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을 타인과 산다는 것은

땀이 난 손을 잡고 가도 괜찮은 느낌?

by 실배

전날 물을 많이 먹고 자서일까. 이른 아침부터 화장실을 찾았다. 볼일 보고 나오는데, 눈앞에 정체불명의 물체 앞에 화들짝 놀랐다. 자세히 보니 아내였다. 아직 아침 8시도 안 되었다. 이 시각에 아내를 만나는 것은 사막에 눈 내리는 일보다 어렵다. 아내와 화장실을 교대하고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벌써 13년이 흘렀다. 피가 섞이지 않은 타인과 이 긴 세월을 함께했다. 무슨 배짱으로 이런 엄청난 일을 벌였을까. 단지 지지고 볶았다는 표현만으로 부족한 믿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내가 겁 없이 이 길을 들어선 이유는 무엇일까?



“오빠. 지금 올래?”

정확히 13년 하고도 6개월 전이었다. 야심한 시각, 방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그녀와 간드러진 속삭임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처음엔 농담으로 다가왔던 한마디에 어느새 청바지와 티셔츠를 갈아입었다. 미친 사람처럼 칠흑 같은 밤을 가로질렀다. 그대로 택시를 타고 그녀 집 앞으로 갔다. 자주 가던 포차에 나란히 앉아 붉게 물든 그녀의 뺨을 쳐다보며 직감했다. 아. 이 사람이랑 결혼하겠구나.


꿈같은 신혼여행을 마치고 신혼집에서 첫날, 그녀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엉엉 울었다. 환상의 문을 열고 이제 막 현실로 나왔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낯선 살갗이 내 몸에 닿는 어색함에 결혼을 실감했다. 이제 우리에게 안타까운 이별은 더는 없었다. 공간은 익숙함이란 단어로 채워나갔다. 마음먹으면 어디든 떠날 수 있었다. 그녀가 임신하기 전 6개월의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롯이 둘만의 시간이었다.


첫아이가 태어났다. 부부였던 우리는 엄마, 아빠란 이름으로 재정립되었다. 아이 얼굴을 처음 보고 울컥했던 것도 잠시였다. 현실을 넘어 전장으로 들어갔다. 아이 똥 기저귀, 잠투정, 목욕과 사투를 벌이며 전우애가 싹텄다. 어느새 그녀는 단단한 엄마가 되었다. 시원한 맥주 한잔을 즐겼던 모습은 사라지고, 아이를 품에 안고 험난한 정글을 헤쳐나가는 전사였다.

그리고 몇 년 뒤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이미 한 번 전쟁을 치른 뒤라 훨씬 수월했다. 그 시기 일이 바빠졌다. 그녀는 정규직을 버리고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본격적인 슈퍼 맘의 길에 들어섰다. 그때부터 협업에 균열이 생겼다. 집안일로 수시로 부딪혔다. 한 번 냉랭한 기운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권태기인가 봐. 오빠 얼굴만 보아도 짜증이 치밀어.”


식사 중에 무심히 던진 한마디가 깊은 파장을 만들었다. 밥 알갱이가 나무껍질처럼 딱딱했다. 한동안 우리는 완벽한 타인이었다. 최소한의 접촉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녀는 주말에 일했다. 주중엔 그녀가 주말엔 내가 아이를 돌보았다. 살면서 이토록 바쁜 시기가 있었을까. 다행히 아이들은 별 탈 없이 자랐다. 아이들이 자란 키만큼 여유도 생겼다.

우리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나는 더는 다용도실 슬리퍼를 멀리 벗어 두지 않고, 화장실 휴지를 다 쓰면 갈아 놓는다. 그녀는 연락을 안 받아 애태우는 일이 줄었고, 정리하려 애쓴다. 서로가 싫어하는 것을 알고 조심한다. 그래도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 사소한 말 한마디로 생채기를 남긴다. 후회하고, 용서하고, 넘어간다. 이제는 그녀가 없는 공간은 상상할 수 없다. 핏줄보다 진한 타인이다.


하루 연가를 냈다. 증명서 발급을 위해 그녀와 동사무소를 나섰다. 살며시 손을 잡았다. 그녀는 ‘왜 이래’하며 손을 털었지만, 끝내 놓지 않았다. 가을바람이 질투하듯 머리를 흩트렸다. 손에 조금씩 땀이 찼다. 불편함을 알지만, 간직하고 걸었다. 마치 우리 관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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