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우리는 두 가지 선택 앞에 놓였었다. 수도권의 투자 가치가 있는 조그마한 자가 빌라, 외곽의 기본 평수의 전세였다. 아내는 처음에는 후자를 선택했다가 처가댁의 조언을 받고 전자로 바꾸었다. 집을 처음 보았을 때 티는 내지 않았지만 실망한 모습이 느껴졌다. 그 마음을 보상이라도 하 듯 가구와 가전제품 선택에 열을 올렸다. 주말이면 아내 손에 이끌려 열심히 백화점을 돌아다녔다.
“자기야. 이 침대 너무 고급지지 않아? 디자인도 고풍스럽고, 정말 푹신하다. 그지?”
“응......, 좋네. 그런데 너무 크지 않을까?”
“와. TV 멋지다. 화질 봐. 김수현 얼굴에 점까지 보여.”
“응......, 그러네. 근데 너무 크지 않나?”
결국, 아내의 뜻대로 구입했다. 물건이 도착했을 때 통과하기엔 너무 큰 침대로 인하여 문 분리 작업을 별도로 해야 했다. 침대와 화장대가 놓인 후 감탄했다. 어디 근사한 호텔방에 와 있는 착각이 들었다. 물론 비좁은 방에 욱여넣느라 문이 잘 닫히지 않는 부작용을 겪긴 했지만. 거실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통로 수준에 놓인 거대한 TV덕에 우리는 영화관 맨 앞자리에 앉은 것 같은 어지러움 증에 시달렸다. 가끔 공포 영화를 보기라도 할 때엔 바로 눈앞에 있는 듯한 생생함에 오금이 저렸었다. 에어컨은 조금이라도 켜면 집 안을 시베리아로 만들었다. 공간에 비해 턱없이 고급스러운 물건들로 인해 집은 모순적이었다. 처음 집에 놀러 온 지인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의아함이 묻어 나왔다.
정확히 2년 뒤 우리는 처가살이를 시작했다. 다행히 넓은 평수의 처가댁으로 인하여 그제야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거실에 놓인 대형 TV는 고향에 온 듯 적당한 거리에서 가족 모두를 기쁘게 만들었고, 에어컨은 쾌적한 환경을 제공했다. 이태리 풍의 침대는 안방에서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아내의 탁월한 선택 덕분인지 12년이 지났지만 파손이나 고장 없이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다.(아, 대형 TV는 2년 전 수명을 다했다.)
그간 처가살이를 하면서 우리 물건을 제대로 사본 적이 없었다. 주로 어른들 취향에 맞추어야 했다. 아내는 옆에서 그 긴 세월을 꾹꾹 참았다. 이사가 결정되는 날, 그녀는 요술램프에서 해방된 지니처럼 맘껏 날아올랐다. 나도 옆에서 마법 양탄자를 타고 뒤꽁무니를 열심히 쫓고 있다.
표현은 못했지만 이 순간이 참 좋다. 비록 나란 인간이 구매 DNA가 부족해서 어떤 물건이 좋은지 잘 모르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한 두 마디 말만 해도 아이처럼 생긋 웃는 아내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깐. 그리고 자꾸 보다 보니 나 역시도 취향이라는 것이 조금 생기는 듯하다. 전반적인 침대 톤은 밝았으면 좋겠고, 주방도 깔끔하니 수납이 많았으면 하는 의견도 제시했다. 평소 쇼핑을 1시간만 해도 유체 이탈 상태가 되는데 2시간이 훌쩍 넘어도 즐겁게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다.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옆에서 아내가 말을 꺼냈다.
"쏙 맘에 드는 것이 없네. 동네에 한샘 매장 있으니깐 가보면 어떨까? 거기가 주방이랑 가구는 좋으니깐. “
이미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흥을 깰 수는 없었다. 아이들은 다리가 아프다고 성화였지만 온 가족이 다시 힘을 냈다. 주방도 보고, 침대와 책장을 열심히 살펴보았다. 다행히 아내도 나도 맘에 드는 제품을 찾았다. 주방도 직원에게 직접 상담을 받았고, 기본적인 견적도 받았다. 돌아오는 길은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편했다.
다음날 아침, 아내 눈이 시뻘겋다. 이유를 물어보니, 뒤 베란다에 세탁기와 건조기를 놓기로 했는데, 공간이 좁을 것 같아 걱정이 되어 잠을 설쳤다는 것이었다. 둘이서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보다 포기했다. 결국 인테리어 업자의 몫으로 돌리기로 했다.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피곤하겠네.”
“응. 어제 한 잠도 못 잤어.”
“그래도 기분은 좋아 보이네.”
“응. 재밌어. 행복한 고민이랄까.”
그...... 그래. 당신만 행복하다면야. 앞으로 두 달 동안 매주 얼마나 많은 곳을 보러 다닐까. 아예 이 참에 인테리어에 취미라도 붙여 보아야 하나. 아내는 핸드폰 안에 들어갈 듯 이것저것 살펴보며 나에게 물었다.
“오빠. 이 분위기 어때? 색감은 좋은데, 전체적으로 조금 어둡지 않아?”
“그러네. 좀 더 밝은 색깔은 없어? 다른 색깔도 찾아봐서 보여줘 봐 봐.”
아내는 얼른 몸을 돌려 다시 핸드폰 속으로 사라졌다. 얼굴엔 가느다란 미소를 가득 품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