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넘은 아버지의 문자에 마흔 넘은 아들도 섭섭하다.
섭섭함이 섭섭함을 낳는다.
한 창 바쁜 오전 시간, 쌓인 일 처리로 반쯤 정신이 나갔다. 드르륵하는 핸드폰 진동 소리와 함께 아버지에게 문자가 왔다. 안부 문자려니 생각하며 넘겼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한 몸 같은 의자와 아쉬운 이별을 하고, 잠시 산책을 나섰다. 걷기 좋은 계절이다. 가을을 좋아하는 무수한 이유 중에 높다란 하늘 아래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터벅터벅 걷는 맛을 빼놓을 순 없다. 아차차. 아버지 문자를 확인해야지. 첫 문장을 읽고 그대로 다리가 땅에 굳었다.
‘네가 다녀간 후 많은 생각을 했다. 노인이라 별 볼 일 없어서 그러는 모양인지 여하튼 섭섭하구나’
뭐지? 짧고 강렬한 문장에 머릿속이 까맣게 변했다. 그리곤 무수한 기억의 파편 조각을 맞추느라 애썼다.
일단 아버지 생신이었던 지난주 토요일을 복기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외식하기가 그래서 노량진에서 회를 주문해서 아버지 댁에서 생신 파티를 했다. 회는 두툼하니 맛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오순도순 드라마를 보았다. 재밌는 장면에 간간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TV 보는 중간에 어머니께서 홈쇼핑으로 구매한 발 마사지기를 가족 모두가 체험했다. 네모난 상자에 발을 넣으면 뜨거운 기운과 함께 몸이 마구 움직였다. 다이어트까지 된다는 소리에 딸이 관심을 보였다. 몸이 마구 흔들리는 모습에 가족 모두가 빵 터졌다. 그리곤 미리 준비한 생신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축하 노래를 합창했다. 30분 정도 시간을 더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극히 평범한, 아니 행복한 날 중 하나였다.
아버지를 섭섭하게 만든 순간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굳이 뽑으라면 최근 급속도로 살이 찐 딸에게 아버지께서 “이 녀석 살집 봐라.”라며 농담을 계속하길래, 그러지 마시라고 말씀드린 정도였다. 궁금함을 넘어 답답함이 찾아왔다. 결국,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를 통해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다녀간 다음 날부터 아버지 안색이 안 좋으셨다고 했다. (어머니 표현으로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다) 어머니께서 이유를 물어보니 아버지가 나에게 정치적 이슈를 물었는데 답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거였구나. 턱 하고 상황 하나가 눈앞에 떨어졌다. 식사 중에 아버지께서는 그 이슈를 나에게 물었다. 물론 내가 다니는 회사와도 연관이 있었다. 또다시 올 게 왔다는 생각과 동시에 불편했다. 나와는 별 상관이 없다고 답했다. 그래. 나는 분명 답을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내가 답을 하지 않았고,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모습이 보였다고 했다. 억울했다.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작게나마 대답은 했는데.
아버지와 나는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 대학교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께서 외출하셔서 아버지와 둘이서 식사를 했다. 그때도 아버지께서는 어떤 정치적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말은 화살처럼 내 가슴에 콕콕 박혔다. 참다못해 계속 반박했다. 그러기를 수차례. 마치 슬로 모션처럼 밥상과 밥, 반찬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다짐했다. 내 다시는 아버지와 정치적 이야기는 나누지 않으리라.
그래서였을까. 아버지께서 정치적 이야기를 꺼낼라치면 의도적으로 피했다. 가끔은 아버지께 동조하려 노력했지만, 몸이 먼저 반응했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듯 간지러웠다. 역시 안 되는구나.
아버지가 어떤 마음일 줄도 충분히 알겠다.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맞아요.’란 한마디가 그리 어려울까. 한편 그 오랜 시간 동안 동의를 강요하는 아버지께 나 역시도 서운한 마음이 든다. 그냥 다름을 인정해 주면 안 될 문제인가. 불편할 줄 알면서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정치에 별 관심도 없는데, 그로 인해 가족 간의 냉기류가 흐르는 상황도 싫었다.
당분간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침묵이 흐를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르면 아무 일 없는 듯 지나가겠지. 그래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다시금 노력해야 할까.
“네.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잘 못 되었네요.”
안 되겠다……. 벌써 몸이 반응하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