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넘어 회식에서 내뺐다.

좌청룡, 우백호는 무서워.

by 실배

올해 초 새롭게 후배 2명이 우리 기관으로 발령 왔다. 그런데 오기 전부터 두 분 모두 나이가 많다는 소문이 돌았다. 발령 첫날. 사무실에 연배가 있어 보이는 분이 의자에 앉아 계셨다. 혹시 타 기관 과장님이 오셨나 했는데, 알고 보니 후배 중 한 명이었다. 어색한 인사를 마치고 나니 뒤이어 또 다른 후배가 나타났다. 대략 내 나이 또래로 보였다. 역시 나보다 한 살이 많았다. 이렇게 후배 같지 않은 후배님들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첫 회식 날, 비범치 않은 두 분의 장기가 발휘되었다. 주는 술은 무조건 원샷이고 당최 꺾어 마시는 법이 없었다. 술이 청소기 먼지 빨아 들이 듯 입속으로 쏙쏙 들어갔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슬쩍 주량을 물어보았더니 한 분은 태어나서 여태까지 취해본 적이 없고, 소주 4~5병까지는 거뜬하다고 했다. 맙소사. 다른 분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나마 덜 먹어서 소주 3~4병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등꼴이 오싹해졌다. 슬쩍 눈치를 보다 다른 테이블로 이동했다. 나도 살아야 했기에.

사실 이분들이 오기 전까지 우리 회식은 저녁 9시를 넘긴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간 술 먹는 직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회식 때는 소장님 옆으로 그나마 마시는 나와 다른 계장님이 포진되었고, 나머지는 구석 배기를 차지하려고 치열한 눈치 싸움을 했다. 이러니 회식 때 술을 남기기 일쑤였다. 주당 소장님도 재미없는지 저녁 8시 반쯤 되면 슬슬 일어날 준비를 하셨다.

한때는 나도 그들처럼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한 적이 있었다. 건배사도 누르면 나왔고, 예술의 비율로 폭탄주를 대령했다. 테이블 사이를 수려하게 넘나들며 분위기를 띄었다. 그랬던 내가 마흔이 넘으며 변했다. 일단 술이 맛이 없었다. 술에 원수라도 졌는지 부어라 마셔라 하며 친한 척하는 것이 싫었다. 뻔한 직장 이야기도 그저 그랬다. 좋아하는 책 이야기도 글 이야기도 맘껏 할 수 없었다. 하긴 그랬다간 이상한 사람 취급받겠지. 의무감과 책임감에 소장님 옆자리에 앉는 시간이 매우 괴로웠다.

그런데 눈앞에 신기한 장면이 펼쳐 쳤다. 소장님 양 옆으로 두 후배님이 나란히 포진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마치 좌청용 우백호 같았다. 연신 소장님과 술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니 고마웠다. 두 분 덕분에 나의 회식은 평화가 찾아왔다. 소장님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음식점 전체로 퍼져나갔다. 더구나 골초였던 소장님과 우르르 담배 피우러 밖으로 나가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심지어 이전까지 소장님 외에는 담배 피우는 직원도 없었다. 그간 짜증이 많았던 소장님 얼굴에 꽃이 활짝 피었다.

그 뒤로 늘 회식 자리는 두 후배님이 우리를 지켜주었다. 그 모습에 내가 두 분의 이름을 붙여 별명을 지어주었다. 좌 00, 우 00이라고. 더구나 둘은 친해져서 술도 자주 마시고, 틈틈이 담배 피우러 어디론가 사라졌다.

얼마 전부터 연달아 술 한잔 하자고 제안했다. 두려운 마음에 계속 핑계 대고 피했으나 더는 피할 수 없는 낭떠러지에 다다랐다. 결국 날을 잡았다. 다행히 이번 주에는 일찍 안 와도 된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미리 약속을 잡았다. 아내는 살아서 돌아오라는 강한 메시지를 건넸다. 알았어요.

근처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후배님이 알려준 집이었다. 벌써 음식점 사장님과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역시나 둘이 주는 술잔이 연달아 날아왔다. 나는 최선을 다해 방어하였으나 어느 순간 무너져버렸다. 내 한계를 넘어서 버렸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셋이서 소주 8병을 비웠다. 거기다 폭탄주까지 합하면. 휴. 원래 2차를 가기로 하였으나 더 먹으면 죽을 것 같았다. 얼른 1차를 계산하고 집에 일이 생겼다며 뒤도 안 보고 도망쳤다. 뒤통수 넘어 아쉬움이 가득한 둘의 시선이 느껴졌다.

풀린 다리와 자꾸 감기는 눈을 부여잡고 간신히 집에 도착했다. 아마 좀 더 마셨으면 길에서 뻗었을지도 모른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한 후 잠시 의자에 앉았다. 하늘과 땅이 뱅뱅 돌았다. 아이쿠야.

그렇게 한 참을 머무르는데 문득 고마운 마음이 찾아왔다. 좌 00, 우 00 후배님 덕분에 소장님의 레이더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마움 마음도 잠시, 또다시 술 먹자고 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몽실 피어났다. 일단 눈이 몹시 감김으로 걱정은 다음으로 미뤘다.


방으로 향하는 길, 내 앞에 드리울 검은 그림자는 상상도 못 한 체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 이야기는 작년 초 이전 근무지에서 있었던 일화입니다. 지금은 코로나 19로 인하여 회식이 전면 금지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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