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처럼 사라진 입술

이제는 인정해야 할까.

by 실배

민망하니 쭉 뺀 입술을 도로 집어넣었다.


“뽀뽀는?”


말 대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딸의 모습에서 절망감이 찾아왔다. 샤워를 끝낸 딸의 머리 말리는 일은 나의 몫이다. 불과 얼마 전 만 해도 말하기 전에 도톰한 입술을 먼저 내미는 쪽은 딸이었다. 그런데 왜? 아쉬움에 괜히 입술만 이리저리 움직였다. 불안하다. 이제 나도 뽀뽀 없는 암울한 삶에 발을 들인 것인가.


얼마 전 추석 연휴 끄트머리에 아들 친구네 가족과 파주에 있는 문정 호수를 갔다. 호수 근처 평상에서 돗자리를 깔고 김밥, 떡 등 점심을 차렸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보다 한 살 많은 형님은 폭풍 서운함을 쏟아냈다. 딸이 더는 뽀뽀도 안 해주고, 안기지도 않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에이. 싫어요. 수염도 까칠하고, 냄새나.”


딱 보아도 싫은 티를 팍팍 내는 딸 때문에 형님은 민망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리곤 나에게 딸이 뽀뽀해주냐고 슬쩍 물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잘해주었기에 그렇다고 답했다. 형님은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그날의 여파였을까. 딸의 태도는 급속도로 변했다. 뽀뽀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뭐 그리 뽀뽀에 연연하냐고 할 수 있지만, 나에겐 아이와의 심리적 거리를 나타내는 척도이다. 첫째가 뽀뽀를 금지한 것은 정확히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다. 그때부터 소년의 길을지나 청소년이 되었다. 물론 부모로서 자녀의 건전한 분리는 필수이다. 하지만, 그 숱한 시간, 뽀뽀로 쌓은 정을 하루아침에 끊기란 쉽지 않다.


뽀뽀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엄마 젖 냄새 풀풀 풍기는 통통한 볼에 쪽 하고 소리를 내면 빙그레 웃었던 갓 난 아가, 조막 대기만 한 손으로 내 양 볼을 부여잡고 입술과 그 주변을 한꺼번에 문지르던 아이, 좋아하는 반달눈을 뜬 체 수줍게 입을 내밀던 소녀까지. 이제는 추억 속에만 살아 숨 쉬게 되는 걸까. 아니야. 아직이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 달리 딸의 입술은 잡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눈앞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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