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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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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Nov 13. 2020

책은 아바타다.

오늘은 기필코 접속하리라.

책을 보지 못한 지, 일주일이 더 지났다. 집에 오면 한 시간 정도는 읽고 자리라 다짐하며 책을 펼치지만, 아이들과 노닥거리고 핸드폰 좀 보고 나면 순삭이다. 테이블에서 주인을 잃은 채 애꿎은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책으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요즘 같은 때. 방에 틀어박혀 문장과 끝없는 대화를 한다. 벗은 그저 새빨간 표지의 새우깡 한 봉지면 충분하다. 총성이 오가는 북아일랜드의 어느 도시에 젊은 여성의 뒤를 쫓으며 폭력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한다. 프랑스 어느 시골 마을 작은 병원에 들러 아내의 몰락을 그저 방관하는 의사의 아둔함에 혀를 찬다. 때론 네모와 세모로만 이루어진 세상 속에 들어가 선이 표현하는 미학에 심취한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의식이 책과 맞닿아 오묘한 화학 현상을 일으킨다. 마치 해병대원 제이크 설리가 토착민 나비족 안에 들어가 새로운 생명체 아바타가 되는 것처럼. 처음부터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자꾸 자아가 삐죽이 튀어나와 방해한다. 책에 들어가면 더는 나오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일까. 몇 번의 반복 속에 스르륵 빠진다. 그 황홀경은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지속한다. 책을 덮고도 한동안은 헤어나지 못한다.

너무 그러고 싶다. 오늘은 금요일. 모두가 잠든 고요한 시간, 책과 몰래 접속하여 아바타가 되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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