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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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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Nov 11. 2020

냉장고를 부탁해.

이사를 했어도 안 한 것 같은 느낌.

그것이 가로막을 줄이야. 이삿짐을 정리하던 직원이 급하게 불러 가보니 거대한 냉장고가 자리를 찾지 못하고 덩그러니 앞에 놓여있었다.


"사장님. 지금 짜 놓은 장 안에는 냉장고 못 넣어요. 앞이 좁아서 문도 안 열릴 거예요. 아니. 인테리어를 왜 이렇게 했는지. 쯧쯧쯧."


길을 잃은 냉장고 앞에 내 마음도 무너져 내렸다. 모든 것이 완벽한 이사였다. 인테리어가 완성한 공간은 상상 이상이었다.  마치 겨울 왕국에 온 듯이 모든 것이 하얗고 아름다웠다.

결혼 13년 만에 처음으로 한 이사였다. 아내의 한껏 상기된 모습에 큰 마음먹고 대대적인 공사를 시작했다. 중간에 계속 추가되는 사항이 부담되었지만, 까짓것 대출 더 받지 하는 마음으로 직진했다.


구름 위에 떠있던 순간은 짐이 들어오기 전 딱 가기까지였다. 심란한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하고, 인테리어 사장님을 불렀다. 급히 달려와 이것저것 해보았으나 답을 찾지 못했다. 좀 더 고민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급히 떠났다.


아내와 밤새도록 짐 정리를 하며 무거운 침묵 만이 흘렀다. 자기 전 자리 재배치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었으나, 기분만 더 가라앉아 그만두었다. 주방을 모두 점령한 냉장고를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내시고 방으로 향했다.


오늘 오후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사장님이 오셔서 여러 가지 방안을 내놓으시면서 견적을 받아 주겠다고 했단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럼 추가 비용은 우리에게 납부하라는 것인가? 곧바로 연락을 했다. 구성안을 들은 후 돈에 대해 물었다. 잘하려고 하다 생긴 일이니 이해해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말인가 방귀인가. 하자가 분명한데  슬쩍 떠넘기려는 모습에 몹시 화가 났다. 내가 원하는 방향을 설명한 후 추가적인 비용은 낼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하고 끊었다.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몇 가지 문제가 계속 발생했음에도 넘어갔었다.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방에 누워있었다. 신경을 많이 써서 몸살이 걸린 것 같다. 빨래를 개고, 청소하고, 설거지를 마친 후 잠시 식탁에 앉았다. 눈은 자연스레 냉장고로 향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몸집이 커 보였다. 괜히 뒷 공간에 가서 어떻게 배치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답도 못 찾고 한숨만 남기고 돌아섰다.


누군가 짠하고 문제를 단박에 해결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한때 인기를 끌었던  TV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가 절실히 필요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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